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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승소 판결받고도 눈물 흘린 강제징용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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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변호사협회 회관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발언하고 있다/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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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 저희들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 정말로 감사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7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통받았지만 판결이 나오는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는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29일 대법원이 일제시대 강제 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최종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선고 직후 피해자들은 서울 서초동 변호사협회 회관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15여 명의 소송 관계자들이 나왔지만 강제 노역 피해를 직접 입은 이는 김성주 할머니 뿐이었다. 20여 년이 넘는 소송기간 동안 피해자들이 사망하거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피해 생존자로서 발언에 나선 김성주 할머니는 “오늘에야 내 뜻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끌려가 있던 시간들을 ‘눈물의 세월’이라고 술회한 김 할머니는 자신이 겪어온 일들을 말했다. “어린 동생을 두고 일본에 끌려갔는데 얼마 후 남동생이 죽었다는 전보를 받았다. 일본인 감독자에게 제발 집에 좀 보내달라고 했는데 나는 요건이 안돼서 못 간다고 하더라”며 “결국 일본에 계속 남아있다가 당시 발생한 지진 때 다쳐 평생 걷지도 못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도 고통은 이어졌다. 김 할머니는 “남편은 일본에 끌려갔다는 이유만으로 ‘위안부’라는 말을 하고 때리기도 했다. 고향에 가면 ‘정신대 할머니’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며 “너무나 억울했지만 평생을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외에도 고 박창환씨 등 5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 가족도 참석했다. 2000년 부산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18년이 걸린 재판 동안 당사자들은 모두 사망했다.

고 박창환씨의 아들 박재훈씨는 “아버님이 재판을 신청하시고 2001년에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17년을 아버님을 대신해 소송을 이어왔다”며 “오늘 이런 결과를 받았음에도 기쁘기도 하고 무척 슬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5명 중 단 1명이라도 생존해 이 결과를 봤으면 했는데 참담한 심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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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부산에서 처음 소송을 제기했다가 현재는 모두 사망한 강제징용 피해자 분들의 사진을 소개하는 모습/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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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을 놓고 관계자들은 “아쉽다”고 말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이국언 대표는 “기쁜 날임에도 씁쓸한 마음이 든다”며 “재판부는 단 10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상고를 기각한다’는 한 마디만 하고 나갔다. 피해자들은 이 말을 듣기 위해 20여 년 동안 싸웠다”고 말했다. 이어 “90세가 넘는 김 할머니가 숨어살게 만든 것은 일본 정부, 미쓰비시중공업, 이들을 외면한 한국사회 공동책임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견 도중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대법원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수용 불가”라고 한 사실이 전해졌다. 이에 판결 이후 미쓰비시 중공업에 어떻게 피해 보상액을 받을 것인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 김현 회장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우리 정부와 국화라도 나서 하루빨리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해 달라”고 촉구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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