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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SC] 미세먼지를 피해···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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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 바깥 공기 쐬고 싶어서

열대 나무와 허브, 꽃밭 서성이다

알싸하다가 싱그러워 가슴 트이는

세계꽃식물원·서울식물원 답사기

미세먼지 피해 간 맑은 공기 여행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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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집 앞 골목길에 꽃향기가 훅 끼쳐왔다. 학창시절 그 향기를 길에서 오래 음미하곤 했다. 고향 기차역 광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고향 특유의 바람 냄새가 났다. 고향에 오면 마음이 진정되는 건 시각이 아니라 후각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이가 들어, 그 꽃의 이름이 한 담배 상표와 같은 ‘라일락’이라는 걸 알고 더는 꽃향기를 탐하지 않았다. 이젠 명절에 더는 고향역 광장의 공기를 느낄 수 없다. 삶이 각박해서일까, 미세먼지 탓일까. 다시 향기가 깨우는 휴식의 감각이 그리웠다. 지난 6~7일 충남 아산시 세계꽃식물원과 서울 마곡동 서울식물원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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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밖에서 볼 땐 ‘여기는 뭔가’ 했는데 들어오니까 좋네.” 한 커플이 한마디 툭 던지고 온실 쪽으로 걸어갔다. 마침 옆에 있던 남기중 세계꽃식물원 원장도 한마디 보탰다. “밖에서 들어올 때 오늘 취재 잘못 왔나 싶었죠?” 국내 최대 실내식물원인 충남 아산 세계꽃식물원은 유리온실 약 3만3058㎡(1만평)에 식물 3000품종을 재배한다. 실내외 부지는 총 5만5382㎡(1만6753 평)이다.

지난 6일 방문한 세계꽃식물원 외곽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다. 남 원장은 “우리 식물원도 주축은 (관광이 아니라) 농업과 생산”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영농조합이 꽃 농사 짓던 유리온실을 2004년 식물원으로 개방했다. 어차피 꽃 수출이 부진한 탓이었다. 이왕 지은 유리온실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꽃 식물원’이란 묘수를 떠올렸다. 꽃 식물원은 ‘눈으로 보는 농업 현장’인 셈이다. 식물원에선 밭 갈고 묘목 심고 분갈이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유리온실 문을 열면, 온통 빨간 세상이다. 레드카펫 대신 수백 개 화분에 심은 빨간 꽃들이 통로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촘촘히 피어 있는 빨간 꽃 이름은 ‘베고니아’. 씨앗은 먼지 만큼 작다. 0.1㎖ 부피에 2천개의 씨앗이 몰려있어 ‘초미세종자’라 부른다. 식용 꽃이다. 베고니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새콤한 앵두 향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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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식물원은 싱싱하고 맑은 향기가 난다. 꽃과 잎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았다. 코알라가 좋아하는 레몬 유칼립투스는 날카로운 잎에서 레몬 향이 났다. 키가 감나무만 한 킹벤자민은 수북한 잎이 봄날 들판처럼 향긋하다. 활짝 핀 하얀 백합꽃 앞을 지날 땐 그윽하다고 하기보단 마음을 어지럽히는 향기가 덮쳤다. 농밀한 향에 코끝이 알싸하다. 진한 향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무렵 발길을 옮겨 노란 작은 꽃이 무성한 금작화 나무 앞에 섰다. 레몬 향과 산초 향이 섞인 상큼한 꽃향기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농밀하고, 싱그러운 공기 사이를 오가다 보니 오전 관람객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하와이의 무궁화’로 알려진 히비스커스 앞에선 한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수원에서 온 강정희(53)씨는 “요즘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여길 찾아 왔다. 처음 왔는데 공기도 좋고 열대 꽃들도 볼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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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향기만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이름도 예사롭지 않은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남기중 원장이 들고 온 붉은 자줏빛 꽃은 암술과 수술이 꽃잎 밖으로 길게 나와 있었다. ‘푸크시아’ 꽃이다. 영문명은 ‘타이니 발레리나’(tiny ballerina?작은 발레리나). 긴 암술 끝이 토슈즈(발레용 신발), 말려 올라간 꽃잎이 발레리나의 팔을 떠오르게 한다. 타이니 발레리나를 손으로 돌리고 있는 남 원장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들자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나도 찍어달라’는 듯 몸을 비볐다. 남 원장은 웃으며 말했다. “여기선 길고양이도 인기가 많아요. 고양이 먹이 주러 오는 분도 있을 정도니까요.” 직원들이 먹이를 주자 식물원이 제집인 줄 아는 앙큼한 고양이다.

