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산수유 노란 물 흠뻑 맞으면 어느새 청매화ㆍ홍매화 ‘꽃대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광양 매화마을 가는 길…섬진강은 봄! 봄! 봄!
한국일보

17일까지 매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 이곳뿐만 아니라 구례에서 하동으로 내려가는 섬진강은 지금 어디를 둘러봐도 봄이다. 광양=최흥수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국을 뒤덮었던 미세먼지가 걷히기 시작한 지난 7일, 완주순천고속도로 구례IC로 내려서자 차창으로 봄이 훅 들어왔다. 들판의 청보리는 파릇파릇 생기가 넘치고, 강변 대숲엔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시야가 흐린 건 분명 미세먼지가 남아 있기 때문인데,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라 믿고 싶었다.

이맘때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광양ㆍ하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어디나 꽃 천지다. 8일부터 시작한 광양 매화축제가 17일까지 이어지고, 산동면에서는 16~24일 ‘구례 산수유꽃축제’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봄꽃이 어디 축제 맞춰 핀다던가. 날짜를 일주일이나 앞당겼지만 매화마을은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꽃 대궐이고, 산수유마을은 지금 가도 꽃놀이에 아쉬움이 없다. 산수유 노란 물이 옅어질 즘이면, 섬진강은 다시 벚꽃으로 뒤덮인다. 한철 꽃 구경엔 인파가 넘쳐나기 마련, 길이 막히면 짜증내기보다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섬진강엔 어디에나 봄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하동 쌍계사 인근 ‘차 시배지’. 듬성듬성 바위가 박힌 산자락에 야생 차 밭처럼 관리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차 시배지 산책로에 고산선사가 차를 칭송한 글을 새긴 다구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동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벚꽃길’은 설명이 필요 없는 벚꽃 여행 일번지다. 축제 기간(3월 29~31일)엔 꽃보다 많은 차량과 인파로 가득 차지만 아직은 한가하다. 벚꽃이 없어도 봄기운을 만끽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계곡 물소리는 더없이 청량하고, 가지런히 정돈된 녹차 밭엔 푸르름이 싱그럽다. 화개면은 국내에서 처음 차를 재배한 곳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 사신으로 간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자락에 처음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쌍계사 인근 지리산 자락에 ‘차 시배지’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일반 녹차 밭처럼 고랑을 짓지 않아 야생 그대로의 정취가 남아 있다.
한국일보

화개장터 인근 차 밭 주변에도 매화가 활짝 피어 눈부신 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섬진강변 차 밭과 어우저닌 매화.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를 걸으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화개장터 초입에 주차하고 잠시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를 걸어도 좋다. 도로와 섬진강 사이 좁은 터에 차 밭이 조성돼 있고, 밭두렁 곳곳에 심은 매화가 망울을 활짝 터트렸다. 순백과 녹색의 조화에 눈이 부시다. 걷기 길 곳곳에 쉼터가 있어 도시락이라도 펼치면 그대로 봄소풍이다.

화개장터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다. 소설 속 공간을 재현한 ‘최참판댁’을 들러도 괜찮다. 아직 들판이 텅 빈 상태여서 ‘부부 소나무’의 자태가 돋보인다. 마을로 들어가는 대신 도로변 평사리공원에 차를 대면 눈앞에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섬진강은 다행히 ‘4대강 사업’에서 한발 비껴나 있었고, 설치한 보가 없어 물 흐름이 자연스럽다. 덕분에 하류 곳곳에 형성된 모래사장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섬진강을 ‘다사강(多沙江)’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경리는 ‘토지’에서 섬진강 모래를 여인네 살갗에 비유하고, ‘순백색이며 가루같이 부드러웠다’고 묘사했다. 백사장 사이로 골을 낸 맑은 물길은 햇살에 반짝이고, 강 건너 광양 다압면 산자락에는 매화가 눈꽃처럼 피었다.
한국일보

드넓은 모래사장이 형성된 악양면 평사리공원. 강 너머 광양 다압면 산자락에 매화가 하얗게 피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평사리공원의 모래사장. 섬진강 맑은 물줄기도 완연한 봄 빛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평사리공원에서 판매하는 벚꽃과 녹차 아이스크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텅 빈 평사리 들판에 ‘부부 소나무’가 고고하다. 왼편 산자락에 소설 ‘토지’를 재현한 ‘최참판댁’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매화마을가는 섬진교를 건너기 전 ‘백사청송’. 송림 앞에도 넓은 백사장이 형성돼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봄기운에 취해 천천히 운전하다 보면 어느새 하동과 광양 매화마을을 연결하는 섬진교에 닿는다. 강을 건너기 전 하동 강변의 ‘백사청송(白沙靑松)’이 또 한 폭의 그림이다. 조선 영조 21년(1745) 강바람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전국에서 손꼽히는 노송 숲으로 변신했다. 아름드리 소나무 900여그루가 400m나 이어져 조용히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금모래 반짝이는 백사장을 함께 걸어도 좋다.

다리를 건너면 광양 매화마을 초입, 이곳부터는 본격적인 정체를 각오해야 한다. 차로 최대한 매화마을 가까이 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아예 먼 주차장에서 걷는 것이 속 편하다.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다압면은 강변 산자락 전체가 꽃 대궐이다. 현재의 매화마을은 청매실농원에서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농원을 가꾼 매실 명인 홍쌍리 여사의 시아버지가 1917년 심었다는 청매화가 농장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이 농장을 중심으로 산중턱에서 강변까지 산책로와 마을길이 온통 매화 그늘이다. 청매화 백매화 홍매화, 눈부시게 터진 꽃송이가 가슴속까지 화사하게 물들인다. 길이 막혀도 기를 쓰고 찾아오는 이유겠다.
한국일보

온 산을 하얗게 덮은 매화 향에 여행객의 가슴 속까지 환해진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강변에서 매화마을을 거쳐 산등성이까지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홍매화 백매화가 대숲과 어우러져 눈이 부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매화마을의 원조 격인 청매실농원의 매실 식품 저장 항아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싸락눈을 뿌린 것처럼 하얀 매화마을 산책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매화 그늘 아래서 봄날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매화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사진사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화에 정신이 팔려 지나치는 곳이 있으니 마을 어귀 4기의 석비좌대(石碑座臺)다. 비석 받침돌은 대개 거북 형상인데, 이곳은 두꺼비 모양이다. ‘섬진강(蟾津江)’이라는 이름이 두꺼비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상징이다. 매화마을로 알려진 섬진마을엔 임진왜란 직후 섬진진(蟾津鎭)이 설치됐다. 1895년 진이 폐쇄되기까지 4척의 병선과 200~300명의 군사가 주둔한 곳으로, 두꺼비 석상은 수군 별장들의 공적비 좌대로 추정된다. 이만하면 두꺼비 나루를 알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데, 최근 석상 앞에 대형 황금색 두꺼비 상을 새로 설치했다. 고증할 수 없는 전설을 근거로 등에 처녀까지 업혔으니, 과유불급이 따로 없다.
한국일보

매화마을 앞 섬진진의 두꺼비 모양 좌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옛 두꺼비 석상이 4개나 있는데 바로 앞에 황금 두꺼비 상을 새로 설치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강 건너 지리산 능선에도 곧 봄이 번질 듯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좌대 옆 수월정은 송강 정철이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는 곳이다. 산 빛, 물빛, 어디를 둘러봐도 봄이다. 강 건너 지리산 능선에도 곧 봄이 번질 듯하다.

광양=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