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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미흡했지만 최선의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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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인터뷰

“적극적 권한 행사하는 게

기업가치 높이는 데 도움 되지만

밀어붙여서 관철할 수는 없는 것

기금운용위 독립적 의사결정 위해

복지부 관료들 개입 차단해야

외국 기금은 죄악주엔 투자 안해

국민연금만 카지노 담배 술 업체에

창피하게 투자하고 있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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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행사가 미흡했다고 자평했다. 김 이사장은 또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책임투자 원칙을 확립해 카지노와 담배회사 주식 등 이른바 ‘죄악주’에 투자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해야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지난 19일 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을 찾아 김 이사장을 한시간 남짓 만났다. 그는 19대 국회의원으로 연금개혁 특위 활동 등을 했고 2017년 11월부터 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의원 시절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독립성을 강화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정책 기획에 참여했다. 그러나 최근 국민연금은 총수일가의 갑질 등 비정상적인 경영 문제가 터진 한진그룹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두고 논란 끝에 ‘제한적 경영참여’를 결정했다.

“나도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은 주주로서 적극적 권한을 행사하는게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밀어붙여서 관철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과도하다고 이야기하고 한쪽에서 너무 미약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기금운용위 구성상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었다.”

- 경제지 등 일부에선 기업 경영에 국가가 개입하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비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질문인데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국민연금에 독립성 이슈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를 바꾸는)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해관계가 엇갈려서 국회에서 합의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할 수 있는 방법은 기금운용위를 전문적이고 독립적으로 구성해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하는 것이다. 기금운용위는 노사와 가입자가 같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방적 주장이 통하지 않는다. 좋은 거버넌스 구조라고 본다. 다만 복지부 공무원의 일상적 관여가 문제이다.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때도 청와대를 통해 복지부 장관, 국과장을 통해 기금운용본부로 지시가 내려갔다. 관료들이 전달자 역할을 했다. 이들의 기금운용 투자 결정에 대한 개입을 차단하면 독립성 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 이사장은 ‘다만’과 ‘복지부 공무원’을 말할 때 잠시 숨을 골랐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때 주주권 행사를 앞두고 기금운용본부가 보건복지부 담당 부서에 보고를 하고, 복지부는 장관 명령을 그대로 전달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게 지난 2017년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재판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달 23일에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서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논의한 뒤 그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소동도 있었다. 일부 전문위원이 생각한 논의 결과와 회의를 주관한 복지부의 발표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한 전문위원은 “복지부 공무원이 장난을 친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대한항공에 경영참여를 안하기로 한 수탁자책임위의 결정은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까지 이어졌다.

- 대한항공에 3년간 경영참여를 할 경우 단기매매차익반환(10% 이상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6개월이내 주식을 팔 경우 수익을 기업에 반환)이 100억이 넘는다는 결과도 있었다

“뜨거운 이슈였는데 단기매매차익반환이 과도하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 그 기간 동안 매매를 하지 않거나, 주가가 떨어질 때 손해를 더 안 보기 위해 파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기금운용본부에서 (만약 경영참여를 했을 경우 과거 3년 동안 반환해야 한다고 추정한 금액을 과대 평가한) 수치 오류를 낸 것도 있다.”

- 국민연금이 단기매매를 많이 하고 있는 것도 나왔는데 투자패턴을 바꿔야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용할 수 있지 않나

“우리가 증시에 투자하는 방식이 직접 운용과 위탁 운용이 있다. 직접 운용하는 경우 그렇게 자주 매매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폭의 조정만 한다. 그런데 위탁 운용에는 ‘목표 수익률’이 있다. 목표를 달성하면 인센티브가 있고, 미달하면 다음에 운용을 맡을 수 없다. 위탁운용사가 이익을 내기 위해 (단기매매를) 한 것인데 국민연금이 직접 주식을 사고판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위탁을 줄 때는 운용에 관여하지 않는다.”

- 올해 국민연금의 역점사업은 무엇인가

“우리는 책임투자 원칙이 선언적으로 도입되어 있어도 실제로 하고 있지 않다. 카지노, 담배, 술, 무기생산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외국 기금들은 이른바 죄악주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글로벌 규모 연기금 가운데 국민연금만 창피하게 하고 있다. 책임투자 원칙을 확고히 하고 이에스지(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통합적으로 이런 의사 결정에 고려되어야 한다.”

- 여성부가 성평등 관련 지표도 투자요소에 넣어달라고 했다. 이사장 생각이 궁금하다

“성평등 이슈는 이에스지 중 하나의 요소다. 독립적인 여성 펀드로 조성하는 방법도 있고 이에스지 요소에 포함할 수도 있다. 일본공적연금(GPIF)을 아직 만나보진 못했지만 깜짝 놀란 게 거기가 성평등 이슈를 이에스지에 넣었다. 일본처럼 보수적인 기업문화에서 이것을 넣는 것을 보고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은 사회적 트렌드로부터 벽을 쌓을 수는 없다. 책임투자 원칙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중이다.”

-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주주행동주의나 행동주의 펀드에 대해 국민연금이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한다

“국민연금은 행동주의 펀드와 다르다. 국민연금은 보편적 소유자로서 올바른 방향으로 경제 전반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두가지 유형이다. 상당히 개혁적인 입장을 갖는 곳도 있고, 단기적 수익을 목표로 하는 곳도 있다. 국민연금은 둘다 아니다. 엔지오(NGO)도 아니고 단기 수익을 쫓는 투자자도 아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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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이사장은 직접 기금운용본부에 투자전략을 지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기금운용위원회의 몫이다. 김 이사장은 위원으로 들어가 있지만, 공단 이사장으로서 조금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하겠다. 또 김 이사장은 정치인 출신이다. 국민연금 본사가 있는 전주시에서 19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을 했고, “이사장을 그만둘 때까지 ‘낙하산’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그도 이야기한다. 이런 탓에 그의 이야기는 좀더 지역과 기관의 이익에 가까울 수 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뒤 운용인력이 이탈하는 등 역량이 약화되고 있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본시장 업계는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본다. “국민연금에 부족한 대체투자 쪽 인력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부족한 형편이어서 구할 수가 없다. 전주로 이전한 뒤 채용한 인력은 이탈이 거의 없다. 그들을 실제 만나보면 ‘우리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어디든 옮기면 3년 동안에 이동은 심하다. 좀더 지나면 안정되리라 본다.” 다음 총선에 출마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현역 준공무원이다. 이럴때 정해진 말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다”라며 웃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조심스럽다는 표현을 많이 하면서도 변화는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의 주주의결권 행사에 대해서 “칼은 칼집에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지 찔러버리면 용도가 끝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전주/이완 박현정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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