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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걷다 지치면 쉬다 가는 길, 전망 좋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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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은평구 북한산 둘레길 7구간 옛성길 3㎞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 명소에서

마주친 사람들

내년에도 자주 만나 걷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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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춘대성 성벽 위에 앉아 햇볕을 쬐는 사람들, 북한산 능선을 볼 수 있는 곳에 선 사람들, 철탑이 있는 전망 좋은 곳에서 만난 사람들,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 명소에서 마주친 사람들, 지난 일요일 북한산 둘레길 7구간 옛성길을 걸었다. 올해 이야기가 벌써 추억으로 익었나보다. 사람들이 길 위의 이야기를 달게 한다. 내년에도 자주 만나 길을 걷자며….

산 위의 옛 성곽, 그곳에서 길을 묻다

구기터널, 한국고전번역원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했다. 몇 번의 갈림길을 지나는 동안 도시의 냄새는 숲의 향기로 바뀌었다. 산기슭 옛집 슬레이트 지붕에 낙엽이 쌓였다. 집 뒤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지붕 낮은 집들을 비호하는 것 같았다.

북한산 둘레길 7구간 옛성길 입구를 알리는 아치형 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선다. 고양이 한 마리 숲길을 가로질러 산으로 사라지고, 솔숲을 뚫고 들어온 햇빛이 나무줄기에 피어난 어린 솔잎을 비춘다. 그 싱그러움으로 계단을 오르고 오솔길도 지난다. 얼기설기 엮인 가지 사이로 백악산(북악산) 능선이 보인다.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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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만난 탕춘대성 암문이 길의 상징처럼 든든하다. 탕춘대성이 있어서 길 이름이 ‘옛성길’이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 성곽과 북한산성을 잇는 약 5.1㎞의 성이다.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해서 북한산 비봉 아래까지 이어진다.

탕춘대성 암문 부근 성벽 위 햇빛 잘 드는 곳에 앉아 훤히 트인 전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가지만 남은 커다란 나무가 쓸쓸해 보이지 않는 건 오랜 세월 함께 한 성벽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벽에 앉아 햇볕을 쬐는 아저씨께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대해 물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실주름 깊은 얼굴은 이 길을 한두 번 다녀본 게 아니라는 듯 편안해 보였다.

인왕산과 안산을 손가락으로 짚고 나서 그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무악재의 전설까지 곁들인다. 합정동 부근에서 상암동 일대까지 펼쳐지는 먼 도심 풍경 곳곳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잇는다. 아저씨는 옛성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까지 이야기를 하고 탕춘대성을 따라 산으로 걸어간다.

탕춘대성 암문을 통과해서 걷는다.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성벽의 일부가 햇볕을 받아 훤하다.

북한산 능선을 바라보며 새해를 이야기하다

두 번째 전망 좋은 곳은 산길 바로 옆에 있다. 족두리봉에서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능선을 이 길에서 처음 보게 되는 곳이다. 늠름한 보현봉과 문수봉 사이 옴폭 파인 곳에 기와지붕이 콩알만 하게 보인다. 북한산성 대남문이다. 철탑과 고압전선이 풍경을 해치고 있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그 전망 앞에서 잠시 쉰다. 눈앞에 펼쳐진 봉우리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름을 말한다. 지난번에 지났던 능선길 이야기는 결국 내년 월별 산행 계획으로 이어진다.

이 길에서 시야가 가장 넓게 터진 곳은 세 번째 전망 좋은 곳이다. 길옆 낮은 언덕으로 올라가면 철탑이 있는 작은 마당이 나온다. 보현봉에서 흘러온 북한산 능선이 마지막으로 족두리봉을 세우고 불광동 쪽으로 잦아드는 형국이 한눈에 보인다. 우뚝 솟은 족두리봉에서 사람들은 암벽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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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을 돌아보면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안산이 마치 하나의 산줄기처럼 보인다. 백악산(북악산) 산등성이 북악팔각정 옆으로 한양도성 성곽이 실처럼 이어진다. 인왕산 산마루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에 보이는 바위 절벽은 기차바위다.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는 곳이 안산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자하문 고개, 인왕산과 안산 사이에 무악재가 있다. 조선 시대 한양도성의 안팎을 나누던 산줄기를 도성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아내의 걸음에 맞춰 함께 걷는 부부

이 길에서 네 번째 만나는 전망 좋은 곳은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 조망 명소다. 조망 명소 앞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평탄한 오솔길 말고,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안내판이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보현봉에서 족두리봉까지 이어지는 북한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눈길을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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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전망대에서 머물다 갔다. 그리고 중년의 부부가 전망대로 올라왔다. 아줌마가 숨을 몰아쉰다.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 아줌마가 다리를 전다. 아저씨는 아줌마의 걸음에 맞춰 걷는다.

자리를 비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부부가 계단으로 내려간다. 한 계단 한 계단 꼼꼼히 디디며 걷는다. 아줌마는 내리막 계단도 힘든지 중간에 한 번 쉰다. 앞질러 걸으려 부부가 쉬는 곳을 지나치는데,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 길을 수백 번 다녔어도 올 때마다 힘들다는 아줌마 말 뒤에 힘들어야 운동이 된다는 아저씨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도 몸이 불편한 아줌마의 건강을 생각해서 아저씨는 그동안 아줌마와 함께 이 길을 걸었던 모양이다. 수백 번 지나다닌 그 부부의 발길을 좇아 걷는다.

네 번째 전망 좋은 곳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숲길이 이어진다. 구불거리며 아무렇게 자란 키 작은 소나무 길이 정겹다. 오솔길 밖 불광동 쪽 마을이 가까이 보인다. 늦은 오후 찬바람이 제법이다. 도착지점인 장미공원이 600m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른다. 내리막길 끝에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다 내려서면 장미공원이다.

장미공원 부근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불광역에서 내렸다. 불광역 근처에 알아주는 중국집이 있다. 겨울 늦은 오후 산에서 맞은 찬바람을 녹이기에 짬뽕만 한 게 어디 있겠는가. 저녁 시간도 아닌데 줄을 선 사람들이 열댓 명이다. 짬뽕이 더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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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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