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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변호사 박훈, 그는 왜?…“난 근거없는 선동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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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논쟁적 인물’ 박훈 변호사

부러진 화살·서해순·정봉주·곽도원…

최근 폭발력 있는 이슈마다 뛰어들어

격렬하고 논쟁적으로 싸우는 법률가

‘깡패변호사’ 불리길 마다않는 이유는

“미투운동은 권력관계 부수는 혁명

‘정치공작 음모론’은 반혁명적

약자를 향한 폭력 조장·방치하는

‘소두목 체제’를 폭로하고 해체해야”



한겨레

최근 가장 논쟁적인 국면마다 등장해 그 자신 논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박훈 변호사를 경남 창원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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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최근 논쟁적 이슈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슈의 파괴력이 커질수록 그의 이름도 논쟁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엔 거친 표현, 심지어 욕설까지 한가득이다. 전달하는 내용 못지않게 표현 방식 또한 중요하다는 걸 변호사인 그가 모를 리 없을 텐데…. 그의 거침없는 비판과 지적은 사안의 핵심을 건드리면서도 또다른 논쟁을 부른다. 그 와중에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그의 이름과 그와 실랑이를 벌인 이들의 이름이 장악했다. 그리하여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부러진 화살·서해순·정봉주·곽도원…종횡무진 ‘깡패변호사’”(<동아닷컴> 3월29일)

하필 박훈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전날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박 변호사는 배우 곽도원씨와 페이스북에서 한바탕 설전을 벌인 뒤였다. 곽씨의 소속사 대표 임사라 변호사는 자신과 곽씨가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협박당했다고 주장했고, 박 변호사는 임 변호사의 말에 의심을 품는 글들을 올려왔다. 전날 밤 곽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변호사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우리 대표 말이 맞다’에 “1억빵 내기”를 제안했다. 이에 박 변호사가 “1억 걸고 더하기 10억”으로 응수하면서 밤새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실검’에 맞춰 기사들은 쏟아졌고, 마침내 ‘깡패변호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보다 앞서 박 변호사는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 진실공방에도 참여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피해 장소로 지목한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엔 “간 적도 없다”고 주장하는 정 전 의원을 향해 박 변호사는 “알리바이를 조작하면서 피해자의 존재를 지우려 한다”며 비판했다. 정 전 의원 쪽이 주장하는 ‘정치공작 음모론’을 “반혁명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사건 당일 행적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서였고 거친 표현들을 섞은 채였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 편에서 활동해온 법률가. 사법부 권력을 비판한 영화 <부러진 화살>의 ‘박준 변호사’ 실제 모델. 딸을 고의로 숨지게 하고 이를 숨긴 채 저작권 소송을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던 가수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의 변호인. 근래 박훈 변호사의 이름은 언제나 논쟁의 한가운데서 등장했다. 그리고 이번엔 미투운동 공방의 중심으로 그 스스로 뛰어들었다. 그의 행동들엔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궁금했다. 29일 경남 창원으로 그를 찾아갔다.

내가 미투에 ‘참전’한 이유

―배우 곽도원씨와 다른 인연이 있었나?

“전혀 없다. 난 그이에게 싸움을 건 것도 아니다. 소속사 대표인 임사라 변호사가 이윤택 연출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몰기에 ‘시건방지다’고 했는데, 왜 곽도원씨가 ‘그런 말 하지 않았다’며 나에게 ‘1억 내기’를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새 또 페북 글을 지웠더라고.”

곽씨가 “후배 4명의 실수는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다” “임 대표의 ‘꽃뱀’ 발언은 미투 피해자들을 지칭한 게 절대 아니다”라며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29일 삭제됐다. 임 대표 역시 지난 25일 “목소리, 말투만 들어도 이건 소위 꽃뱀이구나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촉이 생기더군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이후 몇몇 단어나 문장을 고치거나 삭제했다. 이윤택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29일 임사라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진실공방에 참여하면서 미투운동을 “혁명”이라고 했다. 미투운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남녀 관계든, 직장 내 관계든, 정치적 권력 관계든,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남녀를 동등한 조건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남녀가 모텔에 갔어. 그랬는데 갑자기 여성이 (성관계를) 하고 싶지 않아졌어. 그래서 ‘그만해’라고 하면 중지해야 한다. 그런데 남자가 못 참고 성폭행을 했어. 그러면 우리 경찰은, 검찰은, 법원은 여성에게 이렇게 묻는다. ‘같이 모텔까지 갔잖아? 사귀는 사이잖아?’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미투운동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여성들이 권력 관계 속에서 말하지 못했던 걸 이야기하기 시작한 거다. 미투운동은 이런 권력관계를 깨부수는 혁명이다.”

