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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인수

“회계개혁 거스를수 없는 조류… 코리아디스카운트 줄여야”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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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 / 상장사 감사 무사통과 비율 98% 이상 / 회계 투명성 순위는 여전히 최하위권 / 감사 독립성 확보돼야 기업가치 상승 / 주기적 감사 지정제 등 ‘회계 3법’ 성과 / 무형자산·주식 평가 중요한 이슈 대두 / 회계DNA 선진 민족 명성 다시 찾아야

세계일보

최근 기업 감사보고서 제출 시기에 불어닥친 회계 파문이 심상치 않았다. 회계감사에서 ‘레드카드’를 받아든 굴지의 기업이 속수무책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빠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의 퇴진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회계법인의 책임이 강화되면서 감사가 깐깐해지면서 ‘비적정’ 의견이 속출한 결과다.

회계가 쏘아올린 시장 개혁의 신호탄일까. 하지만 전체 상장사의 감사 무사통과 비율은 98% 이상으로 여전히 매우 높다. 매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지난해 63개국 중 62위)이다. 앞으로 시장이 감내해야 할 성장통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음을 예고한다.

회계개혁의 중심에 서 있는 최중경(63)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지난 4일 만났다. 최 회장은 “회계개혁의 조류를 거스를 수 없다”며 “아시아나항공은 이 커다란 변화에 적응해 나가려는 노력을 안 하고 맞서다가 생각보다 대가를 너무 크게 치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서울 충정로 한국공인회계사회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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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충정로에 있는 집무실에서 회계개혁과 회계투명성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아시아나항공의 회장이 회계투명성 문제로 퇴진하는 등 최근 회계 문제는 대기업까지 흔들고 있다.

“(최근 개정된)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을 보는 시각은 독립성 확보와 회계사 책임 두 가지이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 줄 테니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게 골자이다. 회계사도 감사를 엉터리로 했을 때 본인에게 오는 불이익이 엄청나다. 회계사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일부 기업이 제도 변화의 의미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회계개혁의 조류는 거스를 수 없다. 일부 대기업은 좋은 회계사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하는 등 내부 회계사 역량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회계제도가 더 복잡해지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쉬운 게 이 커다란 변화에 적응해 나가려는 노력을 안 하고 어떻게 보면 흐름에 맞섰는데 생각보다 대가를 너무 크게 치른 것 같다. 시장에서 충격도 컸고 회장이 사임하는 상황까지 갔다.”

-감사의견 비적정과 제출 지연이 속출하면서 기업은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불만이고, 투자자 피해도 예상되는데.

“역으로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 감사의견 보류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완충장치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바로 감사거절 등으로) 충격이 컸지만 이제 어떤 회사가 성실히 감사를 안 받고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미리 주는 것이다. 거래 정지되면 상장폐지로 연결되는데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한 단계를 더 만든 셈이다. 비적정 의견은 회계사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재무제표를 회사에서 제출하니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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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투명성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경제는 결국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관한 의사결정의 연속이고, 그것으로 성장한다. 이를 위해 근간인 회계정보가 정확하면 정확한 배분 결정이 이뤄지고 자원이 최적화해 이뤄지니까 생산성이 올라간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선진국과 비슷한 2%대이다. 선진국처럼 성숙한 경제도 아니고 쫓아가야 하므로 더 높아야 한다. 경제성장률 7% 안팎인 베트남 등과 선진국과의 중간쯤인 4~5%가 돼야 한다. 부족한 2%는 경제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요소, 즉 잘못된 회계정보 때문에 그렇다. 회계정보를 정확하게 산출하면 이에 근거해서 정확한 자원배분이 이뤄지고 생산성이 오를 것이다.”

-2016년 공인회계사회 회장 취임 후 회계제도는 얼마나 개선됐나.

“‘회계개혁 3법’ 개정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외감법을 개정해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됐다. 상장법인의 경우 감사인을 회사가 정했는데 이제 6년은 회사, 3년은 금융위원회가 지정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가 사실 대부분 한 가족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감사 선임 과정이 불투명한 데다 회계감사인들의 독립성 확보가 어렵고 회사에 종속된 상태였다. 회계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능력의 문제라면, 그걸 보고할 수 있는 건 독립성의 문제다. 독립성이 없어 모뉴엘, 대우조선해양 등 매머드급 회계사고가 터졌다. 모뉴엘에 들어간 나랏돈이 4차 산업혁명 분야에 들어갔다면 상당히 많은 성과를 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본시장육성에 관한 법률을 고쳐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 제도가 도입됐다. 감사 증거를 안 내면 감사인이 일정기간 감사의견을 안 내도 된다. 기업들이 최근 결산보고서 제출 기한과 주주총회를 연기한 것이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세기본법을 고쳐서 회계감사를 받는 성실도가 낮으면 정기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 회계투명성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이번 기회에 회계투명성을 확실하게 하면 코리아디스카운트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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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IFRS의 모호성도 지적된다.

