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조용준의 여행만리]옛님이 그리웠나 꽃, 별이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즈넉한 죽령옛길에서 만나는 봄 이야기

아시아경제

반짝 반짝 빛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죽령옛길 소나무에 둥지를 튼 개별꽃이 수줍은 인사로 길손을 맞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죽경옛길 위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단양, 영주가는 고갯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제비꽃이 반기는 옛길을 걷고 있는 탐방객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현호색, 태백제비꽃, 양지꽃, 제비꽃, 개별꽃(오늘쪽 큰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죽령옛길 초입에서 마주한 마을이 온통 봄꽃으로 화려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죽령루에 달이 떠올랐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죽령길에서 만난 장승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희방폭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신라시대부터 2천년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옛길이 있습니다. 한양과 경상도를 잇는 최단 경로로 다양한 사람들이 이 험한 고갯길을 넘어 다녔습니다. 유구한 유서와 긴 세월 그곳을 오가던 숱한 이들의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 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부터 무거운 등짐을 지고 이 마을 저 마을 장터로 향하던 보부상까지 다양합니다. 그뿐인가요. 퇴계 이황과 온계 이해의 형제애는 이 고갯길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명승 30호로 지정된 죽령옛길 이야기입니다. 죽령은 경상도 풍기와 충청도 단양을 가르는 고개입니다. 영남과 기호지방을 이어주는 3대 관문 중 가장 높은 고개이기도 했습니다. 이맘때 죽령옛길을 따라 걸으면 소백산맥의 아름다운 풍경과 길섶에서 말동무가 되어주는 앙증맞은 야생화들로 눈부십니다. 화려한 봄꽃도 좋지만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들락거리며 올랐을 고갯길을 걸어보는 것도 봄날을 보내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것입니다.


소백산 죽령옛길은 '희방사역'에서 시작한다. 희방사역은 간이역이지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보물 같은 죽령옛길을 품고 있다. 옛길은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죽령(竹嶺)은 대숲고개란 뜻이다. 하지만 대숲은커녕 대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엔 '서기 158년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죽령 길을 만들고 지쳐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이름을 기려 죽령이라고 한 것이다.


경상도 풍기와 충청도 단양을 잇는 고개가 죽령이다. 추풍령, 문경새재와 같이 옛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가던 길이다. 신라와 고구려가 밀고 당기던 국경이기도 하다. 590년 고구려 온달장군이 '옛날 잃었던 땅을 되찾지 못하면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 며 출정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죽령옛길은 그 만큼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죽령에서 꽃핀 퇴계 이황의 형제애는 남다르다. 1548년 정월, 이황은 죽령 너머 단양군수로 부임했다. 그러다가 그해 10월 갑자기 고개 아래 풍기군수로 이동했다. 친형인 온계 이해가 충청도관찰사로 오는 바람에 이황을 경상도 쪽으로 옮기게 한 것이다.


충청도관찰사 이해는 죽령을 통해 고향 예안을 오갔다. 그럴 때마다 풍기군수 이황은 형을 마중 나갔고 형이 고향에 갔다 돌아갈 땐 깍듯이 배웅했다. 형제는 죽령의 계곡에 앉아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옛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쉬엄쉬엄 오르기 좋다. 영주 특산품인 사과를 재배하는 과수원을 벗어나면 본격적으로 산길이 열린다. 길은 가파르거나 각박하지 않고 넉넉하게 품을 내준다. 흙길의 부드러운 감촉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몸과 마음도 부드러워진다.

숲길에 들자 귓전을 간질이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맑고 싱그럽다. 소백산맥의 품에 든 것이 실감난다.


길동무를 하듯 야생화들이 활짝 피었다. 순백의 꽃잎에 수술이 까만 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는 개별꽃이 먼저 반긴다. 카메라를 대니 햇살을 가득 머금은 꽃잎이 수줍게 반짝거린다. 몇 걸음 채 딛지도 않았는데 풀숲으로는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양지꽃이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제비꽃, 현호색 등이 눈길을 준다. 야생화가 핀 숲 안쪽은 키 큰 삼나무 군락이 산행객을 맞이한다. 빽빽한 삼나무가 들어차 하늘을 덮은 원시림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옛길을 걷다 보면 도심에 찌든 몸과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죽령옛길 곳곳에는 역사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들을 입간판으로 세워놓아 읽으면서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걸음은 어느덧 주막 터에 닿는다. 죽령고갯길은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만큼 주막도 많았다. 주막들이 있는 길거리를 주막거리라 했는데 이곳이 대표적인 주막거리였단다.


"이보게~ 탁주 한 사발 마시고 쉬엄쉬엄 올라가게나" 눈을 감으며 당시 주막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국도와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죽령옛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면서 이제는 터만 남았다.


길이 가팔라진다. 고갯마루가 머지않았다. 가파른 길은 나무 계단이 하늘 끝까지 이어질 것 같다. 조금 숨이 찰 정도의 이 길 끝에는 죽령루가 반갑게 맞이한다.


누각에 오르면 시원한 산바람이 반기고 풍기와 영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죽령루 왼쪽은 충북 단양이고 오른쪽은 경북 영주다. 죽령옛길은 이곳에서 끝나지만 소백산 자락길 3코스는 계속 이어진다. 죽령옛길은 소백산 자락길 3코스의 일부다. 죽령루 맞은 편 도로를 가로 지르면 현재의 길손들을 맞아 주는 주막과 백두대간 이정표가 있다. 산나물전과 인삼호박막걸리 한잔으로 옛 선비들이 누린 풍류를 따라해 봐도 좋다.


짧은 옛길이 아쉽다면 소백산 자락길을 더 걸어도 된다. 고개 아래 샛골에는 보국사 옛터가 남아 있고 소백산에 터를 잡은 마을길이 이어진다. 죽령에서 오른쪽 영주쪽으로 내려서면 소백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희방폭포도 아름답다.


영주=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아시아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행메모

△가는길=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가다 풍기IC를 나와 풍기읍 희방사역으로 가면된다. 죽령옛길을 걷고 나면 죽령휴게소에서 희방사역으로 이동하는 마을버스가 있다.

아시아경제

△먹거리=풍기읍에는 2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평양냉면(사진) 노포가 있다. 쫄깃하게 반죽한 메밀면과 맑고 시원한 육수의 감칠맛은 기가 막히다. 죽령 정상의 죽령주막은 주막정식과 비빔밥 등을 내놓는다. 인삼 등 한약재가 들어간 풍기인삼갈비탕과 부석태를 이용한 청국장과 콩요리 등도 이름났다. 풍기인삼과 영주사과는 주요 특산물이다.


△볼거리=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비롯해 부석사, 선비촌, 낙동강변에 자리한 무섬마을, 5월말 소백산철쭉제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