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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손톱만 한 블록,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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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일한 건축디자이너 관두고 레고그룹 디자이너 된 치운자씨

해리포터·오버워치 제품 등 제작

쥬라기월드, 마블 수퍼히어로, 해리포터 호그와트 익스프레스 기차….

그의 손을 거치면 집채만 한 공룡이 손바닥 크기의 레고 모형이 되고, 영화 속 수퍼히어로는 한 뼘도 안 되는 로봇이 된다. 싱가포르 출신 레고 디자이너 치운자(Chee Woon Tze·43)씨다.

조선일보

싱가포르 출신 레고그룹 디자이너 치운자씨가‘브릭코리아 컨벤션 2018’에서 처음 공개하는‘오버워치’의 캐릭터‘디바’(왼쪽)와‘라인하르트’레고 모형을 들고 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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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빌룬드 레고그룹 본사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그는 마블과 DC코믹스를 넘나드는 디자인으로 레고 마니아 사이에서 '금손'이라 불린다. "수퍼히어로 작업을 할 땐 영감을 얻으려 마블히어로 책과 영화, 대본까지 섭렵했어요. 캐릭터의 본모습을 최대한 살려야 만드는 사람도 재밌거든요."

14일 서울 강남구 레고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그는 온라인게임 '오버워치'의 분홍색 캐릭터 레고 모형을 만지작거렸다. 15일부터 일주일간 경기도 판교 현대백화점 토파즈홀에서 열리는 '브릭코리아 컨벤션 2018'에서 처음 공개하는 모델이라고 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10년 넘게 건축 디자이너로 일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설계사를 거쳐 반얀트리 호텔·리조트 그룹에서 3년간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며 리조트 디자인을 했다. 콘크리트 벽돌을 만지던 그가 작은 플라스틱 브릭(블록)을 디자인하게 된 건 네 살배기 아들 덕분이다.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장난감을 사주자'는 아내의 권유로 아들에게 공룡 모형 레고를 사준 게 계기가 됐다. "'8세 이상'이라고 표시돼 있었는데 모형이 작을수록 브릭을 촘촘하게 쌓아야 해서 만들기 어렵더라고요. 아들을 도와주다 오히려 제가 더 신났죠."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이 만든 모형을 찾아보고 레고 디자인 프로그램도 다운받았다. 아들을 재운 후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레고 조립을 했다. 그는 "브릭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모형을 만들 수 있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2년 동안 조립하고 창작한 모델이 100여개. 2016년 레고그룹 채용 소식을 듣고 그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모두 안 될 거라 했지만 그만큼 간절했어요. 결과를 기다린 한 달이 제 생에서 가장 긴 시간으로 느껴졌을 정도로요."

그는 "완성품을 분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일반 건축과 다른 점"이라며 "레고 세트 한 개를 디자인해 완성하기까지 1년 반에서 2년이 걸린다"고 했다. "레고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놀이 경험'이니까 완성품뿐 아니라 과정에 신경을 씁니다. 하나의 레고 모형을 만드는 데 8~10개의 조립 방법을 생각해요." 스케치 후에 수백 번 다른 방법으로 브릭을 조립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안전성 테스트와 수정 작업을 거쳐 비로소 하나의 세트가 탄생한다.

그에게 레고 디자이너는 '꿈의 직업'이다.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영감을 얻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이들"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레고를 만들어냅니다. 제가 현실로 만든 모델에 다시 상상을 덧붙이는 존재들이죠.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디자인이 그렇지 않다는 걸 그들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제가 만든 레고를 보고 표정이 밝아지는 아이들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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