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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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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기자의 한국 술도가]연잎 넣어 부드러운 막걸리, 3대가 90년 이어온 당진 신평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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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평양조장은 양조장 건물 바로 옆 미곡창고 건물을 개조해 2015년부터 백련양조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90여년에 이르는 양조장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고 막걸리 빚기, 쌀누룩 입욕제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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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을 코끝에 갖다 대니 달달한 참외향이 물큰 풍겼다. 한 모금 머금자 데운 우유처럼 부드러운 촉감이 입안을 감쌌다. 삼키고 난 후에도 막걸리 특유의 텁텁한 느낌이 전혀 없고 깔끔했다. 충남 당진 신평양조장에서 마신 프리미엄 막걸리 ‘미스티’는 막걸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모름지기 막걸리란 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켜고 입에 머금을 새 없이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넘겨야 제맛인데, 이 술은 입안에 담았을 때의 질감도 목을 타고 넘어갈 때의 느낌도 ‘참 곱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와인처럼 천천히 음미하며 조금씩 마시게 된다. 술을 담은 병도 예쁘다. 매끈하게 뻗은 반투명 유리병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인증샷을 찍고 싶을 정도로 잘 빠졌다. 상쾌한 과일향에 부드러운 맛, 예쁜 디자인까지 여성과 젊은층,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이유를 알 만했다.

이어 맛본 일반 막걸리 ‘스노우’도 연한 탄산에 은근한 단맛이 입안에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깔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막걸리에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이런 맛이 나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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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양조장에서 만드는 백련 막걸리는 연잎을 넣어 은은한 향과 함께 뒷맛이 깔끔한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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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연잎에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평양조장을 물려받은 김용세씨(76·대한민국 식품명인)는 젊을 때부터 스님들과 교유하며 사찰의 곡차(절에서 빚은 술을 이르는 말) 문화를 접했고, 그중에서도 연술에 관심을 가졌다. 예부터 조상들은 백련의 꽃과 잎을 음식이나 술에 다양하게 활용했다. 싱싱한 연잎은 여름에만 구할 수 있다. 연잎은 잘 말려서 덖은 후 잘게 부숴 술을 익힐 때 넣는다. 역할을 다한 연잎은 발효가 끝나고 막걸리를 거를 때 건져낸다. 이렇게 만든 막걸리는 은은한 향과 함께 깔끔한 뒷맛을 낸다.

쌀도 맛의 비법이다. 신평양조장은 막걸리를 빚을 때 당진에서 난 햅쌀만 쓴다. 지역 농민과 상생하자는 취지도 있다. 연간 쌀 구매량이 65t에 이른다. 미스티 등 고급 제품에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거친 당진 해나루쌀을 사용하는데 일반 정부미보다 가격이 두 배가량 높다.

좋은 재료에 수십년 묵은 전통 기술을 더한 백련 막걸리는 2008년 출시 직후부터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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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청와대 만찬주로 대통령 상에 올라간 백련 생막걸리 ‘스노우’(6도)와 숙성된 막걸리에서 맑은 부분만 걸러낸 청주 ‘백련 맑은술’(12도). 백련 맑은술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참석한 삼성그룹 사장단 신년 만찬상에 올라 화제가 됐다. 삼성 사장단 만찬에 와인이 아닌 전통주가 선택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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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엔 스노우가 청와대 만찬주로 선택됐고, 2014년엔 이건희 회장의 생일을 맞아 열린 삼성그룹 사장단 신년 만찬장에 ‘백련 맑은술’(청주)이 오르면서 ‘회장님의 술’로 유명해졌다.

신평양조장은 역사가 86년에 이른다. 1933년 김순식씨가 외삼촌이 하던 화신양조장을 인수하며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해방 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아들인 김용세 명인이 뒤를 잇다 지금은 손자 김동교씨(45)가 대표를 맡고 있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김 대표는 2010년부터 가업을 잇고 있다. 막걸리를 세련된 유리병에 담은 것도, 서울 강남역 인근에 막걸리바 ‘셰막’을 열어 백련 막걸리 홍보와 함께 전통주 시장을 키워가는 것도 모두 그의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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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양조장 김동교 대표가 시음할 막걸리의 특징을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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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 바로 옆에 들어선 백련양조문화원엔 3대에 걸친 술도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쓰던 미곡 창고를 개조한 건물 안에는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커다란 목제 발효 통이 버티고 있다. 양조장 역사를 보여주는 손때 묻은 자료들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50~60년 전 사용하던 세무공문철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발급된 주류제조 면허증, 직원들 보건증, 막걸리를 배달하던 자전거 수리비 영수증은 물론 막걸리 첨가물 회사의 영업용 전단까지… 깨끗하게 보존된 자료들을 둘러보다 보면 이런 자세로 술도 얼마나 꼼꼼하게 만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1930년대에 간행된 <주조독본> <조선주조사> 등의 책은 지도 위에 막걸리와 소주 등 주종별 생산량과 시장 비중 등을 그래프로 나타낸 정교한 자료가 있을 정도로 사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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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조강록>. 재무부 양조시험연구소(현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의 전신) 이성범 소장이 지은 것으로 돼 있다. 책에는 젊은 시절 양조를 공부하던 김용세 명인이 밑줄 긋고 메모를 한 흔적이 빼곡하다. 김 명인은 1950~60년대의 막걸리 레시피가 담겨 있는 이 책을 활용해 전통 방식의 막걸리 신제품을 올 상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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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원에선 막걸리 빚기, 막걸리 소믈리에 클래스, 쌀누룩 입욕제·막걸리 초콜릿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1시간30분에서 2시간이 소요된다. 체험비는 2만5000~4만5000원. 체험은 15인 이상 단체만 가능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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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숙성용으로 사용해 온 옹기. 90년 가까이 사용하며 여기저기 깨지고 갈라진 부분을 수리해 사용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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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들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며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해당 지역의 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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