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이춘식씨(94)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장내 정돈을 요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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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 입장을 견지해 온 대법원이 14년만에 '무죄' 취지로 판례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대체복무제가 마련되기 전까지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유죄 판결과 함께 통상적으로 1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돼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창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3년 9월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 선고를 받고 2016년 7월 상고를 제기했다.
병역법 제88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통지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정당한 사유'에 종교를 이유로 한 병역 거부가 포함되는지가 쟁점이었다. 이날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면서 이제까지의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은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형사 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양심적 제한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형사 처벌 등 제재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내면의 양심을 포기하거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파멸시키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이 문제는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라는 문헌의 해석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자신의 인격 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기 때문에 불이익에 대한 어떠한 제재라도 감수하면서 이행을 거부한 것이고 이들에게 집총과 병역 의무를 강제하고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고 본질적인 위협"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2004년 7월 전합 판결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죄라는 입장을 유지해왔으나 이번 판결로 판례를 변경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 이뤄져 왔다. 2004년 대법원 전합 판결이 나온 이후 대법원이 아닌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건수는 현재까지 110여건에 달한다.
당시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양심의 자유'가 병역 의무 이행에 따른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없다"며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고 판시했다. 종교를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헌재는 2011년까지만 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지난 6월 입장을 바꿨다. 헌재는 '정당한 사유' 없는 입영통지 불응 등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조항은 합헌이라고 봤지만, 병역법이 대체복무제 여지를 두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2019년말까지 대체복무제 관련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병역거부 자체는 불법이지만, 병역 거부자들이 합법적인 대안을 모색할 여지를 두지 않은 병역법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무죄 취지의 이번 판결은 현재 계류된 유사 사건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계류된 상고심 사건의 수는 200건을 웃돈다. 이들 역시 이번 판결의 취지대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확정 판결을 받아 수감 중이거나 이미 형기를 마친 경우에는 이번 판결의 효력이 소급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즉시 구제되진 않는다. 다만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은 가능하다. 또 정부가 사면, 복권 등의 수단으로 구제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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