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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고아라의 This is Europe] 다뉴브강에 달빛이 드리운다…역사가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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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부다페스트

매일경제

1849년 두나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현수교 세체니 다리(Szechenyi Chain Bridge)가 건설되면서 두 지역을 양분하던 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73년 비로소 하나의 도시로 통합돼 지금의 `부다페스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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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발원해 9개국을 거쳐 흑해까지 항해하는 다뉴브(Danube)강은 유럽의 동과 서를 잇는 젖줄이다. 장장 2850㎞에 달하는 강의 기나긴 여정이 가장 찬란해지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의 밤을 지날 때다.

다뉴브는 헝가리어로 두나(Duna)다. 과거 부다페스트는 두나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부더)와 페스트(페슈트)로 나뉘어 있었다. 부다가 왕과 귀족 등이 거주하던 상류층 구역이었다면, 페스트는 서민 거주지로 두 구역은 완전한 별개의 도시로 성장해 왔다. 부다와 페스트의 왕래가 시작된 것은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이 영국의 건축가 클라크 아담에게 다리 설계를 의뢰하면서부터다. 1849년 두나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현수교 세체니 다리(Szechenyi Chain Bridge)가 건설되면서 두 지역을 양분하던 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73년 비로소 하나의 도시로 통합돼 지금의 '부다페스트'가 됐다.

유럽 중동부 내륙, 7개 나라에 둘러싸인 헝가리는 유독 굴곡진 역사를 지나야 했다. 고대 서로마의 침략을 시작으로 몽골과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거쳐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독일 나치의 점령과 소련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간 이어진 영욕의 역사는 도시 전체에 수많은 유산과 상처를 남겼다. 왕궁, 어부의 요새, 마타슈 성당 등 굵직한 유적이 포진한 부다의 남쪽 끝자락으로 향하면 겔레르트(Gellert) 언덕이 나온다. 부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언덕은 빼어난 전망과 더불어 헝가리의 슬픈 근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식민 지배에 항거하던 헝가리인을 감시하고 탄압하기 언덕 위에 거대한 요새, 시타델라(Citadella)를 건설했다.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독일 나치군이 요새를 점령해 방공포대를 집결시켰고, 일부분은 전범 수용소로 이용했다. 수난은 계속됐다. 2차 세계대전 말, 헝가리로 진격한 소련군은 치열한 '부다페스트 공방전' 끝에 나치 독일을 격파했다. 승리를 거머쥔 소련은 이 언덕 위에 하늘을 향해 종려나무를 바치는 동상을 세웠다.

이름은 '자유의 여신상'. 초토화된 부다페스트 가장 높은 곳에 헝가리의 자유가 아닌 소련의 전승기념탑이 세워진 것이다. 1989년 소련이 붕괴되자 헝가리는 비로소 자유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헝가리인들은 동상을 그대로 남겨뒀다. 겔레르트 언덕은 이제서야 온전히 부다페스트의 언덕이 됐다. 그 아래 펼쳐진 도시와 그 사이를 유유히 관통하는 두나강의 풍경이 유난히 아름답다.

부다가 과거의 시간을 품고 있다면, 페스트는 보다 현대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지어진 성 이슈트반 대성당, 헝가리 위인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영웅 광장, 세계적인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의 기념관, 파시스트와 공산정권의 잔혹상을 담은 테러 하우스 등 같은 다채로운 명소가 포진해 있다. 생동감 넘치는 바치 거리, 시민공원, 중앙시장 등 부다페스트의 '현재'를 볼 수 있는 장소도 가득하다. 부다페스트 특유의 고풍스럽고 화려한 카페와 레스토랑, 폐허가 된 건물과 공장을 개조해 만든 '루인(Ruin) 펍'은 부다페스트에서 반드시 경험해봐야 할 것들이다.

부다페스트 하면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30~1940년대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글루미 선데이라는 음악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본래 글루미 선데이는 헝가리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작곡한 곡이다. 당시 이 곡을 듣고 사람 수백 명이 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돌자 이 곡은 '헝가리의 자살 찬가' '자살 교향곡'이란 이름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급기야 1968년 작곡가인 레조 세레스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노래에 얽힌 숱한 소문들은 사실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이자 실제 글루미 선데이가 발표된 1930년대 헝가리는 최악의 혼돈을 맞이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패배, 2차 세계대전 발발, 나치 독일의 헝가리 점령은 홀로코스트라는 20세기 최악의 인간 잔혹사로 이어졌다. 나치군은 헝가리 유대인을 두나강 앞에 세워두고 신발을 벗으라고 명했다. 곧이어 총탄 소리와 함께 강물은 붉게 물들었다. 강둑에 덩그러니 남겨졌던 수많은 신발들은 이제 동상으로 굳어진 채 억울한 넋을 위로한다. 아마도 글루미 선데이는 죽음을 부르는 송가가 아닌, 처연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죽음보다 비참한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을 위로하던 노래가 아니었을까.

두나강 위에 달빛이 드리워진다. 국회의사당의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이를 담은 강물은 부드럽게 흐르며 부다페스트 곳곳을 밝힌다. 노란 달을 빼닮은 2번 트램에 오른다. 트램은 강변을 달리며 창 속으로 부지런히 도시의 모습을 실어 담는다. 모든 풍경들은 쓸쓸하지만 낭만적이고, 처연하지만 황홀하다. 부다페스트 그리고 두나강의 밤이 아름답고 애절하게 익어간다.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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