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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철민의 퍼시픽 프리즘] '용의 발톱' 뽑을 때까지, 트럼프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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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목표 단순 적자 줄이기 아냐 "이번에 중국 손볼 것" 강한 기류

트럼프 행정부 對中 강경 입장에 의회도 초당적으로 지지

조선일보

이철민 선임기자


차이메리카(Chimerica)는 영국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2006년 미·중의 공생적 경제 관계를 표현한 조어(造語)다. 비슷한 시기 두 나라의 합의에 기초한 세계경제 질서라는 뜻에서 'G2 컨소시엄(합의체)'이란 표현도 등장했다. 불과 수년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이런 말들은 '전략적 파트너'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 등과 함께 대중(對中) 관계를 묘사할 때 흔히 쓰던 것들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엔 결코 들을 수 없다. 요즘엔 미국이 지배하는 현상을 깨려는 '전략적 경쟁자'로서의 중국만 있을 뿐이다.

작년 10월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중국에 '신(新)냉전'을 선언한 이래 미 국방부 안보·전략 보고서나 국가정보국(DNI)·중앙정보국(CIA) 등의 보고서는 21세기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최대 적은 중국이라고 명시한다. 펜스는 중국의 무역 장벽과 기술 이전 강요, 공해인 남중국해의 군사화, 인권·종교 탄압, 정부 주도의 사이버 해킹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미국은 이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행동을 바꿀 때까지 맞서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트윗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내 친구"라고 속삭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오바마 8년 동안 미국이 남중국해에 전함을 보내 '항해의 자유' 작전을 펼친 건수는 4차례. 트럼프는 취임 2년 동안에만 최소 11차례 중국이 앞마당이라고 주장하는 이곳에 전함을 보냈다.

미·중 무역 협상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현재 진행 중인 무역 협상이 결렬될 경우 다음 달 1일 이후 중국 상품 2000억달러어치에 25% 추가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예고한 가운데 중국은 이달 초 콩 500만t 추가 수입을 제의했다. 트럼프는 "신뢰의 멋진 신호"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주 워싱턴에서 계속되는 협상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의 목표가 한 해 3820억달러(작년 11월 말까지)에 달하는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 협상팀은 이번 기회에 미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나 기술 절도, 국영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부당한 보조금·혜택 지원과 같은 행위를 없애고 합의 불이행 시 보복관세가 자동 부과되게 해 거짓 약속을 되풀이하는 중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벼른다. 미 고위 관리들은 각국을 상대로 안보 위협을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중국의 5G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나 ZTE와 거래를 끊으라고 요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우며 동맹국과 적을 가리지 않고 충돌해 미국 내에서도 많은 비난을 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의 대중 강경 노선만큼은 의회에서도 대체로 초당적으로 동의한다. 미국이 오일 파이프라인을 지키려고 중동의 온갖 분규에 휩싸여 막대한 군비를 쏟은 지난 30년간 전 세계는 일방적으로 무임승차했고 특히 중국은 최고의 수혜자라는 시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고립주의를 택하지만 동시에 글로벌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트럼프식(式) 자신감에는 이미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의회에서 "앞으로 100년은 쓸 수 있고, 60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밝힌 자국 내 셰일 석유·가스 생산도 한몫한다.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내년 4분기부터 원유 순(純)수출국으로 돌아선다. 중국은 필요한 원유의 49%를 중동에 의존한다.

시진핑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제시했다. 대륙굴기(大陸崛起)를 외치는 그에게 '차기 패권국 중국'은 너무나 자명한 명제로 읽혔는지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용의 발톱'을 좌시할 생각이 없다. 양국 무역 분쟁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관계없이 중국을 손보겠다는 미국의 기조와 이로 인해 두 강대국이 갈등하며 주변국에 미치는 혼란은 계속된다는 얘기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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