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게티이미지코리아 |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 자산 압류신청을 승인한 것과 관련, 9일 한일 청구권협정 규정에 따라 한국 정부에 협의를 요청했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오후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청사로 불러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한 2개국 협의를 요청했다. 아키바 사무차관은 한국 법원이 자산 압류신청을 승인한 것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사는 아키바 차관과 10여분간 면담하고 나온 뒤 기자들에게 “한일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니 이럴 때일수록 한일 양국이 서로 관리를 잘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주재로 관계 각료회의를 열고 신일철주금에 대한 자산압류 통지가 도착하는 대로 한국 정부에 협의를 요청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이후 외무성은 우리 법원의 결정이 신일철주금에 통지된 사실을 확인하고, 이 대사를 초치했다.
압류명령 결정은 서류가 송달되면 즉시 효력을 발생한다. 이에 따라 신일철주금은 포스코와 합작한 PNR 주식 8만1075주의 매매, 양도 등 처분 권리를 잃었다.
앞서 스가 관방장관은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원고(강제동원 피해자) 측에 의한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 움직임은 매우 유감”이라면서 “정부로선 사태를 심각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해석과 그 실시에 관한 분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조만간 협정에 기초해 협의를 한국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스가 장관은 또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이래 한국 정부에 대해 국제법 위반 상태 시정을 포함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요구했지만 아직 구체적 대응이 없다”고 한국 정부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작년부터 관계 부처에서 대응책을 검토해 온 만큼 이를 토대로 확실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2개국 협의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일 청구권협정은 협정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면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하게 돼 있다. 2개국 협의는 이 ‘외교상 경로’에 해당한다. 2개국 협의로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3국 위원도 참여하는 중재위원회에 회부하도록 돼 있다. 일본 정부는 중재위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다만 한국 정부가 일본의 요청에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201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협의를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응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이번 사안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아도, 협의 요청과 제소를 통해 국제 여론전을 벌이겠다는 생각이다. 일본 정부 내에선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관세 인상이나 일본 내 한국 기업의 자산압류로 맞대응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그 문제를 외교부와 총리실이 주관하고 있으니 입장이 정리되면 공개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전날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변호인단이 신청한 신일철주금 한국 자산인 PNR의 주식 8만1075주에 대한 압류를 승인했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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