―미투의 정치공작 음모론을 “반혁명”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공작’ 운운 뒤 터진 게 안희정 성폭력 의혹이고 정봉주 성추행 의혹이다. 안희정 지사는 성관계는 인정했어. 그런데 정 전 의원은 아예 알리바이 싸움을 해버렸다. 그러면서 왜 자기가 서울시장 출마하려는 그 타이밍에 맞춰 그런 의혹을 제기하냐고 하는데, ‘당신 같은 사람은 서울시장 출마하지 말라’는 뜻인데, 그게 무슨 문제인가. 그걸 가지고 저의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자기는 그 장소에 가지 않았다며 피해자를 유령 취급해 버린 거야.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게 음모론이다. 미투운동이 혁명인 이상, 거기다 대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건 혁명적 운동에 대한 반혁명이다. 난 거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가수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씨를 변호하면서도 비슷한 얘길 했다. “권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 서씨가 살인범으로 매도되는 것에 강한 반발심이 일었다”고.

“두 사건은 일맥상통한다. 음모론이고 파시즘이다. ‘파보면 뭔가 있을 것이다’라는 프레임 속에서 두 사건은 작동했다. ‘이상호 사건’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서씨가) ‘저작권을 강탈했다’거나 ‘저작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딸을 방치해 죽였다’는 식으로 몰고 갔다. 판결문을 보면 정확하게 나온다. 강탈한 게 아니라 (서씨가) 원래 상속권자라고. 이미 10년 전에 끝난 사건을 아무 근거 없이 음모론으로 몰고 가고 대중들은 거기에 열광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에이, 누가 그러겠어? 미친 사람 아니고선’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다. 미쳤다고 영아를 살해하고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김광석을 유명가수로 키워서 죽이고 딸도 죽이고… 무슨 이득이 있나? 정봉주 성추행 피해자가 왜 7년 전 이야기를 꾸며내겠나. 이유와 동기를 찾을 수 없지 않나. 그런데도 마치 뒤에 뭔가가 있을 것처럼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걸 이용해서 자신들의 명예를 연장시키려고 하는 것, 약자를 향한 팩트 없는 대중선동과 거기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중이 있으면 그게 바로 파시즘이다.”

―매도(당)하고 여론몰이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나의 신념이다. 난 스무살 이후부터 사회운동, 정치운동에 뛰어들었던 이른바 386 세대인데, 그때 형성된 민주주의 가치관, 그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것에 대해 맞서 싸우는 투쟁심은 그때부터 생겨났다. 난 지금 그 신념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 신념을 표현하는 방식이 좀 거칠어 보일 때가 있다. ‘1억원 내기’를 한다든지, 거친 말을 사용한다든지. 좀더 공감 가능한 방식도 있지 않았을까?

“‘정봉주 사건’의 경우, 나 역시 관련된 사람들을 접촉해서 알아본 게 있었다. 그래서 을지병원 간 내용만 공개하라고 했던 거다. 그런데 그걸 숨기고 있으니까 극도의 분노가 올라왔다. 방송을 통해 조작하고…. 나의 분노를 자연스럽게 표출한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내 페이스북 글을 통해 몰랐던 내용들을 알게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그게 아니다. 누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고 내 분노를 말하고 싶은 거다.”(박 변호사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내기 운운한 건 경솔했고 반성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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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변호사는 ‘이상호 사건’ 등에 대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자신들의 명예를 연장시키는 파시즘의 일종”이라며 “혁명적 운동에 대한 반혁명이므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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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인 나한테 이 정돈데…”

―댓글들에 스트레스 받진 않나?

“2000년대 초반, 대우자동차 비정규직 해고 사건을 맡았을 땐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을 때였다. 그런 시절에도 <오마이뉴스>가 날 인터뷰했던 기사에 댓글이 3천개 이상 달렸다. ‘개××’ ‘××놈’이라고. 그땐 또 전화를 그렇게 많이 했다. 사무실이 마비될 정도로. 전화해선 박훈이 욕하는 거지. 그때 이후로 악성 댓글에 면역력이 생겼다. 크게 신경 안 쓴다.”

―일부 댓글을 단 사람들에겐 소송을 하겠다고 했다.