“결국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2011년 도입된) IFRS는 새로운 제도로, 지금도 새로운 기준을 하나씩 도입하고 있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IFRS 관련한 제재·조치도 조금은 시간을 두고 강화해 나가는 것이 맞는다. 회계전문가 판단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팩트와 수학적 공식, 인과관계가 분명한 논리구조 3가지를 갖고 있어야만 의견 형성이 된다. 3가지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고 볼 수 없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기 때문에 회계업계는 훈련을 시키고 당국은 기다려 줘야 한다. ‘노 액션’의 관용을, 시간을 두고 베푸는 것이 이 제도가 정착하는 데 있어 옳은 방향이다. 특히 무형자산 또는 주식을 어떻게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는 앞으로 큰 이슈가 될 것이다.”

-2020년 보험업계에 도입되는 IFRS17은 더 늦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보험업계 도입이 연장됐는데 더 늦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는 들었다. 보험업계의 IFRS17은 전 세계에서 유럽을 제외하고 우리가 가장 앞장서 도입하는 나라다.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우리 회계문화, 기반, 일반인의 회계 인식도를 보면 유럽과 같은 주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수용능력에 맞는 것인지에 사실 의문이 든다. 도입을 이왕 약속했으니 하는 건 좋은데 숨 쉴 공간을 주고 적응기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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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법인에 대한 감사인 지정제를 추진하고 있는데.

“공익법인은 가장 먼저 투명성이 요구되는 분야라서 감사인 지정제가 필요하다고 봤다. 지난해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3년은 공익법인 스스로 감사인을 선정하고 2년은 지정받도록 하는 3+2 방식의 법안을 발의했다. 비영리분야의 회계투명성을 위해서 첫 번째로 시도하는 게 공익법인이고 단계적으로 학교법인, 오피스텔, 아파트로 확산하려고 접근하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에는 워낙 국민 생활에 관련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아파트 감사하는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대주면 어떠냐는 의견도 나온다. 언뜻 들으면 그걸 왜 지자체가 해주냐는 생각도 드는데 복지를 위해서는 못할 것도 없다. 회계 관련해서 생각보다 많은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제관료 출신으로서 정부 경제정책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은.

“걱정된다. 제조업 중심인 우리 산업구조에서 선진 재료강국 독일, 일본 같은 곳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뒤쫓아오는 중국이 상당히 기술 축적하고 있어 우리의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이라면 기업 짐을 덜어주는 조치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짐을 얹어놓는 조치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주52시간제, 최저임금제이다. 노동·임금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이다. 전체적으로 산업이 무너지고 나면 노동기회 자체가 없어질 텐데 노동기회가 영속적이라는 전제하에서 제도 개선을 할 시기가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분배 측면에서 봐도 오히려 최하위 계층이 더 피해를 보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도입이 곧 2년이 되는데 성과를 분석해서 아니라고 판단하면 지금이라도 수정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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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회계사회장으로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리 한민족 DNA는 회계투명성에 있어 철저하다. 서양이 잘하는 복식부기가 15세기에 정립됐다고 본다. (복식부기를 최초로 정리한) 루카 파치올리의 책보다 200년 앞서 우리는 고려시대에 복식부기를 했다. 정확히는 개성상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한 부기법인 ‘송도사개치부법’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회계적으로 선진 민족이다. 회계장부에 항상 ‘천은(天恩)’이라고 썼다. 회계투명성이 천명이라고 생각했던 민족이 그동안 관심을 덜 줬고 심지어 회계투명성 평가에서 몇 년 연속 꼴찌의 치욕까지 받았다. 회계투명성만큼은 한국이 최고라는 명성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대담=박희준 경제부장

정리=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은… △1956년 경기도 화성 출생 △경기고·서울대 경영학과·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재정경제부 증권제도과장·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이사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필리핀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지식경제부 장관 △동국대 행정학 석좌교수 △제43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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