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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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낭비 막자'는 취지 뒤흔든 예타 개편안
이번 예타 개편안을 뜯어보면 정권과 지자체의 선심성 사업 추진과 세금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예타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 많다. 예타 평가 항목은 크게 경제성, 정책성, 지역 균형 발전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은 경제성으로 평가할 때 35~50% 가중치를 두게 돼 있다. 정책성과 지역 균형 발전의 가중치는 각각 25~40%, 25~35%다. 하지만 비수도권 사업의 경우 앞으로는 경제성 가중치가 30~45%로 5%포인트 낮아지며, 지역 균형 발전 가중치는 30~40%로 5%포인트 높아진다. 도입 초기 경제성 분석만 하던 예타제도는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경제성 가중치가 낮아지고 정책성, 지역 균형 발전 평가도 같이하기 시작했으나 가중치 50% 선이 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성이 낮아도 소외된 지방일수록 받는 가점(加點)이 커져서 사업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중에도 비용 대비 편익(경제성)이 예상치보다 크게 떨어져 거의 활용되지 않은 곳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혈세 낭비'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엔 수도권까지 예타 통과 확률을 높였다. 수도권 사업은 보통 경제성은 있으나 지역 균형 점수에서 마이너스(―)를 받아 좌절된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지역 균형 항목을 아예 평가하지 않는다. 경제성(가중치 60~70%)과 정책성(30~40%)만으로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이를 두고 "정권이 수도권 표(票)까지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산하 위원회에서 예타 결과를 심의·의결하게 한 것, 예타 기관에 조세재정연구원을 추가한 것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고, 입맛에 맞게 조사 기관을 길들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박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존에는 조사 결과에 나온 숫자로 예타 통과 여부가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구조이다 보니 객관성만큼은 어느 정도 확보됐다"며 "그러나 이번 개편안을 보면 객관성은 확 낮아지고, 예산 당국의 예산 편성 권한은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 예타 조사 기간을 1년 이내로 단축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졸속 검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이 많다.
◇文 정부 들어 '국가 정책적 필요' 내세운 예타 면제 급증
현 정부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재정을 뿌리고 있는지는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 정책적 필요성'을 내세워 예타를 면제해 준 비율이 급증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국가재정법 38조 2항에서는 총 10가지(1~10호) 예타 면제 사유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 중 10호가 '지역 균형 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에 해당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예타 면제를 추진할 수 있는 규정이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실이 지난 10년(2008~2019년)간 예타 면제된 사업 총 241건의 면제 사유를 분석한 결과 국가 정책적 필요성(10호)에 해당하는 사업은 전체의 20.3%인 49건이었다. 그런데 49건 중 41건(83.7%)이 문재인 정부 때 이뤄졌다. 금액으로 따지면 '10호'에 의한 예타 면제 사업비 총 55조7666억원 중 51조3635억원(92.1%)이 문재인 정부 때 결정됐다. 10호에 해당하는 예타 면제 사업이 2017년 이후 급증한 배경에 대해 기재부는 "일자리 안정자금, 지난해 추경 일자리 사업 등 2017~2018년의 예타 면제는 청년 고용 위기와 저출산의 심각성 등을 고려한 조치로 국가재정법의 요건과 절차를 엄격히 준수해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김지섭 기자(oasi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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