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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특파원 리포트] 매케인의 '마지막'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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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3월 존 매케인 전 미 상원 군사위원장을 인터뷰할 때였다. 당시 탄핵 정국과 중국의 '사드 보복', 북핵 문제가 뒤섞이면서 한반도는 그야말로 혼돈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매케인 전 의원은 "미국은 언제나 한국 편"이라며 한국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약속했던 20분이 지나자 보좌진이 "시간이 다 됐습니다"라고 했다. 매케인은 "알고 있네. 알고 있어" 하더니 몸을 내 쪽으로 숙이며 "한마디만 더 해도 되겠느냐"고 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놓은 꼬깃꼬깃한 메모를 다시 한 번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지금 동북아는) 한국의 정치적 혼돈 속에 김정은의 비이성적 위협, 여기에 중국의 (아시아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이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때) 솔직히 한국과 일본이 친밀한 관계가 아니란 점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나는 (앞으로) 두 나라(한·일)의 지도자에게 지금이 절대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며 "지역의 평화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한국과 일본이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매케인은 한·일 간 과거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이 일제 지배를 받은 걸 "아주 끔찍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두 나라가 과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길 권했다. 매케인은 "내가 자랑스럽게 들고 싶은 사례는 5만여명의 미군이 베트남에서 죽었지만 우리는 베트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베트남이)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두 나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한·일 관계에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매케인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포로로 잡혀 5년 반을 고문을 견디며 감옥살이를 했었다. 그는 그러나 "전쟁을 넘어 더 나은 평화를 구축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며 1995년 미국과 베트남 재수교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다시 보좌관들이 "정말 인터뷰를 마쳐야 된다"고 했다. 매케인은 "오케이, 오케이"라며 보좌진을 제지했다. 그러면서 "지금 현재 한국의 정치적 혼돈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며 "지금 북한·중국·러시아에 무슨 일(자유에 대한 억압)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라"고 했다. 매케인이 마지막까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제발 같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친하게 지내라. 거기에 당신들의 안보와 평화가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작년 8월 사망한 매케인과의 인터뷰는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요즘 한·일 관계가 크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지금 한·일 갈등의 근본적 문제는 어쩌면 과거사가 아니라 매케인처럼 큰 시야를 가진 정치인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일 지도자들이 '매케인의 마지막 부탁'을 마음에 새겼으면 한다.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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