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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5 (토)

이슈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1명 뿐이던 '무죄' 의견 14년 뒤 다수 의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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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병역의무 강제는 양심의 자유 본질 위협"
14년 전 무죄 주장 이강국 대법관 의견과 닮아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부제 도입은 별개"

조선일보

김명수 대법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등 전원합의체 선고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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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앞선 판례와 달리 ‘처벌할 수 없다’고 본 데에는 국가가 국민 양심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의 쟁점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에 정한 '정당한 사유'인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 대체복무제 도입 문제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형사처벌 연관성 등이다.

◇"병역거부는 소극적 행위…처벌은 과도한 제한"
다수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개인의 신념에 따라 병역의무를 따르지 않는 소극적 행위로 봤다. 양심을 적극적으로 표출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한 것에 대해 소극적으로 응하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다.

대법관들은 "형사처벌 등 의무이행을 강제하는 식으로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내면적 양심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파멸시켜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인지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하는 것으로서,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의 해석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다수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인정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2004년 소수 의견이 2018년 다수 의견으로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때 유일하게 무죄 의견을 냈던 이강국 당시 대법관의 의견과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법관은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법의 명령보다 더 높은 종교적 양심상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도 강력한 의무감에 따른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이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피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과잉조치가 될 것"이라며 "국가의 형벌권이 한발 양보함으로써 개인 양심의 자유가 보다 더 존중되고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14년 만에 다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으로 바뀐 것이다.

조선일보

종교·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해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오른쪽 두번째) 씨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병역법 위반 전원합의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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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객관적 증명 못해…간접·정황사실 살펴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향후 개별 사안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다수 대법관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양심을 직접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양심과 관련성이 있는 간접·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소명자료를 제시하면, 검사가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수 대법관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은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며 "신념이 깊다는 것은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신념이 확고하다는 것은 "반드시 고정불변은 아니짐나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고, 진실하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대법관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것과 대체복무제 도입은 무관하다고 봤다. 대체복무제가 없고, 향후 도입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을 때 제기될 수 있는 병역의무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라고 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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