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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한국 첫 대안공간의 ‘스무살’ 역사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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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 루프 20돌 기념전

1999년 출범한 대안공간 효시

역대 164개 전시 자료 한자리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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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발랄했다. 마흔, 쉰줄을 넘긴 왕년의 청년 작가들은 데뷔 시절의 포스터와 영상물 앞을 아이들처럼 훑고 다녔다.

지난 15일 저녁 서울 홍대앞 골목의 대안공간 루프 지하 전시장은 옛 청년작가들의 왁자한 놀이마당이 됐다. 1999년 2월 출범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안공간으로 건재해온 루프의 창립 20돌 기념전 개막 잔치가 벌어진 참이었다. 루프가 20년간 기획한 164개의 전시 관련 자료와 포스터, 영상 등의 아카이브를 벽과 공간에 가득 채워넣고, 연도별 사건·사고를 벽에 쓱쓱 적고 여백엔 김은형 작가의 <타임머신> 벽화 작업 등을 덧붙인 기억의 전시다.

들머리 진입 계단으로 내려가니 국내 팝아트 대표 작가 이동기씨가 서있다. 옆벽 구식 모니터에서 펼쳐지는 1999년작 애니메이션 <아토마우스의 모험>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모습이다.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합성한 작가의 대표 캐릭터 ‘아토마우스’가 깡깡이 로봇과 벌이는 대결과 모험의 동영상들을 지켜본 그는 “그 시절 순수한 열정과 새로운 것들에 대한 욕구가 되살아나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젊은이들의 사교춤판과 세계 각국 보통 사람들의 소망을 이뤄주는 사진 연작들로 이름을 알린 정연두 작가도 나타났다. 2001년 루프의 대표전시중 하나였던 그의 ‘보라매댄스홀’ 전시 영상과 포스터를 주시하면서 “역시 오래되고 볼 일이야”라며 짠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 자수를 활용한 현대미술 작업으로 유명해진 함경아 작가는 1999년 첫 개인전 포스터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입을 좍 벌리고 김을 먹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을 담은 강영민 작가의 지난해 전시 포스터 옆엔 팝아티스트 낸시 랭이 눈을 빛내며 감상에 열중했다. 전시장 한가운데는 역대 도록들을 쌓아놓고 무게로 달아 파는 ‘방출마당’이 개설돼 관객들의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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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전시판 같은 이날 개막잔치 분위기처럼 루프의 지난 세월은 확고한 대안성을 바탕으로 젊은 미술가들의 신진대사를 작동시켜왔다. 1999년 막 유학에서 돌아온 서진석 기획자가 다른 유학파 작가 3명과 함께 국내 최초의 비영리 대안공간으로 홍대 부근 상가의 낡은 방에서 시작한 이래 루프는 20년 동안 몇차례 이전에도 뚜렷한 정체성을 지켜왔다. 부침이 심한 홍대 영역에서 유일한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신진 작가 발굴과 국외 교류에 충실했다. 글로벌 자본주의·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시대적 화두 앞에서 새 담론 창출의 노력을 묵묵히 해내면서 한국 미술판의 지형을 다각화하고, 새로운 문제작가들을 숱하게 배출해냈다. 지금은 미술판의 유명 작가가 된 정세진, 임민욱, 정연두, 함경아, 장지아, 강영민씨 등의 과거 전시 포스터,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 김현진씨가 루프 시절 전시 카탈로그에 쓴 날선 글 등이 루프의 저력을 증언한다.

창립 주역으로, 이제 50대 초반의 운영자가 된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장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시장이 주도하게 된 미술판의 흐름 속에서 루프는 지속적으로 대안성을 모색하면서 전시와 교류로 자기 몫을 다해왔다”며 “앞으로 법인화를 통해 대안공간 정체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 한다”고 했다. 22일엔 루프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역대 큐레이터들의 라운드테이블 자리도 차려진다. 3월3일까지. (02)3141-1377.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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