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서 사진 몇장 찍고 돌아서
축하받는 자리아닌 우울한 자리
“엄마 졸업식 안 와도 된다니까…올해는 꼭 취업할게요.”
지난 21일 졸업식이 열린 서울의 한 대학교 강당. 어머니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자마자 정모(29) 씨가 민망한 듯 웃었다. 2013년 대학에 입학한 정 씨는 6년만에 학사모를 썼다.
취업 준비를 하느라 1년 반을 유예하다가 더 미루기 어려워 결국 이번에 졸업을 했다. 취업은 아직이다. 그는 “취업을 못하고 학교만 오래 다닌 것 같아 부끄럽다”고 했다. 학교 강당 구석에서 어머니와 사진 몇장을 찍은 그는 10분도 되지 않아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갈수록 심화되는 청년 취업난에 2월 대학가 졸업식 풍경이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취업을 못한 대학 졸업생들은 맘 편히 웃지 못했고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청년들도 점점 늘고 있다.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에게 ‘새로운 사회생활에 대한 설렘’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관련기사 9면
졸업식장에서 취업 얘기는 금기였다. 서울의 한 대학 중앙도서관 계단에서 사진을 찍던 박모(26) 씨는 취업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대학 편입을 준비한다”며 말을 아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딸의 졸업이 새로운 시작이어야 할텐데 새로운 시작을 못했다”며 허공만 바라봤다.
취업을 못해 졸업식장을 찾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사회복지학과에 재학중인 12학번 김모(28) 씨는 7년만에 졸업을 하지만 이번에 졸업식에 안 갔다. 취업준비가 길어지면서 학교에 아는 사람들도 없고 부모님 볼 면목도 없었다.
김 씨는 “모두가 축하 받는 분위기인데 가면 더 박탈감만 심해질 것 같다”고 털어놨다. 실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졸업예정자 478명을 대상으로 졸업식 참석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 2명 중 1명(55.7%)만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학관계자는 “친구들과 졸업가운 입고 사진 찍는 친구들도 물론 있지만 졸업식장에는 약 20~30%정도 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취업한 친구들 위주”라고 말했다.
특히 취업준비를 위해 졸업유예를 1~2년 이상한 고학번들에게 졸업식은 지긋지긋한 대학생활을 끝내는 일종의 ‘꿈’이었다. 금융공기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류모(27) 씨는 취업준비를 위해 올해 1년을 대학을 더 다닐 생각이다. 그는 “취업해 졸업하는 친구들이 제일 부럽다”며 “취업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정말 피 말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 생활이 지옥 같다고들 하는데, 그 지옥이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냐”면서 “지금은 대입 때 재수 삼수 하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취업률이 계속 떨어지자 취업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급기야 ‘졸업은 취업의 시작’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이상 취업률은 66.2%로, 2011년 조사 시작 이후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 대학교 관계자는 “취업이 너무 안되다 보니 아예 한 2~3년전부터는 취업이 내 탓이 아니니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졸업식이라도 가겠다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어차피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실제 학생들에게 졸업 소감을 묻자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겠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부모님과 함께 학교를 찾은 에너지시스템학과 이민구(28ㆍ가명)씨는 “불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올해는 꼭 취직을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감정평가사를 준비하는 졸업생 최모(26) 씨 역시 “졸업해서 취직한 동기들을 보니 부러웠다”면서 “올해엔 준비하는 시험에 붙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정세희ㆍ성기윤 기자/say@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