“그들의 인식과 표현의 수준이 어떤 것인지 드러내 보이기 위해 ‘친구 공개’였던 댓글 권한을 ‘전체 공개’로 풀었었다. 억지 옹호와 비난이 변호사인 나한테 그 정도인데 힘없는 피해자들에겐 얼마나 살벌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들에게 민형사 소송으로 당신들이 사람의 인격을 어떻게 살해했는지 보여줄 작정이다.”

1966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박 변호사는 광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이곳저곳을 떠돌며 보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전남 화순탄광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양매직 영업사원으로 4년을 일한 뒤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해 2년 만에 합격했다. 변호사를 시작한 첫 직장이 금속노조 법률원이었다. 대우자동차는 2001년 노동자 1750명을 정리해고했고, 노조는 이에 반발해 2001년 2월부터 총파업을 벌였다. 경찰은 그해 4월 공권력을 투입해 조합원들을 강제진압했고 진압 과정에서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박 변호사는 그 현장에 노동자들과 함께 있었고 그 역시 부상을 당했다.

―그날 그 사태(강제진압과 부상)가 이후 삶에 영향을 미쳤나?

“그날 이후로 4년 정도 많이 시달렸다. 비행기도 못 타고 지하철도 못 타고 폐소공포증, 공황장애가 왔다. 4월만 되면 제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이후로도 노조 사건은 계속 했는데 판판이 노조가 깨졌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아버지를 따라 탄광 지역을 다니던 어린 시절은 어땠나?

“탄광촌이라는 곳 자체가 젠틀하진 않다. 장소도 사람들도 모두가 거칠었다. 당시 세월 자체가 거칠기도 했고.”

―청소년 박훈의 성격도 지금 같았나?

“성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진 않은 것 같은데, 생각이 바뀌었다. 그땐 우파적 생각을 하며 살았다. 육군사관학교를 가려고 했으니.”

―변호사가 되기 전의 삶은 어땠나?

“스물일곱살에 회사에 들어갔는데 회사 자체도 일도 싫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청약을 넣고 아파트 당첨되면 오랜 시간 할부 갚으며 자동차 사서 놀러 가는 게 삶의 전부였다. 그런 삶이 너무 싫었다.”

―대안이 변호사였나?

“결국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길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퇴직금 500만원 가지고 공부했다. 법대 다니며 법전 한 권 내 돈으로 사본 적이 없었는데, 공부가 재밌더라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아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1·2차를 한번에 붙었다. 공부 시작하고 2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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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내 운명이라 생각”

―확신에 찬 표현과 행동들의 근거는 무엇인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수많은 사실을 조사하고 고민하고 판단한 결과다. 그러지 않으면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 이전에 많은 고민이 있는 거다. 그리고 나의 싸움엔 기준이 있다. 약자를 공격하는 자들, 난 그런 ‘권력적인 것들’과 싸운다. 노동자들과 함께 자본에 맞서 싸웠고, 김명호 교수와 함께 사법부 권력에 맞서 싸웠다. 이상호·정봉주와의 싸움은 맹목적인 추종과 팬덤과의 싸움이었다.”

―너무 거친 논쟁으로 자신을 소모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나?

“조사하고 판단하는 일들이 내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다. 그냥 전화하고 물어보고 전화 받으면 된다. 내가 그 일로 먹고사니까. 나한텐 일상적인 일이다.”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 속절없이 개탄스럽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적은 과거 블로그 소개 글을 봤다. 그때(2012년)와 비교해 얼마나 변한 것 같나?

“하나도 안 변한 것 같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해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등의 변화는 긍정적인데, 실질적인 변화는 체감을 못하겠다. 오히려 작은 권력들이 득세하는 것 같다. 이른바 ‘소두목 체제’인데, 그럴수록 더 폐쇄적이고 선동적이다. 그 체제를 폭로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미투운동은 중요하다. 이윤택이나 안희정에 대한 폭로는 권력관계를 해체해 나가는 과정이다.”

―과거 “꿈이 혁명가”라고 했는데, 여전히 그런가?

“당연하다.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서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인간관계가 평등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투운동은 혁명이다. 사람이 독립적인 주체로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는, 그런 관계가 만들어지는 걸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싸울 일이 많겠다.

“난 뭐 30년 동안 싸워왔다.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마주하려고 한다. 의무감 같은 거와는 다른 것 같다.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뛰어들게 되더라.”

창원/글·사진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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