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정기 주주총회 시즌를 앞두고 재계가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에 따라 기업의 경영권 참여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해 주총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국민연금이다.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은 올해 3월 주주총회 시즌부터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지분율이 5% 이상이거나 보유 중인 포트폴리오 비중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투자기업을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포스코 등 297곳에 이른다. 국내 주식시장 상장사(2110개)의 14.1%를 차지하는 수치다.
국민연금은 배당정책 수립, 임원보수 한도의 적정성, 법령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 훼손, 지속적 반대 의결권 행사에도 개선이 없는 사안 등 4가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스스로 배당 확대에 나서는 모습이다. LG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2.7% 감소했지만 배당금을 53.8% 늘렸다. 포스코도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36.4% 감소했지만 배당금은 25% 늘렸다. 국민연금이 남양유업에 배당 확대를 위한 '주주제안' 칼을 빼들자 현대그린푸드는 스스로 배당확대 정책을 수립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무조건적인 고배당 정책은 기업의 탄력적인 경영활동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배당을 덜 하면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높아지면서 주가가 올라서 장기적인 기업 가치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너 갑질'이나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도 기준이 모호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제계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는 각기 상황이 다른데 정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률적인 기준을 강요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팽배하다"며 "국민연금이 정부의 눈치를 보고 정부 정책을 실현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5층 다목적홀에서 '삼성전자 제49기 정기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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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총에서는 주요 기업의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대기업집단 지배주주 23명(15개 집단·27개 회사)의 이사 임기가 만료된다고 파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으며,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사내이사와 기아차 기타 비상무이사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LG그룹의 경우 구본준 부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구 부회장은 이번 주총을 끝으로 고문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LG그룹 내 계열분리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의 정기 주총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내 등기이사 재선임 안건 상정 여부가 관심이다. 이 부회장의 임기는 오는 10월까지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대법원 상고심 결과가 나온 이후 임시주총을 통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총 6명으로 구성된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절반의 임기가 내달 만료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사내·사외이사 선임에 주주권을 행사할지도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지분 8.95%를 가진 최대주주다.
한편 올해 정기주총 시즌에는 섀도보팅 폐지에 따라 의결 정족수 부족을 겪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섀도 보팅은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주총에서 나온 찬반 비율대로 실제 투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인데 주주권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2017년 말 폐지됐다. 기업이 주총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단기 투자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한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며 "시장에서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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