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성역과도 같은 존재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경제 전문가와 관료를 전적으로 신봉한다. 그들을 믿고 따라야 경제가 잘 굴러갈 거라고 그냥 믿는다. 그러나 믿음은 매번 배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반복됐고, 파산 위기에 처한 국가들의 신음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이코노크러시’는 경제 실패가 반복되는 것이 경제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경제를 지나치게 맡겨놨기 때문이라는 점을 조목조목 논증하는 책이다.
‘리싱킹 경제학’은 2013년부터 영국 등 유럽학생 중심으로 생겨난 경제학 개혁 운동 시민단체다. 경제학 커리큘럼 개혁, 시민들 대상 경제 강좌 등을 진행하며 경제학의 대안을 모색한다. 리싱킹 경제학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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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 얼, 카할 모런, 제크 워드 퍼킨스는 영국 맨체스터대 경제학과 출신의 시민운동가다. 청소년 시절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경험한 ‘금융위기 키즈’들로, 경제학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전공을 택했지만, 경제학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책을 썼다. 이들은 대안 경제학과 경제학 개혁 운동을 실천하는 국제 학생조직인 ‘리싱킹 경제학’(Rethingking Economics)에서 활동 중이다. 책은 평범했던 경제학도들이 창창한 미래를 내던지고 시민운동에 뛰어들기까지의 고민과 그들이 모색한 대안을 담았다. 영국 대학과 사회 현실을 주로 짚었지만, 한국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코노크러시’는 ‘이코노믹스’(Economics)와 그리스어로 권력과 통치를 뜻하는 ‘크러시’(Cracy)를 합친 말이다. 선출되지 않은 경제학자와 경제 관료들이 민주주의와 정치를 지배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책은 이코노크러시를 세계 경제를 좀 먹는 주범으로 지목한다.
국가운영이 경제에 예속된 지는 오래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정치 구호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경제 이슈를 빼놓고 선거를 치를 수 없고, 사회 정책의 우선 순위를 결정 하는 기준은 비용편익분석으로 따지는 경제성이 된 지 오래다. 환경과 분배 같은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도입한 양적 완화 정책은 ‘부자의 경제’를 위해 설계됐다. 결국 부자는 더 부자가 됐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졌다. 저금리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자율을 낮추면 대출은 늘고 저축은 줄어 분배가 악화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매번 공중으로 흩어진다.
이코노크러시
조 얼, 카할 모런, 제크 워드 퍼킨스 지음 안철흥 옮김
페이퍼로드 발행•308쪽•1만6800원
문제는 이코노미크러시를 견제할 마땅한 사회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경제학부터가 고인 물이다. 대학 입학 후 저자들이 마주한 것은 ‘죽은 경제학’이었다. 금융위기가 왜 발생했고, 경제학자들은 왜 예측하지 못했는지를 성찰하지 않았다. 추상적 경제 모형을 배우고 여기에 공식을 대입해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수업의 거의 전부였다.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의 텃세에 신생 경제학문은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게 경제 상아탑의 현실이다.
책은 최우선 과제로 대학의 경제학 커리큘럼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리를 깨부수고, 현실을 접목시키는 게 핵심이다. 설문조사, 인터뷰, 사례 연구 등 기존 경제학에서 시도되지 않은 강의들을 ‘리싱킹 경제학’이 개발하고 있다.
나아가 책은 ‘경제학의 민주주의’를 제안했다. 경제학을 대중이 알아듣기 쉬운 용어로 알리는 게 전제다. 영국은행과 재무부의 경제 정책 결정 과정을 감시하는 사회 기구도 만들자고 했다. 대학마다 시민정책단을 구성해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경제 정책에 대해 바닥 민심을 수렴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치기 어린 학생들의 순진하고 이상적인 대책에 불과할까. 그러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부 교수의 말처럼, ‘다른 누군가의 결정에 따르는 소극적인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경제가 우리 삶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와 관련한 알 권리를 요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국내는 아직 조용하지만, 저자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는 전세계 대학 60여곳의 학생들이 ‘리싱킹 경제학’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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