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상속 문제가 불거진 대한항공에 이어 아시아나가 금융 당국에서 경영권 압박을 받으면서 30년 넘게 이어져 온 양대(兩大) 국적 항공사 체제가 위협받고 있다. 위기의 성격은 판이하지만 금융권과 재계에선 양대 항공사 체제가 흔들리면 해운업에 이어 국가 물류의 핵심인 항공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회계 감사 문제로 시작된 아시아나 위기, 부실 경영이 문제
아시아나항공은 작년 4월 주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과 경영 정상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부채 감축과 자산 매각을 추진해왔다. 산은은 600%가 넘는 부채비율을 낮춰야 회사 존속이 가능하다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독려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올해 3월 강화된 회계 감사에 안이하게 대처하다 숨겨진 부채 800억원이 추가로 드러나 위기를 자초(自招)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 1조3000억원을 포함, 6조원의 빚을 안은 아시아나항공 신용 등급이 '투자 부적격' 수준으로 떨어지고 자체 회생(回生)이 어려울 것이라는 금융권의 회의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과 산은은 문제의 근원이 박삼구 회장의 무리한 경영에 있다고 본다. 박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6조4000억원), 2008년 대한통운(4조1000억원)을 연달아 인수했지만 재무 구조 악화로 2009년 그룹 경영권을 산은에 넘겼다. 2015년 그룹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을 다시 인수해 오너로 복귀했지만 이후 금호타이어까지 다시 찾겠다며 그룹 자산을 쥐어짜다가 재무 구조를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사정이 있는데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자회사 지분 매각, 자산 매각 정도의 자구계획을 거론하자 금융 당국이 "(박 회장 일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임을 회사 측이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경영권 우려 한진家, 부동산 등 매각으로 상속세 재원 만들 듯
대한항공은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 오너 일가의 전횡이 연달아 구설에 오르며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경찰·검찰 등 11개 정부 기관의 조사·수사를 받고 18차례 압수 수색을 당하며 고초도 겪었다. 이 와중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승계 문제 등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그룹 지배 구조와 경영권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한진그룹은 고(故) 조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의 지분 17.84%를 고스란히 상속받지 못하고 일부를 상속세 재원으로 쓴다면 지배 구조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 전무 등 조 전 회장의 3남매가 가진 지분은 모두 합쳐 봐야 7%도 되지 않는다. 반면 조 회장 일가에 반기를 들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 KCGI(강성부펀드·지분율 13.47%)와 국민연금(7.34%)의 지분을 합치면 20%가 넘는다.
조 회장의 지분을 다 상속받기 위해서는 1700억~180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증권은 9일 "상속세 재원으로 한진칼을 제외한 한진·정석기업·대한항공 지분 매각을 통해 약 750억원을 마련할 수 있고, 한진이 보유한 동대구터미널(예상 매각가 약 300억원)과 부산 범일동 부지(약 1000억원) 등 자산 매각을 통해 배당 여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한진그룹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광장이 펀드 등을 대상으로 '백기사'(우호세력) 영입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조 회장 지분이 조원태 사장 등 3남매에게 비슷한 비율로 상속되더라도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 전무 자매의 경영 일선 복귀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조 사장이 석태수 한진칼 사장 등 그룹 사장단과 함께 비상 경영 체제로 위기를 해결하면 '3세 경영'이 안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채성진 기자;김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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