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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도 넘은 자살보도, 언론이 퍼뜨리는 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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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자살 부추기는 자살보도



▶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 (남을) 최악의 자살 보도 사례.” <연합뉴스TV> 기자들이 노회찬 의원 주검을 태운 구급차를 생중계한 자사 보도를 향해 던진 비판이다. 정의로운 비판이지만 표현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 남을 최악의 자살 보도 사례는 <연합뉴스TV>의 생중계가 아니어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만간 또 넘쳐날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12월18일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본명 김종현)이 세상을 떠났다. 그날 오후 6시께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쓰러진 채 경찰에 발견됐으나 숨졌다. 발견된 뒤 1시간 만에 ‘단독’ 기사가 나왔다. 다시 1시간이 지나자 포털 네이버의 급상승 검색어에 그의 이름과 함께 ‘갈탄’이 상위권에 올랐다. 같은 시각 <엠비시>(MBC) 뉴스데스크는 “객실 안에서는 갈탄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엠비시는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자살 방법을 보도했다. 네이버 뉴스검색 결과 그날 하루에만 ‘종현’과 ‘갈탄’이 포함된 기사 358건이 쏟아졌다. “구체적인 자살 방법이나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는,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유명무실했다.

지난달 23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별세했다. 이번엔 종편들이 나섰다. <티브이(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오후 1시께 노 의원의 주검 이송 장면을 구급차를 쫓아가며 생중계했다. 화면 아래엔 “고 노회찬 의원 시신 병원 이송중”이라는 붉은색 자막이 깔렸다. 카메라는 구급차 창문을 클로즈업하기도 했고, 프로그램 진행자는 “저게 현장 라이브다” “본인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충격적인 상황이라 쉽사리 표현드리기 어렵다. 보시는 시청자들도 충격일 것 같다” 따위의 무의미한 말들로 시간을 채웠다. <연합뉴스티브이(TV)>도 같은 종류의 영상을 생중계했다. 노 의원의 생전 영상과 구급차 ‘추격 영상’을 화면을 쪼개 나란히 보여주기도 했다.

자살 기사로 사람이 죽는다

한국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수)은 2003년부터 지난 5월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였다. 2016년 한국의 자살률은 25.6명,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3092명, 하루 평균 36명이다. 지난 5월 리투아니아(26.7명)가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면서 2위로 내려앉았을 뿐, 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국 평균(11.8명)의 두 배를 넘는 나라다.

한국기자협회는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함께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만들었다. 자살보도를 자제하고 자세히 보도하지 않으며, 자살을 해결책인 양 미화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내용을 토대로 2013년엔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공표했다.

윤리강령이나 권고기준은 ‘미디어의 자살보도가 자살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자살보도가 자살의 빈도와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은 국내외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1974년 논문(‘The Influence of Suggestion on Suicide’)에서 사람들이 미디어가 전달하는 자살방법을 학습하고 이를 모방한다고 설명했다. 필립스는 특히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일반인의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베르테르 효과’라 이름 붙였다. 독일 작가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주인공인 베르테르는 소설에서 권총으로 자살하는데, 소설이 유행하면서 유럽에서 이를 따라한 청년들이 증가한 현상에 착안한 용어였다.

한국에서도 베르테르 효과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경우가 있었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보면, 2008년 10월 한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후 두 달 동안 자살자가 3081명이나 나왔다. 전년도 같은 기간(1807명)보다 크게 늘었다. 2008년 9월엔 또 다른 연예인이 번개탄을 피우는 방법으로 사망했는데, 직후 두 달 동안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99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10명)보다 열 배에 가까웠다. 이후 가스중독으로 인한 자살자는 2007년 93명에서 2015년 2207명으로 증가했다. 언론을 통해 자살뉴스와 자살 방법이 널리 확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미국 사회학자 스티븐 스택은 2000년 연구를 통해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의 자살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살보다 후속 모방(전염성)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14.3배 높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자살보도의 ‘영향력’은 학술적으로도, 실사례로도 입증됐지만 정작 사건이 발생하면 시청률과 조회수에 눈 먼 언론들은 ‘선을 넘은’ 보도를 남발한다.

샤이니 종현이 사망했을 때, <엠비시>를 포함해 <제이티비시(JTBC)>, <티브이(TV)조선>, <엠비엔(MBN)> 등이 자살도구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엠비시> ‘뉴스데스크’는 당시 주요 뉴스였던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보도에 이어 종현의 사망 소식을 5번째 꼭지로 보도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자살보도를 주요 뉴스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은 물론이고 ‘자살의 수단·방법의 구체적 묘사를 금지’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도 어긋난다. 종현은 경찰에 발견된 뒤 병원으로 이송 뒤 사망했지만 <케이비에스(KBS)>와 <엠비엔>, <채널에이(A)> 등의 메인뉴스 앵커와 기자들은 “숨진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신문이나 온라인매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살한 당사자 이름과 자살 방법이 제목에 버젓이 포함된 기사들은 사건 이후에도 디지털 공간에 남아 블로그나 카페 등에서 인용되고 있다. ‘제목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3월 한 연예인이 사망한 뒤엔 “○○○, 목매 자살” 따위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온라인을 채웠다.

