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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궁중족발 사건 한편에는 구멍 뚫린 집행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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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 집행관 제도 논란

‘궁중족발’ 강제집행 과정에서

사설용역 폭력에 손가락 절단

집행관은 외면하거나 묵인

공무원 신분 아닌 개인사업자

채권자 주는 수수료가 주수입

93%는 4급 이상 공무원 출신

폐쇄성이 고질적 비리 불러와

공무원화, 채용대상 개방 등

‘제도 개선’ 목소리 높아져





▶흔히 ’빨간 딱지’를 붙이는 이미지로 상징되는 집행관은 국가를 대리해서 집행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집행 현장에서 사설용역의 폭행을 묵인하고, 출장비를 빼돌리는 등 문제점이 발생하면서 집행관 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가게 임대료 문제로 갈등을 빚다 끝내 건물주와 세입자간의 폭력 사태까지 벌어진 서울 서촌 궁중족발 사건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헛점, 열악한 자영업자 현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등 여러 현실적 문제가 중첩돼 발생한 사건이다. 그 한 켠에 ‘집행관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 역시 일조를 하고 있다.

건물주 이아무개씨는 궁중족발 사장 김아무개씨가 “나가달라”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법원에 명도소송을 내 승소한다. 이후 법원은 2017년 10월10일부터 2018년 6월4일까지 12차례 강제 퇴거명령 집행을 시도한다. 모든 민사소송 판결의 집행은 집행관의 지휘 아래 이뤄진다. 2차 강제집행이 있었던 지난해 11월9일 저항하던 김씨의 손가락 4마디가 부분 절단됐다. 건물주가 고용한 사설 용역이 김씨의 손가락이 싱크대에 낀 것을 보고도 억지로 끌어냈기 때문이다. 집행과정에서의 사설 용역은 불법이다. 집행관이 정식 고용한 용역만 쓸 수 있다. 이 사건 뒤 해당 집행관은 법원에서 과태료 200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사설 용역이 투입되는 것을 묵인하고 강제집행 과정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게 징계 이유였다.

‘집행관’은 지방법원 및 지원에 배치돼 재판의 집행과 서류 송달 업무를 하는 사람이다. 주로 법원의 판결이나 가집행 선고에 따른 강제집행, 부동산 경매 입찰 등을 맡는다. 경매 대상이 된 동산(가구, 자동차 등)의 압류 집행도 한다. 흔히 드라마에서 집안의 가구들에 ‘빨간 딱지’를 붙이는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민사집행사건은 민사집행법이 제정된 2002년 25만6917건에서 2015년 81만9079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2015년 건물명도·철거 사건은 3만3674건이 접수됐고 실제 집행된 사건은 2만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이 증가하면서 집행관 1명이 한 해 인도명령 180건, 철거명령 10건가량을 집행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국 집행관 수도 2012년 347명에서 2017년 432명으로 늘었다.

최근 강제집행 현장에서 폭력 또는 인권침해 사태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자 집행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2월, 법무법인 바른에 연구용역을 주고 부동산 인도·철거 강제집행 과정 전반에 대해 점검에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지난 4월, ‘집행관 제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심포지엄을 열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집행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폭력 묵인되는 강제 집행 현장

강제집행을 당하는 채무자가 현장에서 거칠게 항의하는 경우도 일어난다. 손흥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법원행정처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단순히 문을 걸어 잠그고 부재 중이라는 이유 등을 대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아프다거나 임신 중이라고 하는 경우, 칼이나 흉기를 휘두르는 경우, 자살하겠다거나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는 경우, 맹견을 풀어 현장에 접근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경우, 용역 직원을 동원하는 경우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런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6월, 경남 진주에서는 비닐하우스 온풍기 대금 6000만원을 지급하지 못한 한 50대 농부가 비닐하우스를 압류하겠다며 찾아온 온풍기 설치업자와 법원 집행관에게 흉기를 휘둘러 설치업자가 사망하고, 집행관은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궁중족발 사건 역시 강제집행 과정에서 일어났다.

강제집행 현장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건물주가 사설로 고용한 용역이다. 원래 집행관이 고용한 용역만 집행에 투입돼야 하지만, 건물주가 별도로 용역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설용역들은 강제집행 현장에서 더 과격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집행관은 사설 용역 투입과 폭력적 행동을 막아야 하지만, 강제집행을 빠르게 마무리하려고 이를 외면하거나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영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상임활동가는 “집행관은 건물주가 고용한 사설 용역의 폭력을 묵인하고 방조해왔다”며 “폭력적이고 사실상 사적인 집행이나 다름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집행관은 경찰의 도움도 요청할 수 있다. 집행관법 제17조2항은 ‘집행관이 원조를 요청할 경우 경찰이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권오복 전국 법원집행관연합회 회장은 “경찰은 민사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집행 현장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소극적으로만 대처한다”며 “강제집행원조 요청시 경찰의 의무 개입을 강제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한 경찰을 징계·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리쌍(길, 개리)이 자신들 소유의 건물의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한 강제집행을 시도한 지난 2016년 7월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우장창창 가게 앞에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원들과 인근 상인 등이 모여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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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가 주는 수수료가 주수입원

집행관은 국가를 대리해서 집행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사람이다. 소송에서 이긴 채권자가 법원에 집행을 청구하면, 집행관은 법원으로부터 강제집행을 할 권한을 위임받는다. 하지만 집행관은 법원 소속 ‘공무원’이 아니다. 집행관의 신분은 ‘개인사업자’다. 법원에서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에게서 받는 ‘수수료’로 수입을 얻는다.

