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살둔마을 ‘나홀로 캠핑’
가볍게 떠나 1박 2일 여유 만끽
삼겹살 대신 간편식 해먹고
물소리·불 때는 소리에 빠져
단풍 명소 문암골 트레킹도
강원도 홍천 살둔마을 생둔 분교 캠핑장에서 아침을 맞았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내린천 흐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이 잠들었다가 새소리에 일어나 마주친 풍경이 따스했다. 혼자여서 적적했으나 혼자였기에 자유로운 생애 첫 ‘솔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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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방첩 표어가 걸린 옛 홍천 생둔 분교. 운동장을 캠핑장으로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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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도착했다. 생둔 분교 운동장 한쪽 구석에 텐트 한 동이 보였다. 살둔마을 위원회 이태호(48) 사무장에게 물었다. “저 말고 한 팀이 더 있나 봐요?” “아뇨. 저건 글램핑(장비가 필요 없는 편리한 캠핑)용 텐트입니다.” “아, 완벽히 혼자군요.”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조건이 갖춰졌다. 살둔마을이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된 데다 도로 사정이 좋아져 캠핑도 인기인 줄 알았다. 역시 오지는 오지인가 보다.
홍천 살둔마을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지는 ‘문암골’은 눈부신 단풍을 만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인적이 뜸하고 길이 평탄해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이번 주말 단풍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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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전에 단풍놀이를 나섰다. 살둔마을 주변에 개인약수·은행나무숲 같은 단풍 명소가 여러 곳 있지만, 부러 문암골 트레킹을 선택했다. 살둔마을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지는 편도 6.5㎞ 임도로, 계곡을 따라 편하게 걸으며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인적 뜸한 길이다.
문암골은 깊은 계곡과 암벽, 온갖 색깔의 단풍을 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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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마을까지 다녀오려면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하늘이 어스름해져 3시간만 걷고 돌아왔다. 이번 가을 봐야 할 단풍은 다 본 것 같았다.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커플 한 쌍이 전부였다.
운동장 한쪽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에 텐트를 쳤다. 가족과 캠핑을 다닐 때 늘 쓰던 3~4인용 돔 텐트가 아니라 2인용 백패킹 텐트를 빌렸다. 5분 만에 설치를 끝냈다. 평소 캠핑장에서는 다른 캠퍼에게 방해될까봐 절대 쓰지 않던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냈다. 가을과 어울리는 조동진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책을 읽었다.
‘캠핑은 고기 구우러 가는 것’이란 편견을 버리자. 음식이 간소하면 한결 여유롭다. 이번엔 만둣국과 즉석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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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간단히 먹은 뒤 모닥불에 밤과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이튿날에는 서울에서 사온 빵과 사과, 핸드 드립 커피로 아침상을 차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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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앉았다. 가장 기다렸던 불놀이 시간이다. 챙겨온 화로를 펼친 다음 잘 마른 잔가지와 낙엽에 불을 붙이고 오후에 마을에서 사놓은 장작을 얹었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금세 온기가 번졌다.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춤추는 불길을 보니 묘하게 차분해졌다.
요즘 유튜브에서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 즉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영상이 유행인데 캠프파이어가 대표적이다. 3~4시간 불 때는 장면만 반복되는 영상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이날 밤 유튜브 영상과 비교할 수 없는 쾌락을 느꼈다. 오후 7시부터 장작 태우고 밤·고구마 구워 먹다 보니 금세 11시가 됐다.
살둔마을은 워낙 깊은 산골이어서 깊은 밤 하늘 수놓은 별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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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이 모두 꺼진 깊은 밤,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눈부신 별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벅찬 마음을 안고 텐트로 들어갔다. 침낭 속에 웅크리니 내린천 흐르는 소리만 희미했다.
인기척 없는 캠핑장에서 딱 한 번 섬찟했던 순간이 있었다. 별 사진을 찍고 있는데 큰 개 한 마리가 운동장을 가르며 지나갔다. 헤드랜턴에 비친 녀석의 눈빛을 본 순간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어설피 잠들었을 무렵 어떤 동물이 텐트 주변을 맴도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까 본 그 개가 텐트 주변을 킁킁거리며 배회하는 것 같았다.
벚나무 아래서 잠을 자다가 문암산 줄기 너머로 떠오른 햇볕에 잠을 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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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전 6시 즈음 눈이 떠졌다. 침낭 밖으로 얼굴을 빼니 코가 시큰했다. 기온을 확인하니 영상 1도였다. 이내 강렬한 햇볕이 내리쳤다. 텐트 지퍼를 열었다. 문암산(1146m) 줄기 너머로 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텐트에 서리가 내릴 정도로 추운 아침이었지만, 나무와 꽃이 햇볕 받아 반짝이는 풍경은 더없이 따스했다.
마을 한 바퀴 산책한 뒤 아침상을 차렸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끼니다. 집 근처 제과점에서 사 온 빵을 굽고 커피를 내렸다. 몇 개 남은 장작에 다시 불을 붙였다. 단출한 메뉴였지만, 모닥불 쬐며 먹는 맛은 특별했다. 혼자여서 적적했으나, 혼자였기에 누릴 수 있는 재미였다.
홍천=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446번 지방도에서 내려다 본 살둔마을. 내린천 휘감는 첩첩산중에 안겨 있는 마을이다. '살둔'은 살 만한 둔덕이란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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