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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KDI, 언제나 완화적 통화정책만 원하는 국책연구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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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자료=KDI



[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본의 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의견을 냈다.

한국의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12년부터 1%대의 상승률을 보여주더니 드디어 1%대 물가 상승률이 고착화됐다는 평가가 많았던 때다.

2011년 한 때 5%에 육박하는 고물가 때문에 아우성 쳤던 때를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일어난 듯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디플레이션 논란이 일기도 했으며, 한은에선 '그런 주장은 과하다'고 할 때였다. KDI도 논쟁 속으로 뛰어들어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논자들에게 힘을 실었다.

2014년 그 시절.

KDI는 일본이 1990년대 초반의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데는 통화정책적 잘못이 크다면서 한국은행의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주문하고 있었다.

이미 사상 최저 수준인 2.00%의 기준금리를 더 내리는 것에 대해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있었지만, KDI는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를 거론하면서 금리인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금리가 이미 상당히 낮은데 또 낮춰서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 때 KDI의 이재준 실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금리가 이렇게 낮지만 물가상승률이 이렇게 장기간 낮은 적도 없었어요. 새로운 실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계부채 등 부채 문제도 간과할 수 없고 경제가 상당부분 유동성 함정에 따져 있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당시 KDI는 "한은은 물가안정이란 본연의 책무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했다. 당시KDI가 말하는 물가 안정은 한은이 금리를 더 내려서 물가를 '올릴' 의무를 말하는 것이었다.

■ 2015년의 KDI

그 이후에도 KDI는 줄곧 '통화완화' 혹은 '금리인하'에 무게를 두는 전망만 내놓았다.

지난 2015년 12월 9일.

KDI는 '2016년 경제전망'을 하면서 미국의 금리정상화에 현혹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미국이 연말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때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금리를 낮게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 KDI는 "통화정책은 큰 충격이 도래하지 않는 한 당분간 현재의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물가상승률이 0%대의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며 물가안정목표를 크게 하회하는 가운데 물가상승압력은 당분간 미약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지적했다.

KDI는 "미국 금리인상 자체가 우리나라의 금리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국내외 금리차 축소가 대규모 외화유출 및 외화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했다.

당시 KDI의 이코노미스트는 조동철 씨였고, 그는 몇 달 뒤인 2016년 4월 한국은행 금통위원으로 뽑혀 갔다. 조동철 위원은 'KDI 본색'을 유감 없이 발휘하면서 금통위 내에서 가장 비둘기적 색채가 강한 인물이 됐다. 2017년 11월 6년 5개월만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릴 때 유일하게 반대했다.

■ 2016년의 KDI

2016년 12월 7일.

그 해 6월 한국은행은 정책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1.25%로 낮춘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KDI는 '물가 하방 압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 즉 금리를 낮추는 실험을 더 해보라는 훈수를 뒀다.

당시 KDI는 "통화정책은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필요한 경우 경기 및 물가 하방압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를 하회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향후 물가 상승세 및 경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물가 상승을 견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랜기간에 걸친 KDI의 '금리 인하 주장' 혹은 완화적 통화정책 필요성 강변 이후 2017년엔 금리가 한 차례 인상되고 만다. KDI 출신인 조동철 위원이 몸소 '인상 반대'를 외쳤지만, 금리는 인상됐다.

■ 2017년의 KDI

2017년 12월 6일.

한은이 전달 뒤늦게 금리를 한 차례 올린 뒤 사람들의 뇌리엔 '금리인상 사이클 시작'이라는 그림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이 때도 KDI는 금리를 더 올리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KDI는 당시 "경기 개선이 견실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워 긴축적 통화정책기조 선택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계 경제의 회복 조짐이 강화되면서 수출과 제조업 중심의 경기개선 추세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의 성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통화정책 기조를 당장 긴축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만큼 경기 상황이 도래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마침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었다. KDI에겐 금리 인상을 해선 안 될 좋은 재료가 눈에 들어온 듯했다.

