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funE | 김지혜 기자] 배우 정우성이 주연한 영화 '증인'(감독 이한)은 착한 영화다. 반듯한 메시지와 따뜻한 이야기, 꾸밈없는 연기가 어우러진 이 영화는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온기가 세상 그 어떤 난로보다 포근한 것임을 보여준다.
다행히도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로 대표되는 영화 속 화두가 도덕책 속 공허한 메아리처럼 떠도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재미와 진정성, 감동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한 번쯤 진지하게 자문해볼 수 있는 시간까지 선사한다.
'증인'에는 여러 차례 가슴을 뭉근히 데우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순호(정우성)와 아버지(박근형)의 교감 신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다. 영화 전반에 걸쳐 힘을 빼고 순호의 인간됨을 보여주는 정우성의 연기를 보며 불현듯 '그는 어떤 아들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누구나 다 아는 스타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일 것이란 아주 당연한 생각을 하자 따라오는 궁금증이었다.
"음...전 되게 무뚝뚝한 아들이에요. 아버지는 저를 잘 모르고, 저도 아버지를 잘 몰라요. 워낙 어릴 때 밖에 혼자 나와서 생활하다 보니...그렇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는 좀 가부장적인 면이 있었죠.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약간 재미없는 남편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 아주 짧은 시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하니까 대화도 길게 이어지진 못해요. 이번 영화에서 순호와 순호 아버지와의 장면은 아들로서 해보고 싶은, 아버지와 갖고 싶은 시간이었어요. 그런 대리 만족의 시간이라 제겐 엄청난 장면일 수밖에 없어요."
정우성은 '증인'의 시나리오를 읽고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더불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까지 받았다고 했다. 최근 연기 행보는 '아수라', '더 킹', '강철비', '인랑'에 이르는 장르 영화, 센 캐릭터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에게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는 순간을 다루는 이 영화는 일종의 '휴식'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상대와 교감할 때 의도치 않은 감정의 표출 등이 풍성한 영화예요. 우리는 일상 안에서 감정의 돌출이 얼마만큼 드라마틱한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 일상의 평범함, 아름다움에 대해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감정,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감정을 연기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아주 많이 행복했어요. 지우(김향기)와의 교감도 그렇고, 아버지(박근형)와의 생활은 닮은 부분과 같은 장면에서 내내 따뜻함을 느꼈어요."
종전의 어둡고 진지했던 영화와 달리 밝고 따뜻한 성격의 작품인 만큼 배우에게 리프레시의 공간이 됐을 것 같았다. 반면 힘을 뺀 일상 연기가 싶지만은 않았을 것 같기도 했다.
"자연스럽잖아요. 감정의 표현이 훨씬 다양할 수 있고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과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점을 경계하려고 했어요.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에 배우 스스로가 너무 흠뻑 빠져서 도취돼버리면 나 혼자만의 만족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장르 색이 짙은 캐릭터를 하면 (연기에) 디자인이 많이 들어가고 상대 배우가 어떻게 할 때 어떤 리액션으로 치고 들어가야지에 대한 계산도 들어가게 되죠. '증인'은 그렇게 하면 자연스러운 연기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순호가 지우를 만났을 때의 마음 가짐과 똑같이 임했던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 현장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증인'은 영화 내내 지우의 입을 빌어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순호에게 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 관객에게도 자문하게 하는 힘이 있는 대사다. 정우성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대입해본다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영화의 영향력, 배우의 책임감에 대한 생각은 확실히 갖고 있어요. 일례로 '비트'는 제게 많은 것들을 줬지만 영화라는 게 정말 무섭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 줬어요. 어린 친구들이 '형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는 말도 많이 했으니까요. 책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어요."
'증인' 속 누군가처럼 사람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적 있냐는 질문에는 "아니요. 저는 사람에 대해 규정하거나 편견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요. 제가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라고 답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부터 고등학교를 자퇴했던 학창 시절의 이력까지 자신 역시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제게도 사회가 원하는 요구조건에 맞지 않는 면이 있잖아요. 물론 사회가 원하는 요구조건이 얼마나 정당한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어요. 그렇다고 학교를 그만두는 게 정당하냐 물으면 그렇지는 않아요. 모두 저마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각자의 이유 안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얼마나 당당하게 성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소통도 마찬가지예요. 상대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은 소통인 듯해요."
영화 속에서 순호가 지우에게 긍정적 영향을 받는 것처럼 실제 정우성에게 최근 긍정적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을 언급했다.
"얼마 전에 뵀는데 책을 한 권 선물해주셨어요. 리영희 선생과의 대담을 담은 '대화'라는 책이었어요. 우리보다 앞선 세대에, 우리가 따라야 하고 궁금해해야 할 좋은 선배들이 많이 계셨다는 걸 차츰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에서 순호가 현실과 타협했던 어떤 순간처럼 배우로서 정우성도 현실과 타협했던 순간이 있을까.
"노림수와 계산만으로 영화를 선택했다기엔 뜬금없는 영화도 많이 한지라...(웃음) 작품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어요. 어떤 영화를 흥행 때문에 한 게 아니라고 해서 감독과 협의되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건 굉장히 무책임한 협업이에요. 언제 개봉할 거고 감독은 어떤 영화를 했고...등등 계속 이런 요소만 생각하고 선택을 해나간다면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새로운 감독과 작업할 용기가 없어지고 어느 정도 흥행을 시킨 감독하고만 영화를 하게 되겠죠. 늘 가능성을 보고 도전하는 거고, 그 도전이 아름답기를 바라요. 근데 그 영화가 얼마나 많은 관객이 볼지는 미지수예요. 물론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지만요."
정우성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 시선 등을 드러내는 것과 별개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이런 그의 행보는 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일련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깊이도 상당해 보였다.
"누군가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바람직하다고 느낄 때도 있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깨우칠 때도 있어요. 세상 모든 대상들이 나를 긍정적으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경력과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게 절대적인 지혜나 이해로 통하는 건 아니에요.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인생을 살았으니 각자 겪는 경험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어린 친구라도, 그 친구가 가진 온전한 경험이 있고 이해와 갈등이 존재해요. 그러니 나이나 경험을 떠나 개개인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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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연기뿐만 아니라 제작과 연출에도 오래전부터 관심을 보여왔다. 실제로 연출 데뷔는 가시화 단계에 이르렀다.
"감독이나 제작자로서의 목표는 찾아나가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럴싸한 이미지, 캐릭터를 형상화시키고 싶은 욕심에 시나리오를 개발하거나 어떤 특정 장르를 하고 싶어서 개발하거나 그랬는데 어느 순간에는 '넌 왜 이걸 하고 싶니?'라는 자문을 하게 돼요. 작품을 완성해나가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찾아나가는 과정도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스토리만 고집하려고 하지 않아야겠죠. 외부에서 들어온 스토리라도 '내가 잘할 수 있는 한 부분이 있구나 그럼 도전해봐야지.'와 같은 생각도 하려고 해요. 잘할 수 있는 마음과 잘하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입증해야죠. (연출 데뷔는) 올해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사극 액션 영화고, 출연도 할 것 같습니다."
정우성은 "작품 선택의 기준이요? 제 필모를 보면 뜬금없는 작품도 많아요. 도전이 재밌어요. 안 해본 요소가 요만큼이라도 있는 작품을 원해요. 같은 장르라도 도전해볼 만한 새로움이 있는 거라면 더욱 좋겠죠."라고 덧붙였다.
"짜릿해! 늘 새로워!"라는 말을 남겼던 개구쟁이 이미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정우성은 그 말을 유머로 소화했지만, 어쩌면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추구하고 즐기는 어떤 지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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