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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처럼…간편한 건강식 ‘보울푸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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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하와이 서퍼들이 즐겨 먹는 포케보울은 간편하면서도 열량과 영양이 풍부해 도심 속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알로하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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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간편하게, 더 건강하게. HMR(가정식 대체식품) 시장의 성장과 수퍼푸드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대변되는 푸드 트렌드의 두 갈래다. 이 두 가지가 ‘보울(bowl)’ 안으로 들어왔다. 메인디시 위주의 한상차림을 넘어,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간소화 흐름에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졌다. 지난해 뉴욕에서 가장 핫했던 점심 메뉴는 하와이 서퍼들의 스테미너 식단인 ‘포케보울(Poke Bowl)’이었다. ‘석가모니의 한 그릇’이라 불리는 채식 샐러드 ‘붓다보울(Buddha Bowl)’은 지난해 영국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 핫 키워드 목록에 올랐다. 반찬의 개수가 곧 정성으로 여겨져 온 한국의 식탁도 예외가 아니다. 간편하면서 포만감과 영양을 놓치지 않는 다양한 ‘보울푸드’가 젊은 층을 사로잡고 있다.

사라진 격식, 하지만 ‘밥 다운 밥’ 원해
식탁이 점점 작아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있다. 맞벌이 가정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바깥일과 집안일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혼밥’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끼니를 해결할 때 격식보다는 시간·비용의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순천향대 식품영양학과 김소영 교수는 “집밥과 외식을 통틀어, 매 끼니 밥·국·반찬이 다 있는 전통적인 식사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바쁠 때 차선책으로 선택하던 식단들이 새로운 식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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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채소와 곡물이 토핑으로 함께 올라간 포케보울. [사진 알로하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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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뉴욕을 강타한 포케보울은 한국에서도 대안적 식사로 떠오르고 있다. 포케보울은 ‘포케(참치·연어·새우·문어 등을 익히지 않고 양념한 해산물 요리)’를 쌀밥·채소와 함께 한 그릇에 넣어 먹는 하와이 전통 음식이다. 또다른 이름은 ‘서퍼스 밀(Surfer’s meal)’이다. 서핑을 마치고 극도로 지친 서퍼들이 간편하게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서다.

도심 속 직장인들의 상황도 서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부실하지 않게 끼니를 해결하길 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내에서도 포케보울을 파는 곳이 점차 늘고 있다. 메뉴부터 인테리어까지 하와이 콘셉트로 무장한 ‘알로하 포케’는 2016년 직장인 밀집 지역인 신논현과 여의도IFC몰 등에 매장을 냈다. 지난 3월엔 안국역 인근에 ‘하와이안 보울’이 문을 열었다. 보울 샐러드 전문점인 한남동 ‘루트 에브리데이’, 연남동 ‘슬로우 캘리’ 등에서도 포케보울을 판매한다.

포케보울은 ‘밥+토핑’ 형태 덕분에 패스트푸드나 샐러드가 아닌 ‘식사’로 다가갈 수 있었다. ‘알로하 포케’의 김지후 대표는 “포케보울은 참치·연어 등 양질의 단백질과 탄수화물·비타민을 한 그릇에 섭취할 수 있는 균형잡힌 건강식”이라며 “고객 분포를 보면 남성이 40% 이상이고 어린이부터 고령층까지 다양한데, 체중조절식이나 채식주의 식단이 아닌 ‘건강한 밥’이라는 인식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패스트캐주얼 다이닝의 대표주자 보울푸드
포케보울처럼 한국인의 ‘밥심’을 자극한 보울푸드가 또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길거리 음식 브랜드 ‘할랄가이즈’의 플래터다. 밥·고기·채소·소스 등 할랄푸드(무슬림에게 섭취가 허용된 음식)를 커다란 원형 은박 접시에 한꺼번에 담아 먹는 음식으로, 빠르고 간편하게 끼니를 때워야 했던 뉴욕 택시 기사들의 단골 메뉴였다. 비슷한 메뉴를 판매하는 국내 브랜드 ‘질할브로스’가 2015년 문을 열었고, 2016년 11월엔 원조 ‘할랄가이즈’가 정식으로 한국에 매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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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가이즈의 플래터 메뉴들. 밥·토핑·소스를 한 그릇에 담아 먹는 형태라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하다. [사진 할랄가이즈]


