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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르포] 손님 줄고, 최저임금 오르고...동대문 의류상가 "빚내서 월세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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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게를 비워놔도 걱정이 안 돼요. 손님들이 찾지를 않으니까"

19일 오후 3시,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입구. 보름을 맞아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게 안쪽에 상을 펴고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나눠 먹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게를 연지 10년 됐다는 서모(51)씨는 "장사가 안돼 월세를 내기 위해 빚을 냈다"면서 "올해들어 매출이 작년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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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안쪽에 있는 한 옷가게가 점포정리를 준비하고 있다./ 안소영 기자




작년까지만 해도 손님이 꽤 몰렸던 낮 시간대였지만 이날 찾은 시장은 입구부터 한산했다. 시장 안쪽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양옆으로 뻗은 부스에 쇼핑객은 10명도 넘지 않았다. 중장년층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박모(74)씨는 가게 안과 옷가지에 ‘점포정리’ 글자가 적힌 종이를 달아 놓았다. 박씨는 "가게가 안쪽이라 장사가 안되는 것 같아 가게를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각, 문을 닫았던 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서너집 걸러 한집에 손님이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손님이 찾지 않는 옷 가게 직원들은 휴대전화와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밤 10시 무렵이면 전국에서 온 의류 소매상들로 시장이 북적였지만, 이제 옛날이야기가 됐다.

이날 아트플라자·스튜디오더블유 사이 주차장은 3분의 1(11대)만 차있었다. 주차 관리인(55)은 "10시면 만차(30대)가 됐을 시간인데 텅텅 비었다"며 "지난해 말부터 주차시간도 짧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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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만 해도 만차(30대)를 기록했던 주차장은 텅텅 비었다. 밤10시가 넘은 시각이지만, 주차장의 3분의 1만 차있었다./ 안소영 기자



경기 악화로 매출이 떨어지고, 최저임금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공실도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제일평화시장은 3~4년 전까지 공실이 없었지만, 지난해부터 공실이 늘어 열개를 넘었다. 청평화시장, 디오트 등은 월세를 100만원 가량 깎아주며 공실을 막고 있다.

젊은층이 많이 찾는 밀리오레 지하 1층 아동복 매장 입구는 10개 매장 중 5개가 비어있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일부 매장은 편의점이나 옷가게 집기가 가득 쌓여있었다. 3층 여성 정장매장과 6층 잡화점도 상당수 점포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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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오레 지하 1층. 임부복, 아동복 매장 입구는 절반 가까이 공실이었다. 편의점 물품이 가득 놓여있다./ 안소영 기자



동대문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씨는 "과거에는 장사하러 들어오려는 사람이 줄을 서 빈 가게가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며 "만기가 남았어도 인건비가 부담돼 가게는 접고 월세만 내겠다는 전화가 온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자 주말에 자체적으로 단축 영업을 하는 곳도 늘었다. 박병식(48) 평화시장 상인회장은 "과거엔 토요일에 저녁 5~6시까지 일했는데 요즘은 오후 1시만 돼도 문을 닫는 집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양복점을 운영하는 윤모(60)씨는 "과거에는 ‘주말 장사로 월세 낸다’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평일보다 주말에 장사가 더 안돼 조만간 토요일에도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 협의회에서는 2007년부터 불황이 올 때마다 ‘주 5일 근무제’를 논의해 왔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상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입장이다. 한 상인회장은 "‘체력이 떨어진다’ ‘주말에 쉬자’는 말이 계속 나오지만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매출이 더 나빠질까봐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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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넘었지만, 동대문 도매시장은 한산했다. 짐을 들여놓는 시장 직원들만 발 빠르게 움직였다./안소영 기자



상인들은 인터넷 발달, 동남아산 저가 제품 유입 등으로 동대문 의류시장 경쟁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꼽았다. 박병식 평화시장 상인회장은 "동대문 등지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한국산 제품이 많이 없으니 중국·동남아 관광객이 갈수록 줄고, 온라인 시장이 발달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했다.

안소영 기자(seenr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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