연예인·정치인 자살 발생하면
방법·동기 등 무차별 보도 반복
자살보도 모방성 입증됐지만
시청률·클릭수 집착해 무리수


방송사 제재도 미미한 수준
자살보도 권고기준, 안 지키면 그만
반칙 반복하는 언론사 ‘퇴출’하고
드라마·영화 속 묘사도 문제 삼아야


시청률 경쟁·클릭 장사

노회찬 의원이 사망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언론들이 예외없이 ‘투신’이 포함된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고, 일부 신문은 “노회찬 시신 발견 경비원, 쿵 하는 소리에’ 따위의 제목을 달고 자살 방법과 장소를 자세히 보도했다. 자살 동기를 추측하는 기사들도 쏟아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달 25일 논평에서 “노 의원이 목숨을 끊은 것 자체가 정치권에 향후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는 한 일간지의 기사를 언급하며 “이처럼 자살과 사회적 문제 해결을 연결하는 태도 역시 ‘자살의 유용성’을 대중에 각인시킬 수 있어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때마침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는 지난달 31일 기존의 9가지 원칙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5가지로 줄인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발표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2.0과 큰 틀에선 차이가 없지만, “자살수단이나 방법, 장소, 유서의 노출 등 모방자살의 위험성이 높은 주요 미준수 사안들을 더욱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자살 관련 사진·동영상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등 최근 언론의 특성을 반영했다”고 세 단체는 설명했다.

문제는 권고기준은 진화하고 있지만, 언론들은 이를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권고기준을 강제할 수도 없다. 그나마 방송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 조치가 가능하지만 신문이나 온라인 매체는 당사자들의 소송 이외에는 제재 수단이 없다. 방통위의 제재 조치도 대부분 주의나 경고에 그친다.

방송사로선 시청률 외엔 의식할 게 없는 셈이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종편의 보도채널이 늘어나면서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졌다. 주검을 실은 구급차를 생중계하는 배경을 경쟁 외에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 의미 없고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극적인 화면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매체들 사정도 비슷하다. 유명인의 자살은 어뷰징(검색을 통한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반복된 기사 전송)하기 좋은 소재이고 ‘낚시’하기 좋은 소재다. 실시간 검색어에 맞춰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들에게 윤리의식이나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맞는 기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포털과 소셜미디어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해 12월 논평에서 “거의 모든 뉴스의 유통을 맡고 있는 포털도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언론이 사망에 이용된 도구와 방법, 장소 등을 이용해 실시간 검색 장사를 할 수 없도록 검색어 노출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7년 펴낸 자살 예방을 위한 미디어 가이드는 “디지털 미디어는 청소년이나 자살 고위험군 이용자들이 정보를 얻는 주된 통로가 되었다“며 “소셜미디어에선 자살과 관련된 링크의 사용을 제한하고 포털은 (자살 방법이나 도구 등) 유해한 검색 결과가 보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살은 사회적 타살

정준희 교수는 포털을 ‘활용’한 간접 규제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가짜뉴스, 어뷰징 등과 함께 자살보도 권고기준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해, 반복해서 ‘반칙’을 일삼는 언론은 포털 검색 결과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도를 자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언론이 예방 차원의 자살 보도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화여대 안순태 교수팀이 쓴 논문(‘자살예방을 위한 미디어 보도 방향’·2016)은 국내 언론의 자살 기사를 분석한 뒤 “자살로 이끄는 매개 요인인 우울증을 보도하면서, 누구나 쉽게 걸릴 수 있다는 ‘취약성’이나 치료를 통한 혜택은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심각성만 과도하게 강조하고 치료를 방해하는 심리적 장애물을 낮추는 요소들이 매우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논문은 “미디어가 질병과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지식을 학습시킨다면 오히려 자살률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살예방에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오스트리아가 꼽힌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1978년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이를 이용한 자살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자살과 자살 시도는 급증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자살예방협회는 1987년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는데, 내용은 주로 자살 사건 보도 자체를 금지하기보다 어떤 내용을 보도해야 모방 자살을 감소시킬 수 있는지에 초첨을 맞췄다. 가이드라인의 효과는 머지않아 나타났다. 1987년 후반에 이르자 자살과 자살 시도가 80% 이상 감소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 제정에 참여한 유현재 서강대 교수는 규제나 권고에 앞서, 뉴스 뿐 아니라 미디어 전반에 등장하는 자살에 사회가 좀더 민감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규제를 하려면 공감대가 조성돼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선 여전히 자살을 미화하고 수용자들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데, 뉴스 매체를 향해서만 ‘제대로 보도하라’고 하는 건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연이나 금주 공익광고에 비해 자살 방지 공익광고를 발견하기 어렵다”며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명제에 공감한다면 언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서서 정책을 실행하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본인이나 주변 사람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경우 다음 전화번호로 24시간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자살예방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참고

<자살 예방 커뮤니케이션>(2015·김호경)

‘신문의 자살보도가 자살 관련 인식에 미치는 영향’(2014·김은이 송민호 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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