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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기자수첩]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구요?' 주차관리원 실태 고발, 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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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CBS 류연정 기자

노컷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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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다. 주차관리원들 그렇게 열악하게 일하지 않아요"

대구시설공단 관계자는 단호했다.

주차관리원들이 꽤 많은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으며 그렇게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지 않다는 반박.

하지만 발로 뛰며 들었던 현장의 이야기는 달랐다.

2주 동안 대구의 여러 노상주차장을 돌아다녔다. 몇몇 곳에서는 기자임을 먼저 밝힌 뒤 인터뷰를 부탁했고 일부 노상주차장에서는 어르신들의 처우에 관심이 많은 손님 신분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관련기사 : 하루종일 추위에 밖에서 떨면서 최저임금도 못받는 누군가의 '아버지')

관리원들은 화장실도 편히 못 가고 끼니도 길에서 때워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 대해 가감없이 말해줬다.

6,70대 어르신들은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구청이나 공단에서 위탁 금액 자체를 적게 주니까 이거 운영하는 양반도 많이 벌지는 못해. 그런데 우리가 돈 더 달라고 어떻게 얘기하냐"고 되레 남 걱정을 했다.

하지만 찬 공기에 오래 노출돼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들의 뺨, 도로 한켠에 세워둔 삐걱거리는 의자가 그들이 수 년 동안 버텨온 암담한 노동 환경을 대변했다.

대구시설공단 관계자와 통화를 이어가면서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그제서야 "민간 위탁 주차장 상황이 그런 줄은 몰랐네요. 제가 말씀드린 곳은 공단에서 직영 운영하는 곳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구시설공단은 39개 노상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그의 말대로 '잘' 운영 된다는 곳은 직영인 6개에 불과하다.

공단에서 직접 노동자들을 고용했기에 공단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이 6곳은 그가 자신있어한 만큼 처우가 열악하지 않다. 그래서 기자의 지적을 듣자마자 그가 반사적으로 반박한 것일 터.

반대로 얘기하면, 공단 측이 대다수 노상주차장에 대해서는 '민간 위탁'이란 꼬리표를 핑계로 그동안 관심도 갖지 않았다는 얘기기도 하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노상주차장에 대한 취재를 할 때는 한 구청 관계자에게 이런 얘기도 들었다.

"그것(노동자 근무 환경 개선)까지 저희가 해야 하나요. 사업자가 알아서 할 일인데…"

다소 감성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굳이 제목에 쓴 이유는 여기서 비롯됐다.

대구에 사는 수십명의 어르신이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주차관리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의 아버지, 혹은 나의 가족의 일이었어도 담당 공무원이 그렇게 무신경하게 반응할 수 있었을까.

기자가 느낀 취재 당시의 안타까움은 기사가 나간 후에도 전혀 사그라들지 못했다.

많은 독자들이 문제에 공감하고 피드백을 줬지만 정작 대구시설공단이나 구청에서 반응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기는 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는 문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구청의 경우 모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어서 기자가 직접적으로 기사에 "대구 동구청, 대구 중구청, 대구 북구청, 대구 서구청, 대구 수성구청, 대구 남구청, 대구 달서구청, 대구 달성군청"이란 표현을 적지 않고 "대구 8개 구·군청"이라고 쓴 탓도 있다고 짐작해 본다.

구청 홍보 담당 부서는 날마다 언론 스크랩을 하고 윗선에 보고를 하는데 이때 '대구 ~구청'이라고 검색해보는 곳이 대부분이다.

주차관리원 노동 실태에 대한 본 기사에 구청 풀네임을 쓰지 않아서 해당 기사를 읽지 못했을 거란 자조섞인 위로를 해본다.

다시 대구시설공단 관계자와의 통화로 돌아가보자.

그는 전화를 끊기 전 "다들 주차비가 비싸다고만 하지 관리원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저도 직접 현장에 가보고 더 신경쓰겠습니다"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내년에는 주차관리원의 근무 환경이 조금 개선됐다는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희망'을 그에게서 엿봤다.

담당자가 문제를 인지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변화'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실무자의 의견보다 수장의 의견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해 수장이 나서지 않는 한 변화를 향한 움직임이 없을 거라는 점이다.

대구시와 대구 8개 구·군 수장들이 힘겹게 일해 최저임금도 못받는 '누군가의 아버지'들을 위해 나서는 이색적인 모습은 현실화 될 수 있을까.

현재 대구시장과 구청장 등을 비롯해 지자체장들이 선거에 나서며 내세웠던 훈훈한 캐치프라이즈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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