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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위안부 증인이자 인권활동가…"날개 달고 편히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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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해진 기자, 김영상 기자, 이지윤 기자] [(종합)'아이캔스피크' 실제 모델 김복동 할머니 별세…마지막까지 日에는 분노·약자에는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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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후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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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공개청문회에서 "일본은 강요와 협박으로 우릴 성노예로 만들었다"고 일갈하고, "'미안하다'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냐"고 엄히 꾸짖던 '나옥분 할머니'가 김복동 할머니 앞에 섰다. 영화와 현실 속 위안부 피해자를 대표했던 두 사람은 결국 제단을 앞두고서 인사를 나눴다.

일본군 위안부 만행과 피해자의 짓밟힌 삶을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옥분 역을 연기했던 배우 나문희씨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았다. 이날 빈소를 꾸린 지 20여분 만에 도착한 나씨는 "날개를 달고 편한 세상에 가셨으면 좋겠다"고 고인을 보냈다.

김복동 할머니는 전날 밤 10시41분 향년 93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김 할머니는 이달 11일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일본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분노를 거두지 못한 채, 일본의 사과를 끌어내지 못한 한을 안고 떠났다.

김 할머니 장례의 상임장례위원장을 맡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할머니께서 임종의 순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윤 대표는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사력을 다해, 일본을 향해 강한 분노를 표출하셨다"고 강조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4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22살에 돌아왔다. 1992년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을 공개하면서부터 위안부 피해 증언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1992년 1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가 시작된 후에는 2017년 병석에 눕기 전까지 거의 매주 집회에 참석했다. 2012년부터는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며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투신했다.

2015년 한일 양국이 체결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머니는 2016년 1월13일 1213차 수요집회에서 일본 정부가 출연하기로 한 10억엔(약 100억원)에 대해 "100억이 아닌 1000억을 줘도 안 된다"고 "억지로 끌려가 희생당한 우리들에게 맺힌 한이 있는데 돈 한두 푼에 목을 매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머니는 본인의 이름을 딴 '김복동의 희망' 장학재단을 만들어 분쟁지역 아동을 돕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2017년 정의기억재단에서 여성인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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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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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빈소에는 김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 3시쯤 빈소를 찾아 침통한 표정으로 헌화했다. 이어 응접실에서 상주들과 면담한 문 대통령은 조객록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라는 추모를 남겼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할머니께서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며 "고생 많으셨다. 편히 쉬십시오"라고 애도를 표했다.

2010년부터 김 할머니와 함께 피해자 쉼터에서 생활한 길원옥 할머니(91)도 빈소를 찾았다. 길 할머니는 2012년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김 할머니와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 지원 기금인 '나비 기금'을 발족하기도 했다.

정의연 관계자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서 내린 길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김 할머니 영정 사진만 한동안 바라봤다. 이어 김 할머니의 조문보를 보며 "조금만 더 있다가지"라고 작은 목소리로 고인을 향해 말했다.

김 할머니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강한비양(16)은 "김복동 할머니를 존경해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지킴이 활동을 해왔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할머니 뜻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월1일 금요일이다. 김 할머니의 운구차는 서울광장과 일본대사관을 거쳐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거친 뒤 천안 망향의동산에 장지가 마련될 예정이다.

이해진 기자 hjl1210@, 김영상 기자 video@mt.co.kr, 이지윤 기자 leejiyoon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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