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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최저임금에 밤9시부턴 적자타임" 자영업자 26% 영업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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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9시10분쯤 서울 광화문 사거리 일대 골목 상권을 돌아보니 식당과 카페들의 불이 듬성듬성 꺼져 있었다. 한 카페는 지난해까지 오전 7시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 마감을 했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올해부터 1시간 일찍 문을 닫고 있다. 이 카페 아르바이트 직원은 "지난해까지는 하루 7시간씩 일을 했는데 지금은 5시간만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하루 7시간씩 5일을 일해 일주일에 31만9200원을 받았지만 올해는 하루 5시간씩 6일간 일하고 30만600원을 번다. 아르바이트 직원이 없는 시간엔 사장이 직접 나와서 일한다고 했다.

올 들어 최저임금이 10.9% 오르자 자영업자들이 잇따라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주휴수당까지 지급해야 하자 업주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가게 문을 일찍 닫기 시작한 것이다. 영업시간이 줄면서 직원들의 일당이 줄고 아르바이트 일자리까지 감소하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 업주는 "지금은 손님이 뜸한 밤에 영업을 하면 인건비와 전기요금도 못 건진다"면서 "차라리 문을 일찍 닫는 게 속 편하다"고 했다.

◇불 꺼지는 대한민국… 최저임금 무서워 일찍 문 닫아

자영업 중에서도 특히 인건비 비중이 높은 외식업계에서 영업시간 단축 사례가 많았다. 본지 취재진이 9일 서울 무교동 식당 14곳에 문의한 결과 그중 5곳인 35%가 올 들어 영업시간을 단축했다고 답했다. 이 업체들은 대부분 개점 시각을 늦추거나 폐점 시각을 앞당겨 평균 1시간 정도 영업시간을 줄였다. 한 업체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을 만들기도 했다. 다른 업체들도 대부분 지난해 영업시간을 줄였거나 아르바이트 직원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있었다. 무교동 한 돼지고기 전문점 사장은 "일요일 휴무에, 영업시간도 이미 1시간 이상 줄였기 때문에 더 이상 영업시간을 못 줄인다"며 "어쩔 수 없이 지난 연말 아르바이트 직원 9명 중에 4명을 해고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PC방은 지난해까지 24시간 운영을 했지만 올해는 평일엔 오전 2시에 마감하고 있다.

조선비즈

한 시간 일찍 문 닫습니다 -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한식집 이천영양돌솥밥 사장 황태근씨가 식당 앞 유리창에 영업시간 단축을 공지하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올해 또 한 번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황씨는 영업 마감 시각을 기존 오후 10시에서 한 시간 앞당겼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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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시간 단축으로도 인건비를 감당 못 하는 업체들은 휴무일을 만들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고깃집은 오후 6시부터 오전 2시까지 영업을 했지만 올해부터는 오전 1시까지만 영업을 하고 토요일은 휴무일로 정했다. 이 업체 사장은 "주로 직장인들 상대로 영업을 하다 보니 매출이 급감하는 토요일엔 문을 닫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경기 불황도 불 끄는 시간 앞당겨



조선비즈


자영업자들이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에 경기 불황, 주 52시간제 도입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카드가 지난해 8~11월 각종 식당에서 신용카드 사용 시간대를 분석한 결과 오후 9시 이후 법인카드 이용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7% 감소했다. 저녁 술자리가 줄었다는 뜻이다. 서울 종로구 이천영양돌솥밥 황태근 사장은 "지난해부터 저녁 손님이 감소해 올해는 마감 시각을 오후 9시로 한 시간 당겼다"고 말했다. 현재 직원 4명을 쓰고 있는데 1시간 일을 더 시키면 총 4만원 이상 인건비가 나간다고 했다. 그는 "주인들은 식당에서 팔다 남은 밥으로 세 끼 때우기 일쑤고 벌어가는 돈도 없다"면서 "앞으로 5~6개월 버티다 안 되면 직원들 모조리 해고하고 식구끼리 장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소상공인연합회가 사업체 1204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저임금 실태 설문조사에서도 영업시간을 줄였다는 업체는 26.4%, 직원을 줄였다는 업체는 16.9%로 집계됐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영업시간 줄이는 게 첫째, 직원 자르는 게 둘째, 폐업하는 게 마지막 단계"라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게 취지는 아름답지만 현실은 자영업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면서 "이제 과도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그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강한 기자(kimstrong@chosun.com);장유나 인턴기자(서울대 중어중문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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