주황색 새 머리 모양인 ‘극락조화’(영문명 Bird of paradise?천국의 새), 꽃잎이 4~5일 동안 보라색에서 흰색으로 변하는 브룬펠시아(영문명 ‘Yesterday today and tomorrow’·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를 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서울 도로변에 널려 있는 ‘꽃양배추’도 여기서 보면 새롭다. 잘 자란 꽃양배추는 줄기를 길게 밀어 올리다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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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 외국인들이 꽃 식물원을 찾았다. 평택 미군기지에 근무 중인 미군들의 가족들이다. 미국, 콜롬비아, 이탈리아 등에서 왔다. 8~10살 아이들은 보라색 꽃이 흐드러진 뉴질랜드 앵초나무 앞에 앉아 웃고 떠든다. 어른, 아이 모두 서양철쭉, 백합과 같은 흔한 꽃 앞에서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너무 아름다워!” “환상적이야!” 세계꽃식물원 밖으로 나오자, 미군 가족들도 마침 관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검은 마스크를 쓰고 미세먼지를 피해 차에 올라탔다. 이들과 인사한 뒤, 향기의 여운이 가시기 전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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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임시 개방 중에도 붐비는 식물원이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임시로 문을 연 서울 마곡동 서울식물원이다. 넓이 7555㎡(2285평), 높이 25~28m 돔 모양 온실엔 500개 품종이 자라고 있다. 야외 정원까지 더하면 약 10만㎡(3만250평) 부지에 약 3000개 품종이 자란다. 서울시는 임시 개방 뒤 총방문자 수가 약 183만명(3월3일 기준)으로, 평일 6000~7000명(1일 평균), 주말 2만명이 방문한다고 밝혔다. 서울식물원은 오는 5월 초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지난 7일 오전 11시, 평일 오전인데도 서울식물원엔 관람객이 몰렸다. 열대관과 지중해관으로 나뉜 온실은 전 세계 12개 도시 이름으로 구역을 나눴다.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진기한 나무들이 눈에 띈다. 타이에서 건너온 키 큰 벵갈고무나무, 거대한 호리병처럼 배가 불룩한 아프리카 물병나무, 줄기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있는 인도보리수, 동화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 등이다. 햇빛이 있는 곳으로 뿌리를 뻗고 원래 자리에 있던 뿌리는 퇴화하면서 자리를 옮기는 나무도 있다. 그 과정이 걸음걸이 같다고 해서, ‘걸어다니는 야자수’(Walking palm)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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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관은 ‘스카이워크’라는 2층 통로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적정 습도를 맞추려고 설치한 수증기 사이로 열대 나무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습한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 정수민 주무관은 “스카이워크는 열대우림을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했다”고 말했다. 지중해관의 이탈리아 로마 구역에는 빨간 체리세이지 꽃들이 반짝이는 작은 허브 언덕이 있다. 언덕 울타리에 앉아 허브 향을 마시며 한숨 돌리는 관람객들이 여럿이다. 이날 오후 1시 서울식물원 주변 미세먼지·초미세먼지 지수는 각각 83㎍/㎥·52㎍/㎥, ‘상당히 나쁨’, ‘매우 나쁨’ 수준(세계보건기구 기준)이었다. 뿌연 하늘 아래 식물원 온실은 거대한 방공호다. 숨 쉬고픈 사람들이 하나둘 그 안으로 몰려들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식물원 가는 길 세계꽃식물원(충남 아산시 도고면 봉농리 576/041-544-0746)은 온양온천역 또는 아산시외버스터미널·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약 15㎞ 거리다. 터미널이나 역에서 41번 버스 등을 타면 식물원까지 약 1시간 걸린다. 서울에서 세계꽃식물원까지는 차로 2시간(120㎞) 거리다. 오전 9시~오후 6시 개원, 연중무휴, 입장료 일반 8000원. 주변에선 도고온천역 방면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길조식당(041-542-0370) 호박국수(7000원)가 별미. 서울식물원(서울 강서구 마곡동로 161/문의 120 다산콜센터)은 서울 9호선·공항철도 마곡나루역 3, 4번 출구 앞에 있다. 오전 9시~오후 5시 개원, 매주 월요일 휴원, 무료. 단, 정식 개원을 앞두고 3월12~31일은 열대관, 4월1~30일은 지중해관 입장을 제한한다. 5월 초 정식 개원하면 유료다. 입장료는 미정. 김선식 기자





공기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하층부를 구성하는 무색, 무취의 투명한 기체. 주성분은 약 1 대 4 비율로 혼합된 산소와 질소. 그 밖에 소량의 아르곤·헬륨 따위의 불활성 가스와 이산화탄소가 포함돼 있음. 최근 초미세먼지·미세먼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먼지를 피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음.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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