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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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악기가 있다. 바로 반도네온이다. 본래 우리 귀에 더욱 친근한 아코디언과는 달리, 반도네온은 좀 더 아련하고 아슴푸레한 음색을 자아낸다. 아코디언이 풍금 소리에 하모니카의 해맑은 고음을 섞은 듯한 목소리라면, 반도네온은 풍금 소리 위에 오보에의 여리고 고운 음색을 입힌 듯한 목소리를 지녔다. 베일을 한 겹 드리운 듯한 아스라한 음색, 직접적인 울림보다는 멀리서 들려오는 풍경(風磬) 소리 같은 숨결을 지닌 악기다. 그래서 더욱 구슬프고 청승맞은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화려하고 은밀하며 신비로운 목소리를 지닌 악기이기도 하다. 악기의 이미지도 매혹적이다. 반도네온은 그 외모만 보면 악기라기보다는 변화무쌍한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가지런하게 접어놓은 상태로 보면 휘황찬란한 고서(古書)들을 차곡차곡 세워놓은 것 같고, 최대한 길게 늘여놓으면 호화로운 병풍이나 현란한 부채처럼 찬란한 속내를 드러내 보인다. 마치 황진이가 “어룬 님 오신 날”에 비로소 펼쳐 보이겠다고 선언하던 그 춘풍(春風)이불이 바로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호사스럽다. 반도네온이 사연 많은 여인의 깊은 한숨 같은 그윽한 숨결을 토해내며 연주를 시작하면, 마침내 “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어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한 올 한 올 펼쳐진다.
나로 하여금 이렇게 반도네온에 대한 난데없는 수다를 떨게 만든 음악가는 바로 아스토르 피아졸라다.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그야말로 ‘탱고 음악혁명’을 시작한 도시가 부에노스아이레스다. 피아졸라는 내게 반도네온의 세계로 풍덩 빠져들게 만든 음악의 황금 열쇠를 안겨주었다. 피아졸라를 통해 나는 체사레 키아키아레타 같은 훌륭한 반도네오니스트의 음악도 알게 되었다.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듣는 음악도 피아졸라의 ‘사계’ ‘그랜드 탱고’ ‘아디오스 노니노’ ‘오블리비온(망각)’ 같은 곡들이다. 나는 피아졸라를 통해 내 안의 격정을 깨달았다.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들을 때보다도 격정적이고 강렬한 음악을 들을 때 글이 더 잘 써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유럽의 야간열차 안에서 그의 음악을 듣다가 황홀경에 빠진 나머지, 소중한 노트북 컴퓨터를 기차 안에 두고 내리고 난 뒤 펑펑 울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다. 일상의 온갖 간난신고를 깡그리 잊게 만드는 그의 격정적이면서도 사색적인 음악이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몸으로 춤은 전혀 못 추지만 글 속에서라도 감성과 사유의 춤을 추기 위해 나는 음악의 영감을 빌리곤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피아졸라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 놀라운 음향과 웅장한 건축에 반했던 콜론극장에 드디어 가볼 수 있었다. 콜론극장은 음향이 지나치게 뛰어나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자신의 목소리가 지닌 단점마저 너무 생생하게 드러난다며 투덜거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음악의 전당이다. 음향이 너무 완벽해서 아주 사소한 실수도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다는 것인데, 그 투덜거림조차 콜론극장에 대한 격찬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콜론극장에서 피아졸라가 연주했던 실황 음반을 냉큼 샀다.
나중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약기운’이 다 떨어져 갈 때쯤 들어야지, 다짐했다. 남미여행 이후 가장 다시 가고 싶은 도시 두 곳이 바로 아바나와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여러 가지 일에 치이다보니 벌써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약발’이 다 떨어져 요즘 줄기차게 피아졸라의 콜론극장 실황 음반을 즐겨 듣고 있다. 지금처럼 최첨단 음향기술이 발달했던 시절이 아니었지만, 피아졸라의 변화무쌍한 음악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극장의 아우라가 최고의 하모니를 자아내는 이 음반은 언제 들어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최고의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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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네온은 건반악기와 관악기와 현악기의 모든 매력을 다 가지고 있는 다성적 악기다. 마치 타자기처럼 생긴 건반을 두드릴 때는 피아노처럼 느껴지고, ‘주름잡힌 마법의 상자’ 같은 그 몸을 웅크리고 비틀며 아름다운 신음을 토해낼 때는 관악기의 매력을 뿜어내고, 건반악기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떨림과 울림이 가득한 비브라토를 만들어낼 때에는 현악기 같은 매력을 자아낸다. 반도네온이 다른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우러져 마치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용감하게 탱고의 음률을 연주할 때면, 나는 악기 하나 속에서 무지갯빛 오색실이 한없이 이어지는 실타래가 되어 공간을 수놓는 듯한 행복한 착시를 느낀다. 반도네온은 수많은 악기들 중에서도 유독 시각적인 음악을 연주해낸다. 반도네온을 듣고 있으면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거나 영화를 보고 있거나 최고의 춤사위를 뽑아내는 댄서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탱고 음악은 결코 탱고의 ‘반주’가 아니라 ‘음악’과 ‘춤’이 함께 무대를 채워나가는 거대한 듀오를 형성해낸다. 카를로스 가르델 극장에서 탱고 공연을 볼 때 탱고와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도 좋았지만, 나는 탱고 음악만 나올 때 더욱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피아졸라의 말처럼 ‘나에게 탱고는 춤이라기보다는 음악’이었고, ‘피아졸라=탱고’는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탱고 음악 그 자체, 그리고 피아졸라 그 자체를 어쩌면 탱고라는 춤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그날 그 공연에서 얻을 수 있었다.
