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재정지출로 ‘자영업 탈출’ 가속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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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영업 대책’이라고 이름 붙은 방안이 쏟아진다. 청와대에 자영업 비서관을 둔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일이다. 자영업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자영업 위기는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논란이 된 최저임금 인상은 곪디곪은 자영업의 고질적 문제를 터뜨리는 뇌관 구실을 했을 뿐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자영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을 보면서도 방치해왔다. 건물주나 가맹업체의 어처구니없는 횡포와 갑질로 극단적 사건이 터졌을 때만 잠깐 관심을 보이며 땜질 처방으로 넘어갔다. 자영업 보호의 공감대는 높지만 지금 거론되는 여러 방안이 얼마나 실행되고 실제 효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영업 여건의 일부 개선으로는 늪에 빠져 출구를 찾지 못하는 자영업의 상황이 크게 나아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자영업 구하기 ‘백화제방’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움직임은 현재 여러 갈래로 진행 중이다. 먼저, 불공정 계약과 거래 관행을 고쳐 자영업자의 구조적 손실을 덜어주는 것이다.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 본사나 가맹본부의 횡포를 막기 위한 법안은 오래전부터 국회에 제출됐으나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본사 물량 밀어내기나 가맹본부 판촉비 떠넘기기, 인테리어 리모델링 강요, 식자재 강매 같은 부당행위만 줄어도 자영업자의 숨통이 어느 정도 트일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갑질 근절에 총력을 쏟아왔으나 행정 규제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았다.
편의점과 치킨점 등 22만 개에 이르는 가맹점이 수익 분배 구조의 왜곡으로 입는 손실이 대표적 사례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에 따르면, 연간 영업이익 7조5천억원 가운데 2조5천억원을 4200여 개 가맹본사가 가져간다. 나머지 5조원을 가맹점주 22만 명이 나눈다. 업소당 23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가맹본부 ‘독식’ 구조인 셈이다. 가장 큰 문제가 비싼 식자재 강매로 가맹본부의 과도한 이윤 챙기기다. 이 때문에 가맹점주들은 가맹점 수익을 기준으로 한 로열티 체제로 수익 분배를 일원화할 것을 요구한다. 관련 법 개정으로 대리점주, 가맹점주, 하청업체가 부당행위에 공동 대응하는 것이 허용되면 불공정 해소에 적잖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미스터피자 사례처럼 가맹점주의 구매협동조합 결성도 바람직한 대안이다.
재료비와 함께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대료의 과도한 인상을 막기 위한 조처나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를 규제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보전하려는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에 이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부가가치세 면제 범위 확대 등 ‘단골’ 대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그러진 초상
그러나 구조적 불공정 해소와 일시적 비용 절감 수준의 대책으로 자영업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 자영업의 ‘초과포화’라는 본질적 문제 때문이다. 거리에 나와 고개만 돌려봐도 ‘이렇게 빼곡히 들어찬 가게들이 어떻게 다 먹고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장 흔한 음식점부터 커피전문점, 치킨점, 부동산소개소, 미용실, 통신기기 판매점, 빵집 등등.
우리나라 자영업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이란 점은 공지의 사실이다. 자영업자 570만 명에 무급으로 일을 돕는 117만 명을 포함하면 전체 고용의 25%를 넘는다. 선진화된 경제구조를 갖춘 나라 가운데 이렇게 자영업 비중이 높은 곳은 없다. 미국이 6~7%, 일본이 10~11%다. 사회구조가 비슷한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같은 크기의 자영업 시장에 두 배 이상 사람이 몰리는 셈이다. 적절한 수준의 매출과 소득이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체 자영업자의 70% 이상이 직원이 없고 창업자금이 5천만원이 되지 않는다. 연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2천만원 이하가 대다수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18년 6월 내놓은 ‘소상공인 과밀, 어느 수준인가?’ 보고서에서도 서울 도소매·음식업 자영업자 평균소득(2015년 기준)이 1845만원으로,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보다 15%가량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대도시 재개발에 따른 임대료 폭등이 자영업자 숨통을 더욱 죈다. 매출에 따라 변동이 가능한 재료비나 인건비와 달리 임대료는 좀체 내려갈 줄 모른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를 사이에 두고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상가와 맞은쪽 기존 상가의 임대료 차이는 두 배 정도다. 영업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임대료는 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상가 투자자들도 높은 분양가를 낸 만큼 임대료를 깎으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고 부동산중개인들은 말한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선 텅 빈 상가가 속출한다.
그런데도 자영업자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몇 달 걸러 새 가게가 들어서는가 하면, 이전 가게 이름을 지울 사이도 없이 영업에 나선 가게가 드물지 않다. 국세청 국세 통계를 보면, 도소매·음식 등 4대 업종에서만 연간 50만 곳 가까이 문을 닫는다. 비슷한 수가 창업을 하기 때문에 자영업자 수는 570만 수준을 유지한다. 창업 준비 기간이 석 달이 채 되지 않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는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5년을 넘기는 가게가 20~30%에 지나지 않을 만큼 자영업 성공률이 낮은데도 이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넘쳐나는 자영업 예비군이 가장 큰 이유다. 직장에서 밀려났거나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며 자영업 일선에 나선 40~50대가 그 주력군이다. 자영업자 나이대를 보면, 50대가 30% 정도로 가장 많고, 60대와 40대가 그다음이다. 40살 미만 자영업자는 10년 전 22%에서 16%로 줄었다. 고령화로 이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고, 일하지 않는 데 따른 초조함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손님이 몰리는 가게는 있고, 줄 서서 기다리는 큼직한 음식점을 보면 ‘이런 가게 하나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다수 자영업자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은폐된 실업
한국의 자영업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자영업 비율이 일본 수준으로만 떨어진다고 가정해도 현재 3%대 실업률을 유지하려면 200만 개 이상 일자리가 필요하다. 최근 경기 부진과 맞물려 적자를 감수하고 버티는 자영업자는 흔하다.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홍익대 입구 부동산중개소들에 따르면, 권리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 손실을 줄이겠다며 영업을 계속하는 가게가 많다. 이 때문에 자영업자 빚도 크게 늘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자영업자 부채는 이미 2017년 600조원을 넘어섰다. 대출 증가 속도는 가계대출보다 빠르고, 저축은행과 카드회사 등에서 받은 고금리 비은행 대출의 비중이 커졌다.
한계상황에 이른 자영업은 일자리 부족의 또 다른 얼굴이다. 40~60대의 방대한 자영업자와 예비군이 옮겨갈 만한 ‘덜 나쁜’ 일자리 마련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주력해온 민간 기업 투자와 고용 확대 촉구는 청년 실업난 완화에도 힘이 부친다. 신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최근의 고용지표는 정부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한다.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2018년 7월 고용통계에서 전체 자영업자 수는 전년 같은 달에 비해 3만5천 명 줄었지만, 종업원을 둔 자영업자는 7만2천 명 늘어났다. 수는 줄고 규모는 커진 것이다.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 강화는 ‘자영업 탈출’ 흐름을 가속화할 수 있다. 그냥 방치하면 실업 증가로 이어질 뿐이다.
이 때문에 과감한 부자 증세와 불로소득 환수 등으로 경제 기조를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 같은 정부의 부유층과 중산층 눈치 보기로는 상황 악화를 막기 어렵다. 진보 성향 학자와 전문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경제학)도 2018년 7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주최 포럼에서 “한국은 복지국가 시스템이 취약해 생계형 창업이 많다”며 “복지가 할 일을 영세 자영업 부문이 떠맡아온 게 문제인 만큼 구조적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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