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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단독] 반격 나선 금감원, 삼성생명 즉시연금 분쟁조정 접수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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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메인에 별도 접수 공간 마련 신청 적극 독려
“즉시연금 분쟁 장기화 대비한 청구소멸시효 중단 조치"

삼성생명이 지난달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 5만5000명에게 미지급금 4300억원을 지급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거부한 가운데 금감원이 반격에 나섰다. 금감원은 인터넷 홈페이지 메인에 즉시연금 분쟁조정 접수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의 분쟁조정 신청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10일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즉시연금 미지급 문제를 자세히 알리고, 분쟁조정 신청을 받을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달 중에 최대한 빨리 전산 작업 등을 마무리하고 홈페이지를 개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여의도 금융감독원빌딩 1층 금융민원센터에 즉시연금 분쟁조정 전담 창구를 차리는 것도 검토 중이다.

금감원의 이같은 방침은 삼성생명(032830)즉시연금 분쟁의 장기화에 대비해 가입자들의 보험금 청구시효가 속절없이 지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가입자가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보험금 청구소멸시효 중단 효력을 얻을 수 있다.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된 경우 권리의 소멸을 인정하는 제도다. 보험금의 경우 소멸시효가 3년이다.

법적 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소멸시효가 지나버린 보험금은 받을 수 없다. 과거 자살보험금 사태 때도 소송전이 길어지면서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 계약이 다수 발생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들로부터 분쟁조정 신청을 접수하면서 소멸시효 중단을 원한다는 확약까지 받는다는 계획이다.

조선비즈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생명보험사들의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일괄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조선일보DB



삼성생명 즉시연금 관련 분쟁조정 신청이 예상보다 부진한 것도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이다. 지난달 26일 삼성생명 이사회가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지급을 거절한 이후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은 80여건에 불과하다.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가 5만5000여명인 점을 감안할 때 미미한 수준이다.

삼성생명 이사회는 즉시연금 가입자에게 미지급금 4300억원을 지급하라는 권고를 거부하고, 대신 최저보증이율(연 2.5%) 예시 금액과 실제 받은 연금액의 차액만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 규모는 370억원으로 추정된다. 가입자가 나머지 미지급금을 받으려면 금감원에 개별적으로 민원을 넣거나 소송을 걸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줬다는 민원인도 소멸시효가 지난 부분은 받지 못했다"며 "즉시연금은 매달 연금이 지급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소멸시효 중단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영국 FCA 홈페이지. 빨간 테두리 안이 PPI 피해 접수 배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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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이번 홈페이지 개편과 관련해 영국 금융감독청(FCA) 홈페이지를 벤치마킹했다. FCA는 홈페이지 메인에 지급보증보험(PPI) 불완전판매 피해를 접수한다는 배너를 큰 공간을 할애해서 띄워놓고 있다. 이 배너를 누르면 PPI 불완전판매 문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페이지로 이동하게 되고, 그곳에서 피해 신청도 할 수 있다.

PPI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채무자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금융회사가 각종 담보대출 채무를 대납하는 상품이다. 영국의 금융회사들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수백만 명에게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카드를 팔면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PPI를 끼워 팔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FCA는 홈페이지를 통해 PPI 문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피해 신청을 유도하고 있다"며 "우리도 즉시연금 문제에 대해 비슷한 창구가 필요하다고 보고 홈페이지를 개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목돈을 맡기고 매달 연금을 받다가 만기 시점에 원금을 돌려받는 상품이다. 삼성생명 즉시연금 한 가입자가 약관에서 사업비 공제 부분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연금 지급액을 줄였다며 지난해 6월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고,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약관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내리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삼성생명은 올해 2월 분쟁조정위원회의 판정을 수용해 민원인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했는데, 금감원이 지난 4월 아예 모든 생보사에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분쟁과 관련한 미지급금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지난 7월 9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금융감독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모든 가입자에 대한 일괄 구제를 요구했다.

삼성생명 외에도 즉시연금 미지급금은 한화생명 850억원, 교보생명 700억원 등 총 1조원(16만명)에 달한다. 한화생명도 지난 9일 즉시연금 민원 1건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의 미지급금 지급 권고에 대해 거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한화생명도 금감원의 일괄구제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김형민 기자(kal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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