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노물리 포구에서 과메기가 익어가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이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린다
바람만이 휑뎅그렁한
플랫폼에서
두 가닥 철길은
마른 삭정이처럼 길게 휘어져
소실점을 남기며 사라지고
그리움도 이렇듯 평행선인가
(하략) - 주영욱, <용궁 간이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누군가 그리운 이가 있거든 등대로 가라
기다림은 언제나 그리움을 전제로 한다.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다. 그 기다림이라는 애틋한 마음속에는 그리움이라는 아름답고도 슬픈 그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목이 메는 그리움이 있을 때, 목이 메는 기다림은 선택지조차 없는 어쩌지 못하는 필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망망한 바닷가에 등대(창포말 등대) 하나.
어둠을 밝히며 등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길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가 있기라도 했단 말인가. 푸른 새벽을 가르며 나아가는 빛살이 애처로우면서도 끈질기다.
어린 시절, 도회지의 공장으로 돈 벌러 떠난 우리네 누이들이 명절이라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 마을의 동구 밖까지 나가 하매 올까 기다리시던 우리 어머니들의 안쓰러운 마음처럼, 또 그 시선처럼, 등대는 푸른 새벽의 밤바다를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돌아올 누군가는 알까. 동구 밖 당산나무처럼 긴 세월을 뿌리박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그 마음을... 등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먹빛 바다에서는 만선의 꿈을 키우는 어선들만 오락가락 불빛을 밝힌 채 분주하다.
누군가 그리운 이가 있거든 등대로 가라고, 그래서 등대의 마음을 배워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소설 <등대지기>의 주인공은 '바다는 대지의 끄트머리까지 밀려난 인간이 마지막으로 자유를 느끼는 곳'이라고 했었다. 그 마지막 자유의 공간, 그 끄트머리에서 등대는 하염없이 불을 밝히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 기다리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사실을 등대도 알고 있었나 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날, 푸른 여명의 시간에 등대만이 돌아올 탕아(?)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등대의 시간이 마무리될 무렵, 많은 사람들 역시 새벽의 시간을 지나 바다를 건너올 일출(日出)을 바닷바람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정월 초하루가 아닐지라도 각자 자신만의 첫 일출을 영접함으로써 새해의 부푼 희망을 염원하고자 하는 마음들도 거기에 더불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헐, 이런...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경계를 따라 구름이 몽글몽글 가득이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른 새벽을 달려온 이들에겐 분명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그들의 실망이 두런두런 바닷가를 서성인다.
"날씨 찾아봉께 구름이 있을끼라카더만 진짜 그렇다아이가. 우짜노... 오늘은 고마 배리뿟따..."
가벼운 탄식들이 영덕의 해맞이공원 앞 절벽 아래로 우수수 떨어져 흩어지고 있었다. 또 다른 일군의 여행객들은 그래도 혹시나... 하며 어쩌지 못하는 희망에 발을 동동거리며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절벽 아래의 갯바위에 앉아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기다림의 크기만큼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먼 바다에서 달려온 파도만이 냅다 제 몸을 절벽에 철썩~ 부딪는다. 어이쿠~ 깜짝 놀란 일출객들이 허둥대는 사이, 그때 수평선 너머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결국,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풍선이 부력을 이기지 못하고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르듯 태양은 수평선을 넘어 힘차게 솟아올라야 했건만, 태양은 고사하고 햇살만 그저 구름 저편에서 번지기만 할 뿐 구름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나마 여명의 붉음이라도 담으려는 일출객들의 카메라만 분주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
일출의 여정이 끝이 나자, 먼 길을 달려온 그들은 그들이 영덕엘 온 이유를 그제야 깨닫는다. 사실 일출 감상은 덤일 뿐, 정작 영덕을 찾은 이유는 걷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걸어야 할 코스는 영덕 '블루로드 B코스'(해파랑길 21코스). 영덕 해맞이 공원에서 죽도산과 축산항까지 이어지는 15.5km 남짓의 해안길 코스다.
