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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與, 탄력근로 勞편들기에…재계 "당장 내년엔 범법자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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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이날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과 관련해 이 대표는 민주노총 요구를 어느 정도 반영하겠다는 뜻을, 홍 원내대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취지를 밝혔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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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위한 입법이 사실상 내년으로 넘어가면서 재계는 "기업 현장의 어려움보다 정무적 판단을 우선으로 한 결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순간에 '기대감'이 '우려'로 바뀌었다며 허탈해하는 모습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어려움이 상당히 컸는데, 이에 대한 보완책인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마저 내년으로 미뤄지면 기업은 배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탄력근로제) 보완책 마련이 늦어지면 그만큼 기업 운영과 노무 관리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내년도 단체교섭과 임금협상 등을 앞둔 상황에서 가뜩이나 노조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 요구 등 기업이 느끼는 압박이 크다"면서 "근로시간 운영에 있어서 기업을 경영하는 데 손발이 묶이는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내년에 법이 통과돼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 시행될지 기약도 없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라도 탄력근로제를 대폭 확대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치열한 글로벌 경쟁 국면에서 신제품 개발이나 특정 시기에 일감이 몰리는 사업은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막대한 타격으로 돌아온다는 게 기업들의 절박한 호소다. 대정비 보수 작업이 필요한 석유·화학·철강업, 시운전 기간이 필요한 조선업, 기상 악화로 인한 공사 지연을 대비해야 하는 건설업, 장시간 촬영이 불가피한 방송·영화 등은 올해 말로 예정된 주 52시간 근무제의 계도 기간 종료를 한 달여 앞두고 기업마다 비상이 걸렸다. 처벌 유예 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부터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주 52시간 근무제 규정을 위반하면 대표이사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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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해상 시운전 문제에 대해 고민을 토로해 왔다. 해상 시운전은 건조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 배의 성능을 바다에서 최종 검증하는 작업으로, 일반 선박은 3주, 특수선과 해양플랜트는 1년 이상 소요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번 바다에 나가면 일정 기간이 소요되는 업무 특성상 교대 체제로 근로시간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당장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유와 석유화학 업계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없이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되면 자칫 대형 장치산업인 정유·화학공장에서 심각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3년 주기로 실시되는 정유·화학·발전소 등의 '대규모 정기보수' 작업은 국내 숙련된 인력이 제한돼 있어 추가로 근로자를 갑자기 채용할 경우 미숙련 근로자의 실수에 따른 안전사고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삼성SDS, LG CNS 등 정보기술(IT) 서비스와 게임·소프트웨어(SW) 개발 기업의 고충도 크다. 고객 맞춤형 시스템을 제때 납품해야 하는 프로젝트 사업 특성상 업무량 편차가 크기 때문에 정산기간 1개월은 현실적으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회사 측 입장이다. IT 기업 관계자는 "프로젝트나 SW 개발 막바지에는 1~3개월간 집중 근로를 해야 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최대 허용 시간인 주 64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도 빈번하다"며 "근로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프로젝트 완성 단계에서 기존 수행 근로자를 다른 인력으로 대체하면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져 인력 대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제조업처럼 정형화·표준화된 일을 나눠서 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 개발자가 프로젝트 끝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IT 서비스 기업이 지난 8개월간 진행한 모 프로젝트는 주 평균 52시간을 맞추기 위해 근무량이 과다한 직원들을 조기에 퇴근시키다 보니 납기가 늦어지고, 시스템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IT 업계 관계자는 "특히 특정 시스템이 마비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몇 주간 밤샘 작업을 해야 한다"며 "1개월 규정을 따르려면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최소 6개월 이상은 정산기간을 두어야 법적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성수기 때 인력이 부족하고 비수기에는 인력이 남아도는 현상이 우려된다"면서 "기업이 집중적으로 일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계는 '탄력적 근무시간제' 확대 없이는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생산 물량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염려했다. 통상 신제품 출시를 전후로 성수기가 5~6개월 지속되는데 현행법상 단위기간이 3개월로 짧아 이에 신속히 대응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만약 단위기간이 1년으로 늘어난다면 근로시간 조정이 용이해져 기업들이 제도를 활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두순 기자 / 신찬옥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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