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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중세 소도시를 가다-이탈리아](하)느릿느릿 헤매도 괜찮아! 여긴 이탈리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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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뾰족한 탑과 주홍색 지붕의 하모니 ‘볼로냐’

‘리야티코 마을’의 1년에 딱 한번 열리는 ‘침묵의 극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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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로마제국과 그 찬란한 건축물,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예술가와 작품,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가톨릭의 성지 바티칸, 슬로푸드의 고향…. 셀 수 없이 많다. 이번 여행에선 여행잡지에서 흔히 보이는 로마, 밀라노, 피렌체가 아니라 중소도시의 매력을 보고 왔다. 로마 같은 대도시에 비해 덜 유명할지는 몰라도 여행의 감동은 작지 않다.

■ 볼로냐의 해부학 실험실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주도인 볼로냐는 교육 도시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중간급 도시다. 피렌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볼로냐로 들어서자 불그스름한 지붕의 중세 도시가 품에 안겼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옛 볼로냐대학(1088)의 해부학 실습실(1630)을 찾았다. 강의실은 원형극장의 축소판 같았다. 여러 사람이 실험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일까. 한가운데에는 하얀색 탁자가 놓여 있었다. 시신을 올려놓고 해부학 공개수업을 했던 실험대다. 천장을 올려다봤다. 의학의 신인 아폴로와 14개 성좌가 새겨져 있었다. 당시 점성술의 영향을 받아 수술하거나 약물을 투여할 때 별자리를 고려하는 전통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르네상스는 신을 향했던 눈길을 인간에게로 돌리던 때였다. 해부학 실험실은 그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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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 산페트로니오 성당과 시청사에 둘러싸인 마조레 광장은 평화로웠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맨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대낮인데도 생맥주를 놓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버스킹 공연을 즐겼다. 눈길을 끈 것은 손바닥만 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던 두 명의 중년 여성이었다. 일기를 쓰듯 틈날 때마다 붓을 든다는데 얼핏 보기에 화폭이 대단했다.

산페트로니오 성당은 울림이 컸다. 굵고 풍성한 목소리를 가진 남녀가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불렀다. 2유로를 내고 사진 촬영을 허가받았다.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마조레 광장에서 5분쯤 걸었을까 멀리서 보기에 쓰러질 듯 기울어져 있는 탑이 눈에 띄었다. 아시넬리와 가리센다 두 개의 탑인데 아시넬리에 오르면 볼로냐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고 했다. 나무로 된 원형계단은 딱 한 사람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가팔랐다. 꼭대기까지는 498개 계단을 올라서야 한다. 100계단 이상 오르자 아래를 돌아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난간을 붙잡고 앞사람만 보고 무작정 올랐다. 마침내 꼭대기 좁은 문으로 나가자 하늘이 확 열렸다.

뾰족뾰족한 주홍색 지붕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볼로냐의 건축물들은 묵직한 독일풍 건축물을 닮은 듯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옆에 있던 연인들은 휴대폰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건너편 젊은 친구들은 번갈아가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시간이 만들어낸 오래된 도시 풍경에 빠져들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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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조레 광장으로 나와 오래된 시장골목으로 갔다. 싱싱한 생선과 야채를 파는 가게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술 먹지 않는 사람은 출입금지’라는 간판을 내건 집은 특이했다. 활어횟집도 아닌데 음식은 팔지 않는다며 안주를 밖에서 사오라고 했다. 와인 한 잔을 시킨 뒤 나무 탁자에 앉았다.

■ 피사 인근 라야티코 마을 ‘침묵의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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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극장’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1년에 딱 한번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사 인근의 라야티코 마을에서 펼쳐지는 매혹적인 무대다.

“침묵의 극장은 이탈리아 사람들도 잘 모릅니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있거든요.” 이용직 투어핀 사장의 얘기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궁금증을 안고 피렌체에서 1시간 정도 차를 몰고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토스카나주 피사 인근의 라야티코로 향했다. 창밖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소도시의 풍경이 끝없이 이어졌다. 라야티코는 구글 지도에서도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가 늘어선 길을 걸었다. 마치 한국의 대관령 같다고 해야 할까. 뭉게구름 아래 구릉지마다 복스러운 양들과 건강한 말들이 뛰놀았다.

중세에 생겨난 이 마을의 인구는 1300명. 봄바람이 두 뺨을 스쳤다. 극장다운 극장은 20분을 걸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저 아래 호수처럼 보이는 곳이 무대예요.” 청바지 차림의 알레시오 마을 촌장은 “축제 기간만 시끌벅적할 뿐 일년 열두달 조용해서 침묵의 극장이라고 부른다”며 “올해는 7월28일과 30일 이틀 공연하는데 지난 1월 이미 좌석이 매진됐다”고 말했다. ‘침묵의 극장’은 무대가 따로 없는 야외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테너이자 팝페라 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가 우리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2006년 처음 공연할 때는 관객이 5000명에 불과했는데 이듬해 1만명을 넘었고 지금은 2만명 이상이 찾고 있습니다. 10명 중 8명은 외국인들이지요.”

보첼리는 영국의 소프라노 세라 브라이트먼과 듀엣으로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10여년 전부터 해마다 고향에서 멋진 공연을 열고 있다. 케니G, 브라이트먼 등 다양한 음악인들이 무대에 섰다.

이탈리아의 색다른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 중세 소도시를 한번쯤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행정보]르네상스 꽃피운 피렌체, 파스타만 있냐고요? 2kg 스테이크도 있어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에 있는 피렌체도 찾기 쉽다.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카치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태어났거나 활동한 도시다. 이 시기 르네상스 문화의 꽃이 핀 것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피렌체에는 메디치가의 집이었던 베키오 궁전을 비롯해 우피치 미술관, 산마르코 미술관 등이 있다. 피사와 볼로냐에서 차로 1~2시간 거리에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좋다.

우피치 박물관에는 2500여개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298년 지어진 베키오 궁전은 피렌체 시청사로 사용 중이다. 가장 멋진 사진은 돔과 울긋불긋 아름다운 지붕을 한 컷에 담는 것이다. 미켈란 광장에 서면 두오모 성당과 종탑을 사진 한 장에 넣고 찍을 수 있다. 가업을 잇는 공방점도 많다. 가죽 제품을 구입하려면 ‘페루치’에 가보자. 현재 피렌체에서 가장 큰 쇼핑몰을 운영 중인 스테파노는 페루치라는 브랜드를 국제적인 상표로 키워냈다. 가죽 제품뿐 아니라 수제품인 18K 금으로 만든 시계와 보석 제품도 판다.

페루치 쇼핑몰 바로 옆 ‘쿠치나 토르치코다’는 한국인에게도 꽤 알려진 맛집이다. 2018년 미슐랭가이드에 가성비 좋은 식당인 빕 그루망에 선정됐다. 나폴리피자와 지중해 음식, 생선요리 등 메뉴가 다양한데 피렌체식 스테이크가 인기다. 일단 두께부터 놀랍다. 티본 스테이크보다 고기가 두꺼운데 3㎝는 족히 넘어 보인다. 겉만 살짝 구워내 육즙이 살아 있다. 스테이크는 무게로 판다. 1㎏ 또는 1.3㎏, 2㎏ 등으로 파는데 3~4명이 먹을 수 있다. 파스타 등을 곁들여 1인당 70유로 안팎이면 충분하다.


취재지원: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관광청

<볼로냐·피사(이탈리아) | 글·사진 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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