영덕 블루로드는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688km의 해파랑길의 일부로, 영덕 대게공원을 출발하여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까지 이르는 도보여행을 위해 조성된 약 64.6km의 해안길이다. 총 4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A코스는 '빛과 바람의 길', B코스는 '푸른 대게의 길', C코스는 '목은사색의 길', D코스는 '쪽빛 파도의 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영덕 블루로드의 여러 코스 중 가장 방문객이 많다는 블루로드 B코스는 해맞이공원에서 시작된다. '환상의 바닷길'이자,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이라는 타이틀이 새삼 걷는 이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길은 바다를 에둘러 이어져 있는 해안길인지라, 거칠고 또 투박하다. 그리고 고요를 부수며 달려드는 세찬 파도의 울부짖음은 걷는 이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육지의 끝, 삿갓을 뒤집어 놓은 듯이 누워있는 죽도산(竹島山)을 보며 걸어야 할 오늘의 여정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바닷가로 내려서면 수억 년의 세월 동안 땅과 바다가 만나 요모조모 빚어 놓은 갯바위의 거칠면서도 위압적인 위용이 걷는 이를 압도한다. 길은 더러는 바위를 타고 넘어야 하고, 깊숙이 육지를 침범한 바다를 피해 나무데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나는 주상절리. 햇살을 역광으로 받아 더욱 시커먼 위용으로 으르렁대는 한 마리의 맹수 같은 모습에 주눅이 들려는 찰나, 웬걸... 그런 웅장한 거인 같은 바위의 꼭대기에 머리카락 마냥 나무가 자라고 있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애지중지하던 어느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고, 종내는 피식 웃고 만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척박한 곳에 터를 잡아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만 그 생명력은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먼 바다를 건너온 파도는 그런 갯바위가 좋아 자꾸만 밀려들고 부서지며 또 밀려간다. 어쩌면 힘차게 달려와 안기는 파도일진대, 제 몸 하나 어쩌지 못하는 바위이고 보면, 바위는 제 처지가 무람하고도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위는 그저 가슴팍만 내어준 채 멍이 들어 깨어져도 상관없다는 듯 그렇게 무심하기만 하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안기지도 못하고, 또 안을 수도 없는 사랑을 하는 그들의 마음을 뉘라서 알까. 그 아픔이야 오죽할 것인가. 더러는 그런 사랑도 있느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갯바위 절벽을 따라 이어진 길은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걸음은 조심스럽고, 또 더디다. 그러니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바다는 지천이다. 망망대해가 그저 대처에 널려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은 뻥 뚫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리움도 가득이다.
동해의 바다는 늦은 봄날 분분히 낙하하는 꽃잎들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해구 아래로 꺼지듯 내려앉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가장 깊은 곳은 4,000m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 해변은 짧고, 서해나 남해에서처럼 오밀조밀 표표히 떠다니는 섬은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해의 바다에 서면, 그저 아득하다는 말 말고는 달리 할 말도 없다. 지향점조차 없는 망망(茫茫)한 대양의 바다가 동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래서일까. 신경림 시인은 이곳 동해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저 너른 바다처럼 너그러워지기를 소망했었다. 오랜 세월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마침내 단련되어진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를 고민했던 것이다. (*신경림의 시, <동해바다-후포에서>)
나는 이 바다를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도 머나먼 숙제로 남을 것이다. 동해의 깊고 너른 바다의 속내를 알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질 뿐, 그저 바라볼 뿐이다. 다만, 동해의 바다는 아득해서 두려웠고, 목이 메듯 깊은 그리움이 있었으며, 그래서 조금은 슬프기도 한, 그런 바다였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멀리 방파제가 보이고, 이정표는 대탄항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준다. 갯바위를 벗어난 길은 포장도로로 이어진다.
길을 걷다 만나는 해수욕장은 또 다른 덤이다. 거친 갯바위를 넘나들며 바닷가를 걷다 만나는 해수욕장의 뽀얀 백사장은 갯벌의 개흙처럼 보드랍고, 또 푹신한 스펀지처럼 퍽퍽하다. 불현듯 동심으로 돌아간 그들이 밀려드는 파도와 술래잡기라도 하는 양이면 하하~ 호호~ 그들도, 보는 이도 즐겁다.
오보 해수욕장을 넘실대던 파도는 재빠른 젊은이들을 뒤쫓느라 나름 의욕이 넘쳐난다. 어쩌면 계속되는 술래잡기에 파도는 골이라도 났는지 내미는 손길이 제법 사납고 매섭다. 하지만 어쩌랴. 계속되는 헛손질에 성난 파도는 애꿎은 백사장의 모래만 할퀴고 또 할퀴며 새된 소리로 쏴아아~ 울고만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과메기를 만나다
다시 길은 얼마간의 도로를 지나고, 다시 바닷가로 이어진다.
