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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초현실·미신·좀비…`오컬트` 콘텐츠에 빠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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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오컬트 영화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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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영화 '사바하'가 20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다. 코믹 영화 '극한직업'을 밀어내고 하루 관객 18만명(21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아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사바하'는 구마 사제 이야기인 '검은 사제들'(2015)로 544만 관객을 모은 장재현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신흥 종교 비리를 추적하는 종교문제연구소 박 목사(이정재)가 사슴동산이라는 기이한 종교단체를 조사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이른바 오컬트 종교 스릴러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은 흥미로운 종교 추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라며 호평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존재하면 저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불교에 악은 없다. 욕심과 집착이 악이다" "낮은 곳에 지렁이가 태어나면 높은 곳에 매가 태어난다" 같은 대사처럼 해석을 요하는 미스터리 코드가 곳곳에 깔린 게 그 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곡성'(2016)이 장르적 의미를 강하게 취한 작품이었다면, '사바하'는 종교적 아이콘들을 해석하는 재미와 함께 사회적 메시지까지 더해 성숙해 보인다"고 평했다.

한국 영화·드라마계에 오컬트·좀비 붐이 일고 있다. 소수 매니아층 전유물로 여겨지던 장르가 대중 영화로서 널리 각광받기 시작했다. 오컬트 영화 '사바하'뿐 아니라 넷플릭스 좀비 시리즈 '킹덤', 기존 좀비물에 개그 코드를 이식한 영화 '기묘한 가족' 등 한 해 여러 편이 관객을 맞으며 대중 장르로 자리매김 중이다.

안방 극장에서도 오컬트물 인기는 유례없는 강세다. 사이비 종교로 혼돈에 빠진 마을 이야기인 드라마 '구해줘'가 시즌2를 제작 중이고, 영매와 사제, 형사가 나오는 '손 더 게스트'는 '한국형 엑소시즘 드라마'라는 호평과 함께 지난해 말 종영했다.

지난달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된 '킹덤'은 한국형 좀비물의 가능성을 연 성공 케이스로 꼽힌다. 편당 20억원을 들인 6부작 드라마로, 조선시대 사극에 좀비 장르를 혼성 결합해 이목을 끌었다.

극 배경이 수백 년 전 조선시대라는 점은 현 시대 위주인 서구형 좀비물과 눈에 띄는 차별점이다. 좀비들을 피해 달아날 차가 없고, 굳게 닫힌 문 아래 숨을 집도 없다. 가옥 구조상 쉽게 뚫고 갈 수 있어 인간에게 몹시 불리한 조건이다. 조선시대의 다채로운 왕실 복장과 서민들 옷차림을 관찰 가능한 점도 매력 포인트로, '킹덤'이 서구에서 더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개봉한 '기묘한 가족'은 좀비에 대한 기존 통념을 뒤집었다. 좀비는 좀비인데 외모가 곱상하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사람 피보다 양배추와 케첩을 좋아한다. 동네 개에게 쫓길 정도로 약하며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영화는 쫓는 좀비와 쫓기는 인간이라는 구도가 아닌 좀비와 사람 사이 공존이라는 기묘한 가족물로 변주돼 웃음을 안긴다.

오컬트·좀비물 인기는 근 3~4년 새 변화다. 2015년 '검은 사제들', 2016년 '곡성'이 오컬트 소재 미스터리물의 가능성을 열었고, 2016년 좀비 영화 '부산행'이 1156만 관객을 모아 좀비 영화 대중화를 선도했다. 여기에 OTT 기업 넷플릭스가 부상하면서 대중이 좀 더 폭넓은 장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된 점도 주효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대중이 다양한 장르물을 접촉 가능해지면서 분명한 취향을 가진 관객이 형성된 게 배경"이라며 "최근 장르물이 장르 간 이종결합이나 기존 장르물 세분화로 이어지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고 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미디어가 다각화하면서 장르물 접근성이 높아진 점, 계층과 집단의 문화적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점"을 맥락으로 짚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특정 장르군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전 정권에선 불의에 저항하는 공분이 주효해 사회의식을 담은 영화가 인기였다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후로는 코믹과 공포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기대와 달리 현 정권에서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지고 '헬조선'적 상황이 악화되니 그 상황을 상쇄하고 승화시킬 양극단 기제들이 필요해진다"며 "그것이 '극한직업'처럼 웃음만을 추구하는 코믹물이나, '사바하' 등 오컬트·좀비물이라는 공포물로 표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용어 설명>

오컬트(occult):'초자연적, 마술적, 신비적'이라는 뜻으로, 오컬트 영화는 텔레파시·초능력·악령·영혼과의 대화·영혼 재래설 등을 제재로 만든 영화를 지칭한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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