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원이 일본기업 신일철주금의 국내 재산 압류를 승인했다.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데 따른 조치지만, 향후 외교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 3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청한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의 국내 재산 압류를 승인했다.
압류 대상은 신일철주금이 보유한 주식회사 피엔알(PNR) 주식 8만1075주다. 가액은 4억여 원 정도로,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피해자들이 배상받을 금액과 동일하다. PNR은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다. 신일철주금은 110억 원 상당의 PNR 주식 234만여 주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인단은 실제 압류 지분을 매각하는 절차는 신일철주금과의 협의 과정을 지켜본 뒤 별도로 진행할 계획이다. 신일철주금이 전향적으로 나서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한다면 압류가 풀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한·일 양국의 외교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베 총리는 이 사건 압류 신청 단계에서 한차례 유감을 표시했다. 실제 매각이 이뤄질 경우 자국민 자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정부와 외교적 해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에서 압류 승인이 나면서 이 문제는 정부가 간섭할 수 없는 ‘사법절차’로 굳어져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경우도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재판이 열리지 않는다.
향후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 판결을 통해 추가 배상청구에 나설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재산은 우리 법원이 직접 강제집행할 수 있지만, 일본에 있는 자산은 일본 사법 당국의 ‘집행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결론을 확정지었다.
우리 정부가 나서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국내 비난 여론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서 일부 대법관은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대신 정부 차원의 배상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해 10월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보면 권순일 대법관과 조재연 대법관은 “한·일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해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피해국민에 대해 지는 책임은 법적 책임이지, 이를 단순히 인도적·시혜적 조치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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