지난 8일 서울북부지법 집행관 11명과 집행사무원 7명이 서류를 위조해 출장비 수천만원을 빼돌리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가처분 집행 현장에 가지 않고도 “현장에서 채권자의 요청으로 미뤘다”는 내용의 거짓 조서를 작성했다. 이후 다시 가서 집행한 것처럼 꾸며 출장비를 두 배로 받아냈다. 채권자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집행 기일을 미뤄 손해를 보게 했다. 이런 방식으로 2015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년 동안 3160차례에 걸쳐 9300여만원을 부당하게 채권자로부터 받아냈다. 채권자에게 수수료를 보수로 받으면서 굳어진 고질적 비리다.

수수료 가격 구조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입찰 수수료는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돼 있는 반면 그 밖의 수수료는 낮게 책정돼 있다. 집행관 수수료 규칙에 따르면, 서류송달은 1건에 1000원, 휴일 또는 야간엔 1500원이다. 부동산 강제집행은 사건당 수수료 1만5000원, 여비 2만원을 받는다.

반면 부동산 경매의 경우 부동산이 1억에 팔리면 20만3천원, 10억에 팔리면 130만3천원, 50억에 팔리면 290만3천원, 100억에 팔리면 390만3천원(상한선)을 받는다. 결국 집행관의 주 수입원은 부동산 경매 수수료인 셈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6년 집행관 1인당 연평균 수입은 1억3000만원이었다. 자신이 강제 집행한 부동산에 대해 경매를 진행할 순 없도록 돼 있다. 손 변호사는 “부동산 경매 관련 구체적 업무는 법원 공무원이 하기 때문에 집행관의 노력에 비해 보수가 지나치게 많고, 그밖의 수수료는 반대로 지나치게 적다”며 “기형적인 수수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권 회장은 “법원 경매의 수수료는 5천원~390만3천원이지만, 한국자산관리공사 공매 수수료는 30만원~360만원”이라며 “현행 집행관 수수료는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공매에 비교해 소액이며, 일본의 집행관 수수료와 비교해도 적다”고 반박했다.

집행과정에서 필요한 용역 수당 등 비용 처리 문제도 논란거리다. 집행관은 짐을 옮길 노무자, 잠긴 문을 여는 열쇠업자 등을 고용할 수 있다. 이 비용 역시 채권자에게 청구한다. 장갑·박스·테이프 등 부대비용, 운송비, 화물보관 창고비 등도 마찬가지다. 전국법원집행관연합회는 강제집행 비용과 관련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집행에 사용할 노무자 등의 수와 수당 기준(강제집행 비용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노무자의 일당은 9만원이다. 권 회장은 “다른 노무 현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임금인데다 집행에 실패하면 그나마 2만7천원(30%)만 지급하기 때문에 노무자들이 강제집행 일을 기피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집행관을 하고 있는 ㄱ씨는 “수당이 적어 노무자를 고용하기 쉽지 않고, 노무자를 많이 고용해도 채권자가 싫어하기 때문에 기준을 지켜 견적을 낸다”며 “이 때문에 간혹 채권자가 사설용역을 투입해도 묵인하게 되고,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어떻게든 집행을 완료하려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겨레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서촌의 ‘궁중족발’ 강제집행현장.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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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과정도 폐쇄적

현행 집행관법은 지방법원장이 10년 이상 법원주사보·등기주사보·검찰주사보·마약수사주사보 이상의 직급(7급)으로 근무했던 이들 가운데 대법원규칙에서 정한 정원(2017년 기준 432명) 내에서 4년 단임 임기의 집행관을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5년간(2013년~2017년) 신규 임명된 집행관 93%가 법원·검찰의 4급 이상 공무원 출신이었다. 이처럼 특정 공무원 출신만을 대상으로 폐쇄적 형태의 임명제로 운영되다 보니 법조계 일각에서는 “전문성은 물론 집행관 후보자의 역량과 자질도 충분히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제윤경 의원이 발의한 집행관법 개정안은 집행관을 법원 공무원으로 만들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직 법원공무원 가운데 관련 연수과정을 거친 자를 집행관으로 임명하자는 것이다. 손 변호사는 “집행관 제도는 수많은 국가자격제도 중에서도 특히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다년간 법률사무에 종사한 사람이면 누구나 집행관 선발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 가운데 필기·면접시험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정하는 한편, 법원주사보 등의 직급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필기시험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제윤경 의원은 “현행법상 집행관은 수행하는 업무는 공적이나 신분은 개인임에 따라 법원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각종 비리 및 위법?부당한 집행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법원 또는 검찰 출신 공무원의 퇴직 후 고액연금 확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법적 판결에 근거한 집행관 공무집행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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