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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변종모의 세계의 골목] 벼랑 끝 아슬아슬하게 걸린 '황금바위'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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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믿음이 만든 걸까? 낭떠러지에서도 흔들림 없는 미얀마 황금바위
일생에 한 번 이곳에서 기도하는 게 희망인 사람들

조선일보

미얀마 남부 짜익티요의 황금바위. 미얀마 3대 성지로 불린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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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익티요로 떠나기 며칠 전, 숙소를 청소하는 소년에게 물었다. 황금바위를 본 적이 있냐고. 소년은 수줍게 웃으며 두 개의 손가락을 폈다. 한 번은 엄마와, 한 번은 온 가족이 함께 갔었다며 웃는다. 소년에게 양손의 엄지를 추어올리며 최고라는 찬사를 보낸 것은 내가 아니라 숙소의 관리인이었다. 그는 결혼하기 전에는 꼭 황금바위를 보러 갈 거라며 소년처럼 웃었다. 그리고 차편과 숙소를 알려주고, 아침과 저녁에 두 번을 다녀오면 더욱 좋다고 조언했다.

◇ 거대한 바위 하나가 모두를 불러모았다

미얀마 남부에서 양곤행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린 짜익티요는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지 않은 12월의 정오였다. 관리인이 일러준 기억을 더듬을 새도 없이 어디선가 검은 얼굴의 청년이 나타나 "골든 락(Golden Rok)?"하고 묻는다. 황금바위를 보기 위해서는 짜익티요산 아래 있는 킨푼(Kinpun)으로 먼저 가야 한다. 얼마나 걸리는지 어느 방향인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모두 그 방향이니.

얼마 달리지 않아서 내린 킨푼은 사거리 모두가 상점과 식당들로 꽉 차 있었다. 온 가족이 삼삼오오 손을 잡고 산 아래로 몰려들었고, 외국인들 또한 두리번거림 없이 같은 행동이다. 얼른 숙소에 짐을 풀고 그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킨푼 네거리 귀퉁이에는 황금바위로 올라가는 전용 트럭 주차장이 있다. 안내원의 손짓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철제계단을 오르고 트럭 안으로 구겨졌다. 구겨졌다는 말이 맞다. 짐이나 건축자재들이 실려야 할 트럭에는 사십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다란 철제의자에 앉아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정원이 다 차지 않으면 떠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서서히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힘든 표정의 사람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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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걸쳐있는 거대한 황금바위는 미동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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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또 다른 놀라움의 연속이다. 구불구불 비탈진 산길을 거침없이 오른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밀려도 아랑곳없이 차는 계속 전진한다. 군대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절대 즐거운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웃으며 손아귀에 힘을 주어 버틴다. 다 같이 흔들리는데 그중 내가 제일 많이 흔들리는 느낌은 또 묘한 경험이다.

그렇게 30분을 넘게 달려 도착한 정상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구름이 안개처럼 신비롭게 몰려들고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예의를 갖추어 천천히 바위 쪽으로 걷고 있었다. 점점 급해지는 구름 사이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폭우가 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서서히 맑아지는 하늘. 검은 구름 아래 태양의 희미한 빛이 바위를 드러낸다. 순간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황금바위로 몰려드는 느낌이었다. 새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바위. 그곳에 모인 모두가 바위의 후광처럼 서성이며 오래도록 떠날 줄 모른다. 이 바위 하나가 모두를 불러 모았다. 산과 구름과 새들까지.

◇ 낭떠러지에서도 흔들림 없는 황금바위…미얀마 3대 성지

짜익티요의 황금바위는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 만달레이의 마하무늬 파야(Mahamuni Paya)와 더불어 미얀마의 3대 성지라 불린다. 황금바위 사원은 미얀마의 순수불교라기보다 정령신앙에 가까운 ‘낫’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산꼭대기의 낭떠러지에 비스듬하게 걸쳐진 7m 크기의 거대한 바위를 미얀마 사람들은 불가사의라고 믿는다. 중력의 법칙에 의하면 분명 떨어져야 마땅하나, 현재까지도 미동 없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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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황금바위 옆에는 밤낮으로 기도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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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느 수도자가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얻어 자신의 머리카락 속에 숨겨와 왕에게 자신의 머리를 닮은 바위를 구해 사원을 짓고 그곳에 머리카락을 안치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왕은 이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 깊은 바다에서 둥근 바위 하나를 건져 올려 이곳에 올려놓았다.

바위 근처에는 밤낮 구분 없이 많은 사람의 기도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여자들은 바위를 만지거나 곁에 앉아 기도할 수 없다. 여자들이 만지면 바위가 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울타리 안의 바위를 만지거나 금박을 붙이며 기도를 하는 일은 오로지 남자들의 몫이다. 먼 곳에서부터 이곳까지 불러준 황금빛 바위에 간절히 마음을 연다. 하늘은 여전히 급하게 움직이는데, 바위를 향한 사람들의 자세는 미동이 없다.

오래도록 그들의 모습을 본다. 오로지 거대한 바위 하나가 불러들인 이 풍경을 나는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다. 세상에는 설명 가능한 것들보다 설명하지 못 하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꿈이나 희망 말이다. 그것을 믿어야 살기 때문에 저 거대하게 빛나는 바위는 누군가의 위로가 될 만하다. 일생에 한 번 황금바위 앞에서 기도하는 일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 자체로 소원을 이룬 셈인지도 모른다. 그들 곁에서 조용히 내가 바라던 일들을 저 찬란하게 빛나는 바위 위에 슬쩍 올려 본다. 아마도 저 벼랑 위의 바위는 앞으로도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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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설명하지 못 하는 일이 많다. 그것을 믿어야 살기 때문에, 거대하게 빛나는 바위는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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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거대한 황금바위 곁으로

미얀마의 첫 도시가 양곤이라면, 아웅밍글라 버스터미널에서 짜익티요를 거치지 않고 바로 킨푼으로 가는 차가 있다. 소요 시간은 4시간 이상 걸린다. 그 밖의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짜익티요에서 내려 킨푼으로 다시 가야 한다. 킨푼에는 마땅한 숙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양곤 근교의 바고(Bago)를 여행한 후 당일로 다녀오는 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황금바위 사원 입장료는 외국인의 경우 2018년 12월 현재 1만 짯(약 7380원)이며, 킨푼에서 정상까지 트럭 요금은 편도 2000짯(약 1480원)이다. 미얀마 대부분 사원에는 맨발로 출입할 수 있으며, 여자들은 짧은 치마나 민소매를 허용하지 않는다. 남자들 역시 반바지 차림은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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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

[변종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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