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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朝鮮칼럼 The Column] 질문 검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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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질문들이 답변을 거부당한 채 유령처럼 허공에 떠다녀

公人은 국민에게 대답할 의무… 불리하다고 질문 묵살하면 사회는 '답변 결핍증'으로 고통

조선일보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히브리어로 '인간'이란 '질문하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라고 하지 않고 "넌 오늘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유태인 부모의 교육법은 유명하다. 모세도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이름이 '여호와'라는 '팩트'와 '십계명'을 얻어냈다.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는 그 사회의 문제점과 지향하는 가치가 녹아 있다.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함께 해답을 모색하며 사회는 발전한다. 이런 단순한 변증법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작동을 멈춘 것 같다. 답을 거부당한 채 허공에 떠다니는 질문들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생각나는 사람은 멀리 목포까지 기자들을 불러놓고 부친의 독립 유공자 선정 과정에 대해 묻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다"고 잘라버린 손혜원 의원이다. 누가 봐도 석연치 않은 과정에 던지는 당연한 물음을 그 국회의원은 발로 차버렸다. 관계 당국이 선정 기준이 바뀌었다는 간단 답변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 질문은 갈 곳을 잃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

질문 잘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한 진행자는 과천의 공영 주차장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과 연관된 질문에 답변 대신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려 '긴 싸움'에 들어갔다. 조리 있는 말로 답하면 될 일을 나랏돈 들이는 사법 절차를 거쳐 들어야 할 판이다. 일단 법정으로 갔으니 '사법적 진실'이야 밝혀지겠지만 그게 '실체적 진실'일지는 귀신만 아는 일이 되었다.

현직 대통령의 딸이 해외로 이주했다는데, 어디로 왜 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청와대는 "개인 정보 불법 유출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책임을 묻더라도 답변은 해야 하는데 "이민도, 자녀 교육도 아니다"라는 스무 고개식 답으로 대신했다. 나머지 18가지 가능성에 대해 각종 루머가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제대로 해명을 하지 않아 추측이 빈틈을 채우게 하는 것은 매우 나쁜 홍보 전략이다. 작년에도 대통령은 뉴질랜드로 가는 전용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외교 문제만 물어라"며 선을 그었다.

내가 답하고 싶은 질문만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 어떤 시험에서도 낙방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더구나 공인이라면 '공적 질문'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에서 기자회견을 한 건 아마도 창성장 관련 질문만 받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가 공인이 되기에 부적합한 이유는 '이해 충돌' 같은 복잡한 개념까지 안 가더라도 스스로 질문을 선택할 사치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공론장이 자유롭고 평평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질문들이 공평하게 제기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은 받고, 어떤 질문은 묵살한다면 그 사회는 끊임없는 '답변 결핍증'에 시달릴 것이다. 사람들은 답을 찾으려 갖은 방법을 동원할 것이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갈등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응답이 없으니 토론도 없고, 다양한 관점의 학습이나 사회적 합의도 무망(無望)할 것이다.

특히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공영방송은 다양한 질문을 적절하게 배분해서 골고루 청취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다. 그러자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공정하게 전파를 사용하며 다양한 질문을 정부와 정치인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답변하는 쪽에서야 자신에게 유리한 질문만 선택하고 싶겠지만, 언론이라면 그런 사치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 편에서 정부 권력과 각을 세워야 민주사회 언론이다. 질문이 검열된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질문과 답변은 상호 수평 관계를 상정한다. 정부가 명실(名實)공히 민주 정부가 되고 싶다면 국민의 질문에 허투루 답하거나 설명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행태를 지적한 사람을 '좁은 세계에 사는' 미욱한 아랫사람 다루듯 해도 안 되며, 정부의 정책 기조 때문에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자영업자들에게 "그래도 정부가 가는 방향이 맞는다"며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

마침 대통령은 올해를 권력기관 개혁 원년으로 선포했다. 권력기관들이 아무리 서로 권력을 나누고 영역을 재설정해도 국민 위에 군림한다면 소용이 없다. 먼저 다양한 질문을 폭넓게 듣고 성실하게 답변하는 것부터 실천해 보라고 하고 싶다. 국민이 던진 질문들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처럼 허공에 흩어지지 않도록.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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