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뒷다리 소금에 숙성시킨 생햄
도토리 먹고 자란 흑돼지 이베리코
백돼지 세라노 발톱 색깔 보고 구분
마드리드 북서부 사라고사 하몽 공장
청결기본-자동화 시스템에 ‘엄지 척’
스페인 친구에게 물었다. “스페인 사람에게 하몽은 어떤 존재야?”. “한국 사람으로 치면 김치 같은 존재? 우린 하몽없이 살수없어”. 그렇다. 하몽은 그들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이자 스페인 사람의 역사와 함께한 식문화다. 김치가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발효시키는 것처럼 하몽도 돼지고기를 소금에 숙성해 만든다. 들어가는 재료와 숙성방식의 차이에 따라 김치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하몽도 어떤 돼지고기를 써서 만드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하몽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안젤라가 찾은 여섯번째 푸드트립 목적지는 스페인 사라고사(Zaragoza)다.
#발톱이 검정색이면 흑돼지 이베리코, 하얀색이면 백돼지 세라노
하몽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스페인의 돼지 종류부터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 스페인 돼지고기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베리코가 알려지면서 부터다. 스페인의 고품질 돼지고기 이베리코 를 트렌디한 돼지고기 전문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베리코가 도토리를 먹고 자란 스페인 흑돼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을 많지 않다. 이베리코는 스페인 돈육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고, 스페인산 돼지고기 품종 중 하나다. 흑돼지 이베리코는 스페인 남서쪽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된다. 이베리코 사료인 도토리가 이곳에서 많이 나기 때문이다.
반면, 백돼지 세라노는 밀이나 보리와 같은 일반 곡류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논,밭이 많은 스페인 북동쪽 사라고사에서 자란다. 스페인 돼지고기 생산량 중 세라노가 90%를, 이베리코는 10%를 차지한다. 생산량이 다른만큼 가격차이도 상당하다 스페인 소매점에서 확인해보니 이베리코가 세라노의 2.5배 ~ 3배정도 더 비싸다. 하지만 세라노의 가격이 싸다고 해서 품질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생산량이 많아서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날 수 있는 것뿐이다. 이베리코와 세라노를 구분하고 싶다면 돼지 발끝의 발톱을 보자. 발톱이 검정색이면 흑돼지 이베리코고, 하얀색이면 백돼지 세라노다.
#행복하게 자라는 스페인 돼지와 전자동화 하몽 공장
안젤라가 찾은 곳은 마드리드의 북서부에 위치한 사라고사(Zaragoza) 하몽 공장이다. 사라고사역에 내리자마자 느낀 것은 마드리드보다 날씨가 훨씬 시원하고 쾌적했다는 점이다. 북쪽으로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 습도가 낮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서 기분이 금세 좋아진다. 공장 책임자의 말에 따르면 돼지들이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후 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북서부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물론 언젠간 도축이 되겠지만 도축이 되기 직전까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 돼지고기의 맛도 좋다고 한다.
공장 들어가기 전에 방역 마스크를 비롯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 방역복을 두겹이나 입었다. 한국에서도 여러 식품 공장을 다녀봤지만 이 곳 만큼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위생규율이 엄격한 곳은 처음이다. 공장에 들어가 봤다. 모든 돼지고기는 도축 후 24시간 안에 모든 부위를 절단해 도매·소매점, 레스토랑으로 보내고 하몽으로 쓰일 다리 부위는 하몽 공장으로 즉시 운송된다.
다리는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일련번호가 적힌 발찌를 찬다. 그 순간부터 해당 다리의 도축일자, 색깔, 탄력정도, 몇번 창고에서 몇일간 숙성되고 있는지 등 모든 내용들이 자동화 시스템에 반영된다. 번호가 한번 부여되면 14개월의 염장 후 하몽 포장지에 들어갈때까지 모든 과정이 입력된다. 아주 오래전에는 주방에서 소금을 바르고 숙성을 시켰지만 생산량과 수출량이 늘어나면서 스페인 하몽 공장들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고, 고개를 들어도 들어도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하몽 공장은 콤콤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거의 마지막 공정까지 따라가보니 깊은 눈동자를 가진 60대 남성이 마스크를 끼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숙성을 마친 다리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그 남성 앞에 도착하면, 손에 쥐고 있던 긴 바늘을 다리에 푹 찌른 뒤, 바늘 냄새를 맡는다. 대부분의 다리는 통과시키지만 숙성이 덜 되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다리는 다시 돌려보낸다. 그는 바로 하몽 감별사. 약 40년 이상 하몽만 감별해온 전문가로 색깔과 냄새만으로도 하몽의 상태를 파악해 출하여부를 결정한다. 하몽 감별사는 공장마다 3명∼4명이 활약한다. 스페인이 하몽의 강국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연륜과 경험, 그리고 하몽과 함께 살아온 그들의 생활이 하몽의 품질과 미식의 수준을 결정하는 셈이다.
#한국에서 하몽을 맛있게 먹는 방법
스페인 백색돼지협회(Interporc)는 스페인의 전략적인 돼지고기 수출 대상국으로 바로 한국을 집었다. 기본적인 돼지고기 소비량도 높지만, 삼겹살, 항정살, 목살 등 스페인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 부위를 한국에서 소비하니 스페인 입장에선 오히려 고마운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다. 따라서 앞으로 국내에서도 더 다양하고 저렴한 하몽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 나온 하몽은 스페인에서 직접 가지고 온 세라노 하몽으로 포장을 뜯으면 미끈하고 얇게 슬라이스 된 하몽이 담겨있다. 하몽만 먹으면 다소 짜기 때문에 너무 딱딱하지 않은 무염빵에 하몽을 올리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을 뿌리면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약간의 단맛이 있는 맥주나 와인과 함께 하면 ‘단짠단짠’의 중독에 푹 빠지게 된다.
글·사진 푸드디렉터 안젤라 foodie.angela@gmail.com
■푸드디렉터 안젤라(본명 김유경)는 MBC ‘찾아라 맛있는 TV’, KBS ‘밥상의 전설’ 등에 출연하며 1인 미디어 푸드채널 테이스티코리아를 통해 한국의 맛을 전 세계에 알리는가 하면 해외의 맛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요리는 오감을 깨우는 여행’이라 생각하는 그는 오늘도 맛있는 기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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