무심코 바라본 저 멀리에서 노물리 방파제의 빨간 등대가 아는 체를 한다. 아뿔싸! 노물리 방파제는 언제부터인가 갈매기들의 차지가 된 듯하다. 회색의 콘크리트 구조물(테트라포드)은 또 다른 회색인 갈매기 배설물에 가려 제 빛을 잃은 지 벌써 오래 전의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방파제가 감싸고 있는 바다는 고요하다. 그리고 이른 아침의 햇살이 비끼는 바다는 붉다. 그 바다 위에 조업을 마친 배 한 척이 한가로이 뒤늦은 잠에 빠져 있는 듯 한가롭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람들이 토해내는 탄성에 주변이 왁자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어! 이건 뭐지? 방파제 옆 너른 백사장에서 과메기가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먹어 보기만 했지, 과메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처음 보는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뼈와 내장을 내어 주고 살만 남은 청어가 빨랫줄에 줄지어 널린 채 제 몸이 어서 마르기만을, 그래서 촉촉하게 굳어 품질 좋은 과메기가 되기만을 모가지도 없는 몸으로 학수고대(?)하며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원래 과메기는 청어를 말려서 먹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동해 앞바다에서 제일 흔하던 청어가 60년대 이후 드물어지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단다. 마침 어민들 입장에서는 꽁치를 과메기로 만드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했으니, 청어에 비해 살집이 적은 꽁치는 맛은 비슷하면서도 건조 기간이 짧아 제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메기라는 이 정체불명의 이름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원래 청어는 동해(특히 포항 인근)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흔하디 흔한 물고기였다고 한다. 배고프던 시절, 이 흔한 생선을 오랫동안 두고 먹어야 했는데, 그 저장 방법이 난망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부엌 살창(작은 창) 옆에 걸어둔 청어가 창을 넘나드는 바람과 부엌의 연기에 꼬들꼬들하게 마르게 되고, 먹어도 되나?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버리기 아까운 마음에 먹어보니, 어라~ 맛도 좋고 저장성도 좋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지방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청어를 말려서 두고두고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점차 말리는 청어의 양이 늘자, 빨랫줄 같은 장대에 청어를 효율적으로 줄줄이 매다는 방법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엮는 방법을 주로 애용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눈이 뚫린 물고기라 해서 '관목어(貫目魚)'라는 나름 고급진(?)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어려운 발음 탓에 부르기 쉬운 '과메기'로 발음이 점차 변형되기에 이르렀고, 이것이 널리 알려지게 됨으로써 말린 청어를 과메기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우리의 맛 이야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런데 노물리의 바닷가에서는 청어만이 '날 잡아 잡수~' 하고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둥이가 몸의 반인 아귀조차도 제 뱃속을 훤히 드러낸 채로 찬 겨울의 바닷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청어나 꽁치가 제 몸의 수분을 내어주고, 기름진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아귀는 아귀찜의 담백한 살맛이 그러하듯 아귀의 몸에서 수분이 메마름의 경지에 이르면, 아귀는 이 지방만의 특산품(?)인 아귀포가 되어 술꾼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고 한다. 먹어보니, 과연 쥐포보다도, 먹태보다도 부드러웠고, 또 감칠맛과 풍미가 있었다.
노물리의 바닷가에서, 누군가는 제 몸을 내어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몸을 취함으로써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도 그러하다. 불현듯 소주 생각에 침이 고인다.
만선의 배가 들어온 것인지 갈매기들이 분주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편에 계속>
● 가는 길
- 자가용
해맞이공원이나 풍력발전단지 내에 주차 가능.
축산항에서 해맞이공원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농어촌버스 이용, 오보 해수욕장이나 대탄항 하차
● 먹거리
영덕대게는 12~5월이 제철. 6~11월은 금어기이므로 냉동 대게를 먹을 수 있음. 여름 별미를 찾는다면 물회가 있다.
▶'의원님, 예산심사 왜 또 그렇게 하셨어요?'
▶[끝까지 판다] 의원님 측근들의 수상한 건물 매입
▶네이버 메인에서 SBS뉴스 구독하기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