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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ESC]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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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소확행’ 여행 자주 가는 기자

거주지역 안 게스트하우스 찾아 숙박

잠시 복잡한 일상 잊고 독서 삼매경

세상과 잠시 단절···인생 힐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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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서울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강나연 객원기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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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설레었다. 거실에는 아기자기한 소품과 책들이 가득했고, 오후 4시 무렵이라 통유리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외국인들은 ‘방탄소년단’의 실황음반을 흥얼거리듯 따라 부르고 있었다.

서울 서교동에 있는 ‘이슈서울게스트하우스’를 찾은 건 지난 2일이었다. 여행가방을 끌며 지하철을 탄 지 1시간20분 만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가 ‘준(JUNE)'방을 찾았다. 손잡이를 돌릴 때까지만 해도 사진과 실물이 다를까 봐 조마조마했으나, 방문을 열고 보니 기우일 뿐이었다.

아담한 크기에 허투루 관리된 구석이라고는 없었고, 2층 침대와 작은 스탠드, 동그란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작은 의자)이 놓인 사랑스러운 방이었다. 새하얀 침구류와 뽀송뽀송하게 건조된 수건은 청결을 중시하는 호스트(주인)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2층에 있는 욕실과 화장실은 여성 전용이라 마음이 놓였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에도 몇차례 그런 적이 있었다. 고민과 걱정으로 뒤엉킨 머릿속을 비우기에는 여행만한 것이 없지만, 시간과 비용, 체력적인 문제로 외국은커녕 강원도조차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서울 여행자’가 된 기분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하던 서울이 새롭게 보일 뿐 아니라 팍팍한 일상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대단한 준비와 노력 없이도 가능한 나만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하고많은 숙소 중에 게스트하우스인 건 왜냐고? 왜 게스트하우스여야 하냐고? 우선 저렴하기로는 최고인데다, <제이티비시>(JTBC) <효리네 민박>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과 아기자기한 매력, 인간적인 온기는 오직 게스트하우스에만 있다. 호텔이나 모텔에는 그런 게 없다. 가정식 민박에서 진화한 게스트하우스야말로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곳이며, 일상 같은 여행과 여행 같은 일상의 출발점이다.

여기서도 그랬다. 체크인을 한 순간부터 나는 기존의 일상을 잊었다. 날마다 해야 할 일을, 고단한 인간사를 잊었다. 랩톱은 펼쳐보지도 않았다. 단지 소파에서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을 읽거나, 주방에서 채소크로켓을 데워 먹거나, 운동복 차림으로 서교동 인근을 쏘다닐 뿐이었다. 그러다가도 타국에서 온 게스트(손님)들과 눈인사를 나누거나 테라스에서 나부끼는 빨래들을 볼 때면 알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대만에서 온 데비(19·여)에게도 이곳은 “집 같고 편안해서 좋은 곳”이었다. 아이돌그룹 ‘워너원’의 팬인 데비는 마카오 국적 남자친구 오테비어스(19)와 자신의 친동생과 함께 묵었는데, 서울을 여행한 지는 그날로 5일째였다. 밤 9시, ‘찰비빔면’을 만드느라 면을 소쿠리에 밭쳐 물기를 빼는 그에게 고추장소스가 맵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으쓱 어깻짓을 하더니 웃었다. “전혀요. 맛있기만 해요!”

2층에서는 유학생 왕신(25·여)이 티브이를 보는 중이었다. 중국 베이징 출신인 그는 <문화방송>(MBC) 예능프로그램 <발칙한 동거>를 자막 없이 보면서도 깔깔댈 만큼 한국어를 잘했다. “지난 가을학기부터 여기 살아요.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는데다, 사장님이 가족처럼 챙겨주시거든요. 아침밥도 잘 나오고요.” 잠시 후, 티브이를 보다 말고 소파에서 잠든 그를 보았다. 자세는 불편해 보였지만, 마음은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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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서울게스트하우스’의 아침 식사. 강나연 객원기자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쉬었기 때문일까. 평소와 달리 어지러운 꿈도 꾸지 않고 깊이 잤다. 체크아웃 준비를 하던 이튿날 아침, 바로 옆방에 묵는 왕신을 부르는 호스트 이명애(59)씨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신, 오랜만에 얼굴 봐요. 아침밥 다 됐으니 내려오세요.” 그 순간 인도 사막 마을에서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들이 생각났다. 7년 전, 당시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3개월간 인도여행을 하던 내게 타블라(인도 전통악기)를 가르쳐주고, 김치찌개를 끓여준 고마운 이들이었다. ‘다정한 사람들! 잘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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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는 예상대로 만족스러웠다. 호스트 이씨가 모든 음식을 준비했다. 밥을 짓고, 채소와 고기를 다듬고, 달걀과 햄을 볶았다. 토스트와 커피, 샐러드는 기본이었다. 집을 떠나 ‘집밥’을 먹게 되다니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이씨는 라오스에서 귀국한 그날(3일) 새벽에도 주먹밥부터 만들었다. 이대로 며칠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느덧 ‘한량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이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였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게스트하우스

원래 외국인을 상대로 주택이나 빈방을 제공하는 도시민박이 취지였으나, 최근에는 국내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이용이 늘고 있는 숙박 형태.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며, 거실과 주방 등을 공유한다. 대부분 ‘도시민박’이나 ‘농어촌민박’으로 신고해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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