반도네온이 몸을 웅크리고 비틀며
사연 많은 여인의 깊은 한숨 같은 숨결 토해내면
그때 거기 두고 온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난다
피아졸라가 ‘탱고 음악혁명’을 시작한 도시
정제된 열정·활기 넘치는 질서의 역설
그의 음악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어울림이 있다
마테차를 마시는 시간을 선물 받고 떠나온 그곳
나는 지금도 그 도시에 갈증을 느낀다
1921년에 태어난 피아졸라는 음악의 혁명가였다. 그의 음악은 탱고로부터 시작되었지만, 탱고의 요소뿐 아니라 재즈의 자유로움, 클래식 음악의 조화로움까지 어우러져 뭔가 전혀 다른 것, 피아졸라적인 어떤 것이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탱고 음악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새로운 탱고를 개발해나갔다. 나는 피아졸라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정열적이면서도 품격이 있을 수 있구나, 자유로우면서도 질서정연할 수 있구나. 피아졸라의 음악을 통해 나는 바로 그런 정제된 열정의 우아함, 활기 넘치는 질서의 역설을 발견했다. 성찰과 사색이 가득한 열정, 슬픔과 애수가 가득한 미소, 정적이면서도 활기로 가득 찬 춤사위. 피아졸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끝내 어우러지게 만드는 음악의 힘을 실험한 작곡가였다. 그는 이미 사랑받고 있는 전통 탱고 음악을 자기만의 새로운 해석으로 바꾸어 탱고의 전형과 클래식의 전형을 모두 뛰어넘는 제3의 세계를 창조했다.
초기 탱고 뮤지션들은 아코디언으로 연주를 했지만, 그 자리를 반도네온이 재빨리 대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도네온 특유의 아련하고 여운 깊은 음색 때문이었다. 반도네온의 이 아련한 음색은 탱고가 지닌 특유의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를 훨씬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다. 특히 그들의 모국을 그리워하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들의 노스탤지어와 멜랑콜리를. 피아졸라의 ‘사계’와 ‘그랑 탱고’, 그리고 ‘오블리비온(망각)’을 듣고 있으면, ‘그때 거기, 고향에 두고 온 존재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회한이 묻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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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에게 ‘마테차를 마시는 시간’을 선물받았다. 마테차 한 봉지를 얻었다면 이렇게 특별한 기억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마테차를 함께 마시는 시간’을 선물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결혼도 하여 두 딸을 낳은 그는 처음에 마테차를 ‘돌려 마시는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테차를 함께 마시는 것은 아르헨티나 사람에게 휴식과 즐거움일 뿐만 아니라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수업 시간이 끝난 뒤 아르헨티나 친구가 ‘나랑 같이 마테차 마시지 않을래?’라고 물어봤을 때 그는 당황했다고 한다. 하나의 빨대로 여러 사람이 돌려 마시는 것이 불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본능적으로 ‘이방인인 내가 이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눈 딱 감고 여러 사람이 이미 돌려 마신 빨대에 입술을 대고 마테차를 같이 마셨고, 그날 이후로 같은 과 친구들과 확실히 더 친해졌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저 마테차를 함께 마셨을 뿐인데, ‘내가 이제 아르헨티나 사람이 다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나도 그의 말을 듣고, 그야말로 눈 딱 감고 여러 사람이 이미 입을 댄 빨대를 휴지로 살짝만 닦아내고 마테차를 마셨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물씬 풍기는 기분 좋은 맛이었다. 수업하다가도 “교수님, 마테차 한 잔 드시고 계속하세요”라고 권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학생들을 자주 봤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의 다정함과 유연성이 이 ‘마테차를 함께 마시는 시간’에서 찻물처럼 고요히 우러나온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일정 때문에 황급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며, 나는 ‘아, 떠나기 싫다’라는 혼잣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아직 보르헤스가 일했던 국립도서관도 못 갔는데, 눈이 먼 보르헤스가 80만권의 위대한 장서에 둘러싸여, 그 모든 책이 하얀 백지처럼 느껴지는 참담한 슬픔을 느꼈다는 그 국립도서관에 아직 못 갔는데. 한 번 가보는 것만으로는 이 갈증을 도저히 풀 수 없는 도시, 산만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기이한 조화로움이 살아 숨 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언젠가 다시 갈 수 있다면, 산텔모 거리를 좀 더 오래 산책하고 싶고, 탱고가 시작된 카미니토 거리에 앉아 좀 더 오래 그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싶다. 보르헤스가 실연을 당한 뒤 정처 없이 걷다가 비로소 도착한 부에노스아이레스 기차역에 낙서를 해두었다는 그 벽도 꼭 한 번 쓰다듬고 싶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그곳에 내 ‘집 나간 마음’을 두고 왔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꼭 되찾아 와야 할 것 같다.
그곳에서는 모든 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모든 순간이 너무도 안타깝고, 설레고, 찬란했기에.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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