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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자연생태계 살아 있는 천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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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북구 성북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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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과 산지가 많은 성북구에서 주택가 한복판을 흐르는 성북천은 고마운 산책 공간이다. 넓은 차도가 따라붙지 않아 조용하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해가 오래 드는 널찍한 천변길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편안한 산책로다.

풍부한 식생이 선사하는 즐거움도 크다. 늘어선 벚나무, 은행나무, 버즘나무는 봄가을로 옷을 갈아입으며 따가운 햇볕을 막아준다. 여름철 번성한 물풀들은 겨울이면 노랗게 말라 차가운 수면을 초가지붕처럼 덮는다. 물풀 사이사이를 제집으로 삼은 물고기 떼와 그들을 따라다니는 오리 가족과 왜가리들은 이곳의 터줏대감들이다. 볕 좋은 날이면 자라가 바위에 올라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계절 따라 순환하는 생태계가 눈에 보이는 건강한 자연 하천! 이곳에서 동식물이 누리는 평화는 산책자들에게도 스며든다. 그럴 때 성북천은 그저 칼로리를 태우는 운동 장소가 아닌 자연의 순환과 평화를 배우고, 몸과 마음의 생기를 되찾는 장소가 된다. 성북 주민들이 성북천을 계속 찾고,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다.

성북천 산책이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이유는 천변을 따라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은 때문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돈암동 성당은 건물의 외양으로나 의미로나 주민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듬직한 건물이다. 화강암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1955년에 완공한 고딕 양식의 성당은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되었다.

저녁 6시마다 종탑에서 퍼져나가는 종소리는 성북천을 오가는 산책자들에게 하루가 저물어감을 알린다. 성당 마당 안의 성모상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예술 작품이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어딘가를 보는 듯한 성모상에서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슬픔, 소박함, 경건함이 묻어난다. 혜화동 성당의 성모상과 요셉상, 성북동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의 작가로 잘 알려진 조각가 최종태의 작품이다. 그의 많은 작품이 그렇듯 이곳의 성모상 또한 종교의 경계를 초월한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 성북천은 평화를 향한 뜨거운 외침의 장소이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1919년 성북구 지역의 만세 시위는 3월23일부터 27일까지 이어졌다. 23일과 24일 안암리와 돈암리에서는 4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를 외쳤다. 27일에는 안암천(성북천의 다른 이름)에서 약 500여 명, 돈암리 산 위에서 약 50여 명이 모여 손에 태극기와 횃불, 그리고 돌을 쥐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성북천의 역사성을 기리기 위해 오는 3월1일 성북천에서는 3·1절 기념행사가 열린다. 보문동 주민센터에서 출발한 만세 행렬이 성북천을 따라 구청 앞 바람마당까지 행진한다. 100년 만에 울려퍼질 만세 소리는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다.

따뜻한 계절이 오면 성북천을 찾는 발길은 더 잦아진다. 성북의 예술가들이 이곳을 연극, 음악, 미술, 놀이, 나눔이 있는 흥미진진한 문화의 공간으로 변모시켜나가기 때문이다. 그 무렵엔 평화를 사랑하는 성북천의 고독한 산책자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익숙지 않은 리듬에 반응할 준비를 한다. 물고기와 오리 가족들도.

백외준 성북문화원 성북학연구팀장, 사진 성북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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