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의정 사상 최대 표차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합의안 하원 표결에서 패배했지만, 불신임 투표에서는 살아남았다. 메이 총리는 정당 지도자들을 만나 의회가 원하는 내용을 듣고 실천하겠다고 밝혀 EU 측과 합의문 재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런 협정을 맺지 않고 이별하는 ‘노 딜 브렉시트'가 재앙임을 알고 있는 EU 측은 영국 상황을 고려해 브렉시트를 2020년까지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더타임스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당초 오는 3월 29일 이별할 예정이었던 EU 측은 영국 정부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3개월 정도 연기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하지만 그 기간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아예 내년까지 연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더타임스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메이 총리가 EU 지도자들에게 ‘재협상을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페터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도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EU는 영국이 합의를 이루도록 시간을 더 줘야 한다고 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좀비 정부'는 막을 내려야 한다"며 제출한 불신임안 투표에서 찬성 306표 대 반대 325표로 살아남았다. 노동당은 앞으로도 기회를 봐 또다시 불신임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메이 총리는 야당 지도자들을 만나 의회를 통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하지만 코빈 대표는 “정부가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며 만남을 거부했다.

브렉시트 일자가 연기되면 영국 정부가 EU 측과 추가 협상을 벌여 의회의 반발을 샀던 안전장치(백스톱ㆍbackstop)에 대한 내용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에서 발생할 혼란을 줄이기 위해 2020년 말까지 북아일랜드가 EU 관세동맹에 남아있는 내용인데, 영국이 일방적으로 이를 중단할 수 없어 브렉시트 강경파들의 반발을 샀었다.

영국 경제계 지도층 인사 172명은 의회가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두 번째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가디언이 17일 보도했다. 서한은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EU를 떠나고 싶은지 다시 묻는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더는 허상에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고 했다.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나이절 패라지 전 영국독립당(UKIP) 대표는 유럽의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국민투표가 다시 실시되면 오히려 EU 탈퇴 응답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 사람들은 매우 차분하지만 그들은 사자"라며 “너무 압박을 받으면 포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2차 국민투표를 위해 싸워야 한다면 영국 국민은 더 저항하게 될 것이고, 더 많은 다수가 브렉시트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EU 측의 양보를 얻어내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파와 과반 득표의 키를 쥔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의 동의를 받는 방안을 플랜 B로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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