할랄가이즈 측에 따르면 뉴욕 현지에서도 한국인 고객이 전체의 30%에 달한다. 햄버거·피자에 질린 여행객들이 쉽게 ‘밥’을 섭취할 만한 음식이 많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할랄가이즈의 손향태 본부장은 “한국의 2개 지점을 통틀어 보울푸드 형태의 플래터가 같은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에 비해 4배 이상 많이 팔린다”며 “한 그릇에 밥·고기·채소 등 한 끼 식사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요소가 골고루 들어있기 때문에 패스트푸드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깊이가 있는 그릇인 보울은 이처럼 간편하면서도 푸짐한 한 끼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다. 보울에 담아낼 수 있는 음식은 포케나 할랄푸드에 국한되지 않는다. 샐러드·부리또·시리얼·요거트·스무디 등 다양한 보울푸드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 트렌드를 관통하는 핵심은 ‘아무거나 막 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색있고 건강한 식재료를 담되 맛의 궁합과 비주얼까지 고려한다. 브랜드와 메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포케보울에는 오이·당근·적채·연근 등 채소뿐 아니라 아보카도·병아리콩·퀴노아·현미·곤약쌀 등 수퍼푸드도 들어간다. 할랄가이즈는 캐주얼한 매장에서 간편한 형태로 음식을 제공하지만 할랄 인증을 받고 까다로운 유통 절차를 거친 식재료만을 사용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보울푸드의 강세가 패스트캐주얼 다이닝의 성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패스트캐주얼은 음식·서비스 면에서 패스트푸드와 레스토랑의 중간 지점에 있는 외식 업종을 뜻한다. 패스트푸드처럼 간편하지만 보다 건강한 재료를 사용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반영하는 식이다. 김지후 대표는 알로하 포케를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팜투테이블’ 식단을 실현하되 패스트서비스 형태를 접목시킨 패스트캐주얼 다이닝”으로 정의했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북미·유럽 등 전세계 외식 업계에서 파인다이닝이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시장은 하락세인 반면 패스트캐주얼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보울푸드에 대한 선호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컵밥·비빔밥과 무엇이 다를까
그간 한국에도 한 그릇 음식 문화가 없진 않았다. 가깝게는 노량진 컵밥이, 더 멀게는 비빔밥이 있다. 이들이 최근의 보울푸드 트렌드와 다른 부분은 간편함과 건강 중 한 가지에만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컵밥은 간편함만을 극대화한 메뉴이고, 비빔밥은 영양 균형은 뛰어나지만 준비 과정이 복잡하다. 서양에서 건너온 보울푸드는 모든 재료를 한 곳에 담되 비벼먹지 않는 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여기에 더해,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R』의 이윤화 대표는 문화적인 측면을 언급했다. 그는 “요즘은 내가 먹는 것으로 나를 표현하는 시대”라며 “보울 하나 속에 나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층의 문화 코드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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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보울 해시태그(#buddhabowl)로 검색되는 다양한 사진들. 보울푸드는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이 먹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 SNS를 통한 전파가 빠르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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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사뜨바’ 등 채식주의 카페를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붓다보울은 DIY 문화를 통해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붓다보울은 채소 샐러드에 다양한 곡류와 견과류를 첨가해 만드는 비건 건강식이다. 이름 그대로 불교에서 먹지 않는 육류만 아니라면 어떤 재료를 넣든 상관없다. 인스타에 해시태그 ‘#buddhabowl’를 검색하면 직접 만든 붓다보울 사진 25만여 개가 검색되는데, 취향과 냉장고 사정에 따라 재료는 제각각이다.

김소영 교수는 “이제는 식문화가 하나의 패션처럼 추구되고 있고, 패션은 다양할 수록 좋은 것”이라며 “한 그릇 음식도 영양 균형만 잘 고려한다면 실용적인 동시에 건강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사진=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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