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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태평로] 오사카는 '짬뽕', 워드는 '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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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오사카, 호주오픈 우승에 순수 일본인 아니라고 비아냥

피부색·혈통으로 남 헐뜯는 건 그 사회의 편협함 드러내는 것

조선일보

강호철 스포츠부장


지난달 치러진 아시안컵 축구 결승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과연 누굴 응원했을까. 한국과 함께 동북아시아 양강(兩强) 체제를 이루는 일본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0대1 뼈아픈 패배를 안긴 중동의 신흥 강호 카타르일까. 한국 축구가 역습에 허를 찔려 59년 만의 우승 꿈이 사그라진 마당에 "누가 우승해도 무슨 상관?"이라는 사람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후자가 더 많지 않았을까.

1월 말 끝난 테니스 메이저대회 호주오픈에서 오사카 나오미가 2연속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을 차지하자 일본은 난리가 났다. 아베 총리가 축전을 보냈고, 후원 계약이 줄을 이었다. 오사카는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남녀 통틀어 처음으로 테니스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오사카 나오미는 일본인 어머니와 아이티 출신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외모만 보면 일본인보다 흑인에 가깝다. 순수한 일본인이 우승했어도 사돈이 논 산 것처럼 배 아파했을 텐데 다른 피까지 섞였으니 국내 극성 네티즌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애써 일본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댓글 화살을 쏘아댄다.

'일본인이 아니라 아프리칸 아시안이 맞는다' '비빔 짬뽕 혈통이군~'….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가위바위보조차 지고 싶지 않은 나라'다. 마치 중세에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댔던 영국과 프랑스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35년 일제강점기란 아픈 기억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기에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의 쾌거를 애써 깎아내리려 하기 전 우리 모습부터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2006년 NFL(미프로풋볼리그) 결승 수퍼볼에서 '하프 코리안' 하인스 워드가 소속팀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우승으로 이끌고 MVP로 선정됐을 때를 떠올려보자. 미국에서 흑인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뒤 아들 워드를 키우는 데 모든 시간을 바친 한국인 어머니, 그 밑에서 인종차별과 역경을 딛고 최고 스타의 자리에 선 뒤 어머니에게 공을 돌린 워드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이 한민족 특유의 희생과 부지런함 그리고 효(孝)를 떠올렸다.

워드의 피부색도 오사카 나오미처럼 흑인에 가깝고 터전을 잡아 사는 곳도 미국 땅인데, 우리는 한민족의 우수성이 다시 한 번 과시된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자 개선장군처럼 대접했다.

어렸을 때부터 '단일 민족 국가'라는 말을 귀 닳도록 들어서인지 한국인의 핏줄 따지기는 지구촌에서도 남다른 축에 속한다. 한때 여자 골프의 '타이거 우즈'로 기대를 모았던 미셸 위,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민 2세' 클로이 킴,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모두 미국인인데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한국인, 한민족으로 통한다.

이러면서도 국내 역차별은 여전하다. 법무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전체 인구의 4% 선인 200만명을 넘어섰다. 2040년엔 다문화 가정이 전체 2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여성가족부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차별 대우, 문화적 차이, 집단 따돌림 등 여러 이유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은 증가 추세다. 국위를 선양하면 자랑스러운 한민족인데 그냥 평범하면 '핏줄이 다른 민족' 취급을 한다.

결국 '오사카는 짬뽕, 워드는 한민족'이란 식으로 핏줄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건 그 사회의 편협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오사카의 우승 소식에 달린 댓글 중 한 네티즌의 말이 유난히 와 닿는다.

"오사카의 사진을 보면서 순수 혈통의 일본인이 아니라고 확인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강호철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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