KDI는 "미국 등 주요국 보호무역주의 및 통상분쟁 심화 가능성 등 하방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도 긴축적인 방향으로의 통화정책기조 변경에 신중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 2018년의 KDI

이날 KDI는 2019년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다시 '완화적 통화정책'을 주문했다.

KDI는 2010년대 들어 금리인하, 통화완화 쪽 주장만 펼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것 없다는 평가도 보일 정도였다.

이날 KDI는 내년 성장률 2.6%, 소비자물가 상승률 1.6%라는 수치를 제시하면서 "내수경기 둔화 및 고용부진으로 인해 물가가 빠르게 상승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현재 수준의 완화적인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KDI는 "최근 공급 측면의 물가상승압력이 강화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인 2%에 근접했으나 근원물가는 1%대 초반의 상승률을 지속하는 등 수요 측면의 물가압력은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 아파트 급등, 가계부채 급증, 유동성 과잉 등으로 인한 주변의 금리인상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KDI는 "수도권 주택가격 급등이나 일부 금융시장의 신용리스크 증대 등 미시적 불안요인에 대해서는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기조의 긴축적 전환보다 해당 시장의 불균형에 직접 대응할 수 있는 미시적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KDI는 왜 항상 '완화적' 통화정책만 원할까

KDI는 2010년대의 상당기간 동안 낮은 물가 등을 근거로 지속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주문했으며, 이런 스탠스를 바꾸지 않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KDI는 늘 금리인하, 혹은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만 외쳤던 기관이지만, 국책연구기관이기 때문에 다른 전망기관보다 더 주목을 받는다"면서 "국책연구기관의 이 같은 태도가 낮은 금리를 원하는 정부의 입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지금의 KDI는 이 관계자의 시각을 터무니 없는 것으로 볼 것이다. 사실 KDI가 과거 오래 전엔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망과 정책 조언을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는 평가도 많다.

이런 가운데 KDI의 경제 전망과 정책 조언이 늘 '통화완화' 쪽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관련해 그들은 경기를 보는 툴이 지나치게 경기와 물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란 추론도 보인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KDI가 늘 통화완화를 원하는 것은 이 기관이 성장률과 물가에 너무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아울러 지속가능한 성장보다는 총수요 관리 차원에서의 대응을 중시하는 것 역시 이런 성향을 강화시켰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즉 KDI가 금융안정 등 다양한 측면보다는 경기와 물가 상황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데다 '현재'의 상황에 초점을 두고 조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이어진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성장세가 한 단계 더 둔화되고 물가 상승률이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KDI식으로 접근하면 금리를 계속 내려야 한다거나, 통화완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의 금융 당국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장세가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물가 상승률도 낮아졌다. KDI가 과거처럼 정부 입김에 휘둘린다고 보지는 않지만, 달라진 경제상황을 바탕으로 경기, 물가를 대입하다 보니 완화적 통화정책 필요성이 입버릇처럼 나오는 것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KDI는 자산가격이나 금융리스크의 문제, 구조적인 문제 등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금융안정 요인이나 성장 잠재력, 구조적 변화를 감안하면서 장기적인 시계에서 정책 조언을 할 수 있었다면, KDI가 '오로지' 완화적 정책만 주문하지 않았을 것이란 관점이다.

다만 여전히 국책연구기관이니 만큼 KDI의 정책조언은 주목을 받는다. 아울러 정부 의중이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아직 남아 있는 모습이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KDI는 한국이 미국 따라서 금리를 인상할 필요 없다는 입장인데, 정부의 스탠스 아니냐는 의심도 받는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이날 나온 KDI 주장은 금리 인상할 때가 아니라는 쪽"이라며 "KDI가 늘 금리 인하나 통화완화를 주장했던 곳이기는 하나 지금 상황에선 또 저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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