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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성태윤의 이코노믹스] 한국 최저임금 캘리포니아 1.6배…“수요·공급에 맡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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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여건 따라 효과 크게 엇갈려

좋은 투자 환경에선 고용 늘지만

경기 나쁘면 일자리 축소 일으켜

한국은 2%대 저성장 터널 속에서

2년간 30% 가깝게 급격히 인상

실질부담은 미 연방의 2.1배 수준

최저임금 후폭풍

어제부터 최저임금이 10.9% 인상됐다. 주휴수당 등에 따른 추가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16.4% 오른 상태에서 복리 개념으로 보면 2년간 거의 30% 가까운 급격한 상승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이미 수많은 기존 연구들이 나와 있고 외국에서 적용했던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급격한 인상의 결과는 상당히 예측 가능했다.

최저임금은 시장에서 일자리에 대한 수요·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도록 제도화함으로써 고용에 대한 수요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 즉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이나 경제 전반에 실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실증분석의 기존 결과는 여건과 상황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 어떤 한 방향으로 결론짓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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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결론을 제시한 대표적인 두 연구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미국 국가경제분석국(NBER) 카스티요-프리맨(Castillo-Freeman)과 하버드대 프리맨(Freeman) 교수가 분석한 것으로 경제 여건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던 미국 자치령 푸에르토리코에서 미국 본토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시키자 급격한 일자리 축소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1987년 미국 연방과 푸에르토리코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3.35달러로 같게 만들었는데, 이 최저임금 수준은 당시 미국 본토 제조업 평균 연봉의 30%대였지만 푸에르토리코에서는 60% 수준이어서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고용이 9% 감소하고 실업률이 3%포인트까지 증가했다. 특히 일자리에 타격을 입은 청년계층과 비숙련노동자들은 푸에르토리코를 떠나 미국으로 이동하게 된다.

반면 프린스턴대 카드(Card)·크루거(Krueger)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뉴저지 주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인접한 펜실베이니아주보다 일자리 여건을 상당히 개선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의 경우 비교적 경제적 여건이 좋고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독점력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 같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사례다.

이렇듯 상충되는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상황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 짓는 핵심은 최저임금이 경기 여건이나 소득수준, 산업 특성 등 해당 지역경제의 현실 여건에서 크게 괴리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즉 최저임금이 전반적인 임금이나 소득수준, 생산성에 비해 크게 높지 않은 상태에서 인상이 이루어지면 부정적인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최저임금이 현실적인 여건보다 이미 높은 수준인데 인상이 이루어지거나 거시경제와 괴리된 채 급격히 인상되면 일자리를 축소시키고 경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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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지난해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지만, 지역별로 다른 경제 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주(州)별로 최저임금이 다르게 책정됐다. 최고 수준인 워싱턴 주는 11.5달러이고 캘리포니아·매사추세츠는 11달러에 이르지만 연방보다 낮은 수준을 적용하는 조지아(5.15달러)나 와이오밍(5.15달러) 같은 곳도 있다. 뿐만아니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등 아예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주도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낮거나 아예 없기도 한 사우스 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등이 오히려 미국의 신(新)산업지대인 점은 흥미롭다. 앨라배마에는 현대자동차가, 조지아는 기아가 공장을 설치한 곳이다. 이 지역은 우리 자동차회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혼다·닛산·마쓰다 등 일본 회사와 벤츠·BMW 등 독일 회사의 공장이 진출한 곳이기도 하다. 즉 최저임금을 높여 경기가 개선된 것이 아니라, 기업을 유치하고 신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용이 개선되고 궁극적으로는 임금과 소득도 높아진 것이다.

우리 최저임금이 7530원(2018년)이었고 올해 8350원으로 올랐는데 지난해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7.25달러에 그친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로 미국의 6만 달러에 비해 2분의 1정도임을 감안하면, 시간당 최저임금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실질부담은 미 연방 최저임금 기준으로 지난해 한국이 미국의 1.9배이고 올해는 미국의 2.1배로 치솟는다. 주 차원에서 가장 높은 11달러 최저임금을 설정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캘리포니아(1인당 국민소득: 약 7만 달러)를 기준으로 해도 1.5배(2018년), 1.6배(2019년) 수준이다.

특히 우리는 경제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비용 인상 충격이 가해졌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아니어도 에너지·금융 등 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큰 비용 충격이 가해지면 고용이 감소하거나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며, 그 결과 실물 경기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보다 이미 높은 최저임금 부담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30% 가까운 비용 충격이 고용 악화와 경기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결국 핵심은 최저임금의 존재 자체보다 이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노동비용 증가가 경제 전반에 충격이 될 수 있는 구조에서 급격한 인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 부정적 효과가 완화될 수는 있다. 시간이 지나면 영향이 줄어드는 것이 충격의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경제가 겪어야 할 고통은 상당하다. 에너지나 금융 비용은 정책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많은 반면, 최저임금으로 인한 노동 비용 증가는 정책의 궤도 수정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정책적으로 수정 가능한 경제의 위험 요인을 증폭시킬 이유는 없다.

국민소득 6만 달러 싱가포르 최저임금은 82만원
싱가포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6만 달러(2017년)로 미국에 필적하는 수준이고 아시아에서는 석유 부국인 카타르 다음으로 높은 나라이다. 그렇다면 싱가포르의 최저임금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싱가포르에는 의무적으로 강제되는 최저임금이 없다. 다만 두 가지 예외가 있다. 청소 인력은 2014년부터 월 1000싱가포르 달러(약 82만원), 경비인력은 2016년부터 월 1100싱가포르 달러(약 90만원)가 최저임금이다.

노동정책을 관할하는 싱가포르 정부 인력부(MOM)는 자국인과 외국인을 포함해 최저임금을 정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임금은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주는 기술·능력·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주는 경쟁적 임금 지불 구조를 지녀야 한다고 규정한다. 최저임금은 없지만 아시아 최고의 기업 환경으로 국내외 회사들을 끌어들여 이들이 투자하고 고용하도록 함으로써 최저임금이 존재하는 어떤 나라보다 일자리와 높은 임금과 소득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싱가포르에 최근 변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저임금 제도의 도입 논쟁인데, 이를 도입하더라도 싱가포르의 국제 경쟁력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와 중요한 경쟁 대상인 홍콩의 1인당 GDP가 4만6000달러(2017년)로 높은 평균소득을 갖고 있는데, 시간당 34.5홍콩달러(약 4950원)로 최저임금을 설정하지만 이것이 홍콩의 경쟁력을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최저임금이 경제 상황이나 국제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는 최저임금 제도의 존재 자체보다 실제로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싱가포르에서의 최저임금 논쟁은 경제의 성장전략과 큰 관련이 없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 정부가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는 시점이 오더라도,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거나 경제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경쟁력을 지니는 산업으로 경제 구조를 재편하고 이를 위해 효율적으로 자원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이것이 싱가포르가 부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미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개발연구원·카이스트를 거쳤다. 돈의 법칙을 관찰하는 것이 주관심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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