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6 (토)

[만물상] '야동 볼 권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포르노 단속은 부모와 교사의 일이었다. 그 종류도 야사(야한 사진)가 대부분이었고 야동(야한 동영상)은 비디오테이프로 돌아다니는 수준이었다. 인터넷이 이 모든 것을 바꿨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국가 한국에 포르노도 빠르게 유입됐다. 터진 둑으로 포르노가 범람하자 속수무책이었다. 서양이나 일본처럼 포르노 기준을 갖고 있던 나라들과 달리, 우리는 무엇이 포르노이고 아닌지조차 여전히 불분명하다.

▶지난 주말 서울역 광장에서 "야동 볼 권리를 허용하라"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불법 포르노 사이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차단하자 이에 반발한 사람이 100명쯤 모였다고 한다. 이들은 "여기가 중국이냐 북한이냐. 내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정부가 들여다보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규제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자 수도 20만명을 넘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동 포르노를 비롯한 불법 영상을 엄단하는 것은 미국·일본·유럽도 마찬가지다. 방통위도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를 비롯해 온갖 불법 음란물과 불법 도박 사이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금 등급을 받은 합법적 성인 영상물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야동 볼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해외 합법 포르노 사이트도 닫힐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한가운데 월 20억원짜리 포르노 사이트 광고가 버젓이 걸리는 시대다. 12억개에 달하는 전 세계 인터넷 사이트 중 방문자 수 상위 300개 가운데 포르노 사이트가 11개나 된다. 가장 인기 있는 사이트가 18위로, 한 달 15억명이 찾는다. 포르노 사이트 방문자는 한 달 평균 450분을 그곳에 머무는데, 트위터(160분)와 아마존닷컴(110분)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미국은 1973년 대법원 판결로 "작품에 문학·예술·정치·과학적 가치가 전혀 없을 때" 음란물로 처벌할 수 있다고 원칙을 세웠다. 그 밖의 성인물은 모두 합법 포르노다. 우리는 여전히 "과도한 성적 욕구를 자극하거나 수치심을 유발할 때" 같은 모호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기회에 포르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불법 음란물은 차단해야 하겠지만 '금지' 만능 식 규제는 독재정권 시절을 연상케 한다. 상업 포르노에 대해 선악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많다. 어쨌든 서울 한복판에서 '야동 볼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한현우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