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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고아라의 This is Europe] 거장의 숨결, 완벽한 `미완성`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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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882년에 착공한 뒤 여전히 미완성인 가우디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이 건물은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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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최고의 항구도시이자 카탈루냐 지방의 심장이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로서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지만 바르셀로나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스페인이 낳은 천재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다.

가우디는 1852년 타라고나의 작은 마을, 레우스(Reus)에서 대장장이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가 되던 해 고향을 떠나 바르셀로나로 온 그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독자적인 건축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바르셀로나는 그야말로 가우디의 무대였다. 그는 자유로운 곡선이 지배하는 디자인과 섬세한 장식, 아름다운 색채를 결합해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작품들로 도시 곳곳을 채색했다. 그가 없는 바르셀로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진하고 강렬하게.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던 가우디는 언제나 혼자였고, 그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타라고나의 자연 속에서 홀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가우디는 언제나 자연을 무한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고 이를 건축으로 구현해 내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뒀다. 그에게 자연은 영원한 스승이었고, 자연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예술이 아니었다. 그의 다른 건축작품과 마찬가지로 구엘 공원의 모든 것 또한 자연의 구조를 따랐다.

가우디는 깨진 세라믹이나 유리 파편을 모자이크로 붙여 만든 트렌카디스(Trencadis) 공법을 즐겨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엘 공원의 트레이드마크인 도마뱀 분수와 메인 광장에 있는 벤치가 대표적인 예다. 벤치 너머로 바라보는 바르셀로나의 전경도 그 못지않게 근사하다. 동화 속 과자 집처럼 지어진 아기자기한 건물 뒤로 바르셀로나의 푸른 바다가 하염없이 펼쳐져 있다. 가우디가 꿈꾸던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웠나 보다.

그라시아 대로의 '카사 바트요(Casa Batllo)'도 놓칠 수 없다.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 '성 조지'와 용이 대결하는 전설을 모티브로 삼은 이 저택은 가우디의 실력이 정점을 찍던 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해골을 연상시키는 창문 기둥과 발코니, 거대한 용이 굽이치는 듯한 옥상 장식, 푸른 지중해의 파도를 연상하게 하는 외관은 아름답다 못해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다.

카사 바트요의 건축 과정을 지켜보던 페레 밀라(Pere Mila)라는 사람은 큰 감명을 받는다. 이에 가우디에게 아주 특별한 공동주택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하는데 그것이 바로 카사 바트요 건너편에 있는 '카사 밀라(Casa Mila)'다. 스페인어로 채석장을 뜻하는 라 페드레라(La pedrera)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카사 밀라는 직선을 배제하고 곡선을 활용한 가우디의 건축방식을 아주 잘 보여준다. 수많은 곡선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유기적으로 공존한다. 화려한 색채 하나 없음에도 그 어느 것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걸작이다.

마요르카 대로를 걷다 보면 거대한 건축물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가우디의 평생의 역작으로 일컬어지는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다. 본래 건축가 빌랴르의 지휘 아래 1882년에 착공되었으나, 1년 뒤인 1883년 가우디가 공사를 이어받게 됐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맞이한 1926년까지의 모든 세월과 자신의 전부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쏟아부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예수의 탄생, 죽음 그리고 부활을 표현하는 3개의 파사드와 예수, 마리아, 네 명의 복음사가, 열두 사도를 상징하는 18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 생전에 완성된 부분으로 극도로 섬세한 조각의 향연이 펼쳐진다.

성당 내부는 더욱더 놀랍다. 우거진 나무처럼 솟아오른 수십 개의 기둥과 그사이를 비집고 쏟아져 내리는 찬란한 햇빛은 천국의 숲속을 떠올리게 한다.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경건함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가우디가 사망한 지 93년이 지난 지금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여전히 미완이다. 그러나 완성되지 못했기에 더욱더 아름답다. '신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던 가우디의 말처럼 이 성당의 참된 가치는 속도와는 무관함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의 바람대로 아주 천천히, 우리와 함께 바르셀로나의 하늘을 채워